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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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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6년 08월 174호
발은 여름날 창문이나 대청에 쳐서 햇볕을 가리는 물건이다. 땅에 펴서 농작물을 말리는데 쓰기도 한다. 햇볕을 가리는데 쓰는 발은 갈대 또는 가늘게 쪼갠 대오리를 삼끈이나 실로 매듭을 엮어 만드는데, 바람이 잘 통하므로 매우 시원하다.
한복판에 쌍희자雙喜字 무늬나 수자壽字 또는 복지福字 무늬를 놓거나 주위에 완자(卍字)를 놓으며 완자 바깥쪽으로 다시 남색 모단으로 선을 두르기도 한다. 이 밖에 부귀강녕 따위의 길상문자를 놓기도 하며 치장을 위해서 매듭을 꼬아 걸어두기도 한다. 절집안에서는 주로 아무런 문양도 넣지않은 대오리 발을 많이 사용한다.
궁중에서 수렴청정 垂簾廳政할 때 쓰는 것을 대연 大筵이라 하고 부처님을 모시는 가마에 쓰이는 발을 가마연이라 부른다. 궁중에서 사용하는 발은 왕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주칠朱漆을 입히고 역시 불교의 가마에도 주칠을 하였다고 한다.
궁중에서는 흑발이라 하여 겨울에도 발을 치기도 하였는데 구문 龜 , 곧 거북동의 문양을 새긴 점이 특이한데 아마도 장수를 기원한 듯하다.
발을 쳐 놓으면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다. 은밀한 것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인지 지금껏 애용하고 있는 여름철 도구이다.
여름날 해인사 궁현당 마루에 길게 쳐둔 발은 꽤 인상적이다. 큰방에서 경전을 소리내어 읽고 있으면 누구나 한번쯤 기웃기웃한다. 발 너머 보일 듯 말듯한 스님네의 일상이 궁금해진 탓이다. 담 너머로 바라보는 풍경이 재미있고 아름답다고 했던가. 어쩌면 세속에 사는 이들의 눈에는 출가인의 삶이 발 뒷쪽의 실루엣처럼 들여다보고 싶은 공간인가보다.
발을 걸어 두고 마시는 차향은 더 향기롭고, 발 사이로 들리는 빗소리는 어느 때보다 소슬한 정감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