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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선지식은 돈오돈수를 이렇게 주장하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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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종성 1996년 07월 173호
오늘날에 조계육조의 돈수가풍을 재홍천명再興闡明한 성철 선사는 그의 역저인 「선문정로禪門正路」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정법상전正法相傳-정법을 부처님과 조사가 서로 전함-이 세구연심歲久年深하여 종종의 이설이 횡행하여 조정을 황폐하게 하였다. 무릇 이설 중의 한 예는 돈오점수이다. 선문의 돈오점수는 원조는 하택河澤이며 규봉이 계승하고 보조가 역설한 바이다. 그러나 돈오점수의 대종大宗인 보조도 돈오점수를 상술한 그의 절요節要 벽두에서 하택은 시지해종도是知解宗徒요 비조계적지非曹溪嫡子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므로 하택, 규봉과 같은 지해종도가 되지 말고 마조, 백장과 같은 본분종사本分宗師가 되어 조계의 적자가 되라.

무릇 선문에 있어서 지혜는 정법을 장애하는 최대의 금기이므로 선문의 정안 조사들은 이를 통렬히 배척하였다. 그러므로 성철 선사는 하태, 규봉과 같은 지해종도가 되지 말고 마조, 백장과 같은 본분종사가 되라고 처음으로 목소리 높여 외쳤다.
또 「선문정로」에는 습기習氣에 대한 이런 말이 있다.

번뇌의 습習이라 함은 번뇌의 잔기殘氣를 말함이니라. 비유하건대 길게 오래도록 두 다리가 묶였던 사람이 갑자기 풀려서 걸을 때 비록 묶여 있지 않으나 오히려 습관이 남아 있고, 유모의 의복이 오래도록 때가 끼었을 때 순회淳灰-때 빼는 회가루-로 깨끗이 빨아 완전히 없으나 때 끼어 더러운 기분이 남아 있음과 같느니라.(煩惱習名 煩惱殘氣 譬如久鎖脚 人行時難無有銷猶有習在如乳母久故垢着難以淳灰淨洗無有垢垢氣猶在)

번뇌가 멸진하여도 그 여습과 잔기를 습기라 하며 이 습기소마習氣消磨-습기를 녹여서 없앰-를 오후보암悟後保任-깨달은 뒤에 보호하여 가짐-라고 운위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전술함과 같이 오후보임은 원증이후圓證以後-대원경지를 증득한 뒤-의 무위무사無爲無事-힘이 없고 일이 없음-하여 무심무념無心無念-망상과 망념이 없음-한 상적상조常寂常照-진여자성은 늘 고요하고 늘 밝게 비춤-위 대해탈심경大解脫深境-크게 해탈한 깊은경지-이므로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閔道人-배움이 끊어지고 함이 없는 한가로운 도인-의 임운자재任運自在-뜻대로 움직여 자유자재함-한 무심대정無心大定-일체 망념이 없는 진여의 큰 선정-에는 습기는 홍로점설紅盧點雪-붉은 화로불 속에 내리는 눈송이-이다. 그러므로 오직 지정을 원증하여 보임무심할 뿐 습기는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마조는 착의끽반着衣喫飯-옷 입고 밥 먹는 일상생활-하여 장양성태長養聖胎-성인의 태반을 키워 기름-하여 임운과시任運過時-뜻대로 움직여 시간을 보냄-하니 갱유하사更有何事-다시 무슨 일이 있으리요-오 하였으며 지공도 불기섬호수학심不起纖毫修學心-털끝만큼이라도 닦고 배우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하고 무상광중상자재無相光中常自在-모든 상이 끊어진 광명 가운데 늘 자유자재함-라 하였다.
「선문정로」

또한 오늘날 정통 임제 선풍의 부흥에 심혈을 기울이는 서옹 선사는 「임제록연의臨濟錄演義」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생사적 자기生死的自己와 무생사적 자기無生死的自己는 질적으로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이므로 생사적 자기와 무생사적 자기와의 관계는 연속할 수 없고 비 연속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죄와 생사의 자기 연장선에서 연속적으로 진실한 자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비약해서 진실한 자기로 전환하므로 임제선사는 돈오돈수를 주장하여 “나의 견처를 가져 말하면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 옛도 없고 이제도 없다. 얻는자는 바로 얻어서 오랫동안 수행하였다는 세월이 필요없다(約山僧見處無佛無衆生無古無今得者便得不歷時節)”고 하였으며 또 임제 선사는 말하기를 “길에서 도를 통달한 사람을 만나면 제일로 도를 말하지 밀라. 만일 사람이 도를 닦으면 도는 행하여지지 않고 도리어 만가지 삿된 경계가 서로 다투어 일어나게 된다. 반야 지혜 칼이 나온즉 한 물건도 없다. 밝음이 나타나지 아니하여 어둠이 바로 밝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말하기를 아무 조작 없이 평상한 마음이 도이다(路逢達道人第一莫向道所以言若人修道道不行萬般邪部境競頭生智劍出來無一物明頭未顯暗頭明所以古人云平常心是道)”라 하였다.

그러기에 임제 선사는 수修하는 입장은 장엄문莊嚴門 불사문佛事門이지 불법은 아니라 하고 이것은 업을 조작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여 생사를 탈각할 수 없다고 역설하였다. 만일 도를 수행한다면 이것은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통적 조사선을 체험함에는 돈오돈수의 입장이라야 된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임제록연의」

이것은 우리나라 초유의 「임제록연의」에서 임제 선사의 청천벽력과 평지풍파의 종지 견지에서 말한 돈오돈수설을 평이하고 구체적으로 잘 인용연의引用演義하여 독자로 하여금 쉽게 납득하게 한 것이다. 이같이 고금의 선지식들이 한결같이 오후의 점수이천을 배격하였다.
그리고 또 종통상으로 볼 때에도, 「보조어록」에서 자신이 말하기를, 배움이 이은 데가 없고 멀리는 단경을 스승으로 삼고 가까이는 서장을 벗삼아 공부한다{學無所承遠師壇經近友書狀) 하여 스승 없이 혼자서 깨치는 무사자오無師自悟임을 스스로 명백히 밝히었다. 우리 선가의 공부 전수 방법은 스승이 직접 수기하여 전한법을 제자가 친히 계승하는 친송기별親承記別, 한방에서 스승과 제자가 얼굴을 맞대고 법을 증명하는 면증일당面證一堂 방법이 철칙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경로를 겪지 않은 무사독각無師獨覺을 방계傍系 또는 산성散聖이라고 하여 정계正系에 들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조 선사는 종지상으로나 종통상으로나 조계종의 종조나 적손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