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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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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염화미소 - 성전 1996년 07월 173호
가족을 떠나온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 돌아보면 그들이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 내가 서있지만 가끔씩 그들의 모습이 내곁 가까이 다가설 때가 있다. 그때 그들은 마치 내가 언젠가 깊은 산골에서 한번 본 이름 모를 꽃의 지워지지 않는 모습처럼 또는 내가 깊게 감탄하던 밤하늘의 별처럼 정답다. 가족이란 그런 것 같다. 멀리 있을수록 그리워지고 추워질수록 손을 녹이고 싶은 불씨가 묻힌 따뜻한 화로와 같은 것은 아닌지.
나는 어려서 식구가 많은 가정에서 자랐다. 남자가 귀한 집안이어서 남자 아이 낳기를 소망한 부모님 덕택에 대가족을 이루게 되었고 그 덕에 나는 겨우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내 위로 형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나는 아마 세상 구경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위로 한 분의 형님만 있었기에 망정이지... 형이 둘이라는 것은 어쩌면 내게는 끔찍한 상상인지도 모르겠다.
식구가 많은 우리 집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싸움도 잦았고 웃음소리도 다른 집에 비해 유난히 컸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놀러올 때면 빠뜨리지 않고 한마디씩 건네고 가는 말이었다. “이 집에는 사람사는 훈기가 돌아”그들이 부러운 눈길을 남겨 두고 떠난 뒤면 우리 집은 더욱더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 집 풍경 가운데 제일 정다운 하나는 아침을 준비하는 부엌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손맛 가득 넣어 반찬을 만들고 누이들은 그릇을 챙기고 아궁이에 불을 넣고 밥솥에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부엌의 풍경. 구수한 밥 내음이 온 방안에 퍼질 때면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그리고 쪽문을 통해 부엌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도 우물이 있는 앞마당에 나가 세수를 하고 길게 이어지는 밥상에 앉을 준비를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 형제가 웃상을 차지하고 어머니와 누이들은 아랫상에서 식사를 했다. 어찌보면 남녀가 불명해 보이는 듯한 밥상머리였지만 우리 식구 뮤도 그것을 고깝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와 누이들은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빼했다. 여자의 겸양의 미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나는 이미 어릴 적 밥상머리에서 배웠다.
사회가 산업화되고 가족이 핵가족으로 변하면서 이제 이런 대가족의 아름다움은 옛 이야기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아주 드문 것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그 때처럼 가족이 뿜어내는 훈훈한 훈기를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가정의 훈기가 사라진 지금 우리 사회의 온도는 굉장히 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몇 분은 세상을 떠나고 몇 만이 남아 저마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한때 따뜻했던 내 가족들. 사문이 된 지금 그들을 돌아보면 그들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멀다. 애써 연락을 피하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그들과 나와의 연락은 아주 드문 것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가 서야 할 자리를 서로가 알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은 멀리 있음으로써 법계가 평등하다는 나의 길에서 비켜서 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 주는 그들의 마음이 고맙다. 멀리 있어 고마운 그들, 그들이 애써 비켜서 있는 사문의 길을 나 올곧게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