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나 둘 이승을 떠나는 가까운 이들을 보며 살아온 내 나이의 길이가 그리 짧지만은 않구나, 언제나 느긋히 바라보던 저승이 내 것이 될 날도 멀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석존의 그 말씀대로 사람의 목숨이란 얼마나 허밍히 짧은지를 소스라쳐 깨닫곤 한다.
석존이 어느 날 제자들에게 물었다. “인간의 목숨 길이가 어떻드냐.”한 제자가 말씀드리길. “하루 낮 하루 밤의 길이와 같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석존이 다시 물었다.“인간의 목숨 길이가 어떻드냐.”한 제자가 말씀드리길, “손벽 치는 사이와 같습니다”석존은 다시 물으셨다. “인간의 목숨 길이가 어떻드냐.” 또 한 제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호흡 사이에 들어 있습니다. 비로소 석존이 말하기를 “네 말이 맞느니라. 사람이 한번 숨쉬는
그 짧디 짧은 사이가 인간의 목숨이니 육신의 빈 몸뚱이에 매달라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야하느니라”하고 수행을 경책하셨다.
이렇듯 사람의 목숨이란 다시없는 찰나의 순간일 뿐인데 그 찰나를 마치 긴긴 세월인 양 착각해서 사는 게 사바세계의 모습이다. 숱한 욕망에 저마다 아귀다툼해 매달리면서, 나 역시 사문의 옷 속에 숨어 생애의 짧음을 실하지 못한 채 글 욕심의 배부름만을 팽이처럼 노리고 있었으니까.
그 분의 죽음은 그런 나를 아프게 돌아보게 하였고 지금도 꿈인 양 그 분이 고인이 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어느 면에서는 승僧인 나보다 더 승다운 확고한 마음가짐으로 내면을 가꾸며 살아온 일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아내에게도 초파일 하루나 절에 다니게 하고 집에서 바른 마음을 갖고 살도록 강조한 그분의 마음을 어찌 따라잡을 수 있으랴.
아직 입산의 결단을 못내리고 있을 때 내게 준 말이 그래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이 차이가 많음에도 술을 사달라는 맹랑한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그날 밤, 당신 눈으로 볼 때 아직도 인생의 풋내를 벗지 못하고 허덕이는 내게 인생을 좀더 깊이 음미해 보도록 하는 배려로 이 말을 한 듯싶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동굴에 빠지고 말았는데 간신히 칡덩쿨에 매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돌틈에 숨어 있던 흰 쥐와 까만 쥐 한 쌍이 나와 칡덩쿨을 번갈아 갈아 먹고 있었다. 얼마 뒤면 그 사람은 넝쿨이 끊어져 허망히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흰 쥐는 낮이요, 까만쥐는 밤을 상징하는 바 그렇게 낮과 밤의 흐름 속에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짧은 인생마저 우리는 자칫 헛되이 보내고 마는 예가 허다함을 그 분은 내게 경고했는지도 모른다.
그 비유만은 잊지 않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속세에서의 도피만을 홀로 고집하고 있었다. 결국 입산을 감행했고 그 오랫동안 동경해 마지않던 회색빛 세계를 사일 만에 파기하고 돌아와 몇 번의 해가 바뀌던 어느날, 수석 수집가이기도 한 그분이 처가집 근처의 계곡에 쓸만한 돌이 있을까 싶어 왔다가 우리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처제는 대기만성인가, 소설이 언제나 당선되누”하고 물어 나를 더욱 난감히 일그러지게 하고 말았다. 관념적으로만 꿈꾸던 입산이 그처럼 쉽게 무너지고 말았듯 작가의 꿈만 갖고는 글이 써지지 않아 가뜩이나 의기소침해 있던 나로서는 따뜻한 격려마저 짐스럽고 부끄러웠다.
석녀가 아이 낳을 날을 기다리듯 글이 되지 않는 답답한 세월을 버티다 기어이 재입산하여 강원에서 경 공부를 할 때였다. 반 스님 하나가 몸이 아파 그 분의 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게 했다. 다시 만날 날이 아득하던 끊어진 세연이 공교롭게도 남의 일로 이어진 셈이다.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었겠지만 막상 삭발의 모습을 한 채 언젠가처럼 느닷없이 나타나자 그 분은 당황함을 깨문 얼굴로 맞이하고, 진찰을 끝낸 뒤 그 스님과 함께 점심공양을 대접하는 자리도 예전의 자연스런 자리가 아니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미 승僧의 위치에 선 덤덤한 나와는 달리 뒤에 들으니 나를 본 순간 가슴이 몹시 떨렸다는 소년 같은 그의 마음이나, 만난 얘기를 집에 가 했을 때, 정이 많은 외사촌 언니는 밤새 눈물을 흘렸다며 처제를 다시 머리 길러 절에서 나오게 할 수 없겠냐고 우는 아내를 다그쳤다는 말에 쓸쓸한 웃음을 깨물었다. 여자는 여자로서의 도리를 지킬 것을 평소에 주장한 보수적인 그의 눈에 세속을 버린 나의 삭발이 몹시도 안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버님의 장례식 때 거의 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자 이제는 스님이라 부르며 공부 많이 해 큰스님이 되라고 바쁜 중에도 따뜻한 소망을 펴보이는 진정어린 말에 나는 두 손을 합장해 보였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려있다 하든가. 불청객처럼 찾아든 백혈병의 통증을 이기려 몇 달을 쳐 본 사군자 가운데 하나가 경기도 서화전람회에 입선을 하게 되었노라는 말에, 병이 완쾌되면 국전까지 바라보라고 한 일이 어느새 옛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겸허히 인생을 살아왔거늘 잠자듯 저승길 떠나는 복된 마지막 인연을 어째서 가지지 못하였을까.
뒤늦은 안타까움을 접어 새 인연을 벌어드리는 날,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염불소리가 목안으로 간간히 잠기었다. 누구나 언젠가 한번은 가야 하는 먼 길이나 내 손으로 저승길을 밝혀드려야 하는 묘한 비애가 견디기 힘들었다.
나고 죽는 생멸법이 본래 비어있는 깨달음의 경지를 아득히 바라보는 내 시선은 그렇게 차갑게 멀어진 사람의 정에 눈물을 흘렸다. 내게 머문 그 많은 만남 가운데 그와의 만남은 어떤 것일까.
마주 웃을 따뜻한 시간이 있던 그곳에 이제 빈 자리가 행하니 남겨지고 비록 육신은 땅 속에 묻혔지만 그와의 인연은 결코 작은 가지가 아닌, 푸근한 그늘로 내 생애에 드리워지고 어느 방황하는 생애엔가 다시 만나 금생처럼 열반경의 한 비유를 미리 들을 수 있으리라.
꽃보다 향기로운 그 인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