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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종교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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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유종교 산책 - 황선명 1996년 07월 173호
“한국 고유종교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이 연재 마지막회 첫머리에 여러 독자들에게 사과의 말씀부터 드린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문득 “한국 고유종교 산책”이라고 큰 제목을 달았는데, 연재를 하는 동안 그 제목이 아무래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단 정해진 제목을 고치면 적지 않은 혼란이 생길 터이므로 그대로 놓아 두었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지으면서 그 사정을 밝히는 것이 필자의 의무일 것 같다.
처음에 동학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소개한 여러 종교단체들을 아우르는 명칭에 관해서는 학계의 정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에서는 민족종교라는 이름이 어울리듯 하지만 이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에 세계 각 지역에서 새로이 생겨난 종교 단체나 민중종교의 운동을 가리켜 신종교(new religion)이라고 부르는 게 국제적인 추세여서 우리의 경우에도 그렇게 부르면 어떨까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신종교라고 하면 지금까지 서술한 여러 종교 단체 말고도 단양의 구인사로 유명한 대한 불교 천태종이나 통일교라는 명칭으로 일반화된 세계 기독교 통일신령협회도 거론되어야 한다. 이 두 종교 단체는 지금에 와서 대단한 영향력을 지닌 신흥종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도 이 두 종교 단체는 각각 불교와 기독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신종교로 칭하기에는 얼마쯤 무리가 따른다. 그 밖에도 한국에는 60년대 이후 일본에서 흘러들어온 천리교라든지 또는 외국에 본부를 둔 몇몇 신흥 종교 단체들이 앞다투어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어느 것이나 이 연재의 시리즈에 포함시키기에는 성격상 맞지가 않으므로 뺏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그저 명칭만이 존재할 뿐 유명무실해졌음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두 단체가 있다. 그것이 바로 “각세도覺世道”와 “봉남교奉南敎”이다. 각세도의 창시자연 이선명과 봉남교의 창시자인 김재성을 최수운이나 홍암 나철 내지 강증산과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의 된장, 고추장과 김치맛이 배어나는 순수 ‘국산종교’의 창시자리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이선평은 1882년에 황해도 문화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한문 공부를 하다가 장성해서 중국 여행길에 올랐는데 평양 근교에서 허공에 천하대보정진무외天下大寶正眞無外라는 글귀가 나타난 것을 보고 대오각성해서 각세도를 창시했다고 한다. 대체로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세 기둥이라고 할 유, 불, 선 세 교리를 혼합한 교리인 것으로 이해된다. 각세도에서 운수변역運數變易이라 함은 여러 신종교에서 표방하는, 예컨대 동학이나 중산교의 후천개벽설과 큰 차이가 없는 성싶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서울 근처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는 이성재 씨가 이선명의 유일한 후계자로 자처하고 있다.
봉남교는 제주도 사람 김재성이 1937년에 창시한 종교이다. 김재성의 아호가 봉남奉南이므로 봉남교라 호칭하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한동안 물법교 또는 찬물교라고 일컬어졌다. 김재성은 본디 발동기 기사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병을 얻어 약수를 마시고 요양을 하면서 완쾌하기에 이르러, 찬물로 찜질하는 치료법을 근간으로 창교하기에 이르렀다 한다. 봉남교 역시 유, 불, 선의 삼교를 통합하였다고 하나 주로 도교의 양생법과 근친성이 많다. 60년대에 지금의 계룡대의 신도안에서 천지대안교天地大安敎라는 간판을 걸고 크게 활약했던 여교주가 김재성의 제자였다. 지금은 매우 영성零星한 편이다.
이제까지 서술한 바와 같이 동학, 천도교, 대종교 그리고 증산교의 제파 및 원불교와 갱정유도 또 각세도에다가 봉남교를 더해서 한국의 7대 신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증산교와 원불교를 빼놓으면 매우 영성하다. 적절한 비교가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와 역사 문화의 환경이 비슷한 일본의 종교계를 가리켜 ‘신종교의 메카’ 또는 ‘제신諸神의 러시아워’라고 부르는 데 견주어 우리는 규모나 내용면에서 매우 빈약한 편이다.
우리가 문명개화를 드높이 외치는 최근 l세기 동안 너무나도 우여곡절이 많은 가운데, 전통적인 것을 모두 도매금으로 깔보고 묵사발 내 버리고 말았는데, 그 가운데도 신을 믿고 복을 비는 따위의 행위는 모두 피력난신怪力亂神으로 몰아붙어는 사이비 과학 만능주의가 판을 친 결과가 아닌지 싶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사이비, 또는 유사종교라는 식의 모멸스런 저주를 받게 만든 몇몇 본인들의 책임 또한 크다. 다시 말해서 어리석은 민중을 속이고 생명과 재물을 빼앗는 등 광혹편재를 일삼은 일제시대의 차천자나 백백교주 따위의 몽매한 작태는 천길만길 지옥에 떨어져도 그 죄값을 다 못할 것이다.
잠깐 해방 이후 우리나라 종교계의 사정을 돌이켜 보기로 한다. 8.15 해방 6·25 전쟁에 이러기까지의 어간에 대체로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녘 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대거 남하했다. 대거라기보다는 ‘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성 싶다. 동란의 와중에서 이들이 교회에서 쓰는 용어대로 전국의 방방곡곡에 ‘복음의 씨앗 을 뿌렸던 것이다. 그런 데다가 6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주체할 수 없 는교육열과 함께 각종학교라는 명칭 아래, 또는 당국의 묵인 아래 무인가 신학교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는 현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배출된 많은 신출내기 목사, 전도사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방방곡곡에 걸쳐 ‘한동네 한 개척교회운동’을 펼쳤다. 70년대 이후 도시화와 고밀도 주거 지역이 숱하게 등장하는 가운데 한동네 한교회에 다시 한동네 두서너 교회로 발전하는가 싶더니 어느 결에 숱한 대형교회를 양산했다. 세계종교사에서 유례가 없는 교회의 신장세이다. 세계가 경이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절대로 이것이 과장은 아니다. 타임을 비롯해서 세계 유수의 언론 매체들이 앞다투어 보도한 바 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 좀 더 면밀히 연구할 과제이기는 하지만 하여간 여타의 종교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전혀 없게 되었다.
불교계에서는 지금 이천만 신도라 말한다. 그렇다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불교 신도라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에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허허실실이 있다.

예를 들어 불교도와 기독교도의 각각 한 사람을 놓고 비교해 보자. 절에 가는 사람은 일 년에 한번 불공을 드린다거나 몇 번의 제사만 지내도 불교도로 간주한다. 그러나 기독교도인 경우에는 일 주일에도 몇 차례 교회에 출석해야하며, 더군다나 기독교는 기도드릴 때마다 ‘주의 종으로서 십자가의 군병이 되겠습니다’하는 신앙고백을 해야만 된다. 한마디로 불교나 그 밖의 전통 종교는 신앙체제가 느슨한 것에 견주어 기독교는 전문용어로 경성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유대-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은 문화사적으로 공언된 바 있다. 이처럼 일당 백의 그리스도 교인들의 신앙 활동이 왕성한 가운데 여타종교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또한 타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여러가지로 종교간의 묵시적인 갈등이 심심치 않게 문제가 되는 이유가 아마도 거기에 있는 성싶다. 신종교가 차지할 수 있는 신앙활동의 공간이 더더욱 협착해져 가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불교에도 할 말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 유형문화재의 90퍼센트 이상을 독점하는 불교계가 전통 문화의 아랫목을 차지했다고 독선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은 아닌지... 성철 큰스님은 생전에 “어, 법당에서 찬송가 소리, 교회당에서 목탁소리”라는 통쾌한 법문을 내리셨다. 또 지금도 수덕사에 가면 만공스님이 ‘백초시불百草是佛’이라고 쓴 글귀가 바위자락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모두가 오직 부처님만을 유일한 숭배 대상으로 믿는 골수불자가 되라는뜻과는 정반대인가 싶다.
결론을 내리자면 신종교든 어느 종교든 이 땅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엄연한 종교 체제로서 그 나름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