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완성하는 쉼표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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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상락
1996년 07월 173호
며칠 뒤에는 우리 해인강원의 연례 행사인 단오절 체육대회가 있다. 이번이 38회이니까 38회 졸업생을 배출한 우리 강원의 가장 오랜 전통행사이다. 대중생활에서 운력은 예불, 공양과 더불어 빠질 수 없는 주요 일파이고 보면 운동을 운력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해인사만의 독특한 가풍이라고 생각된다.
이번에는 운동장 조명 작업까지 마쳤으니 한여름 밤의 꿈이 영글어 가게 될 것이다. 지난해 축구를 하다가 다쳐서 병원에 갔을 때, 왜 다쳤느냐고 묻는 의사에게 축구하다가 다쳤다고 했더니 너무도 어이없어 하는 표정에 오히려 겸연쩍기까지 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실 사원의 고요와 너무나 대조되는 스님들의 축구 운력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까. 사실 사찰은 고요를 그 생명으로 한다. 아니 사찰이 고요를 생명으로 한다기보다 승가의 수행은 무엇보다 고요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요즘은 사찰은 무지한 정책의 소치로 관광지화됨으로써 고요한 산사의 분위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적이 실망을 안기고 있다.
요즘사회에서도 휴식을 예전과 같이 단순히 논다는 개념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한 쉼과 다시 시작할 일을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분명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에서 일하는 가운데 짧은 휴식 시간을 근로 시간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지 않은가. 참 바람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한 곡의 음악을 얘기할 때 우리는 음표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음악의 완성은 음표사이의 작은 쉼표 없이는 불가능하다. 발전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멈출 수 없는 회전속에서 자신의 참다운 존재 가치를 알어가는 오늘날, 삶의 쉼표를 찍는 일은 더욱 소중하리라. 그들의 바쁜 음표사이에 작은 쉼표를 찍어 그들에게 삶이 단순히 생존경쟁의 개념이 아니라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래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리라.
먼저 그들의 생애 쉼표를 찍으려 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의 삶에 확고부동한 쉼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작은 쉼표를 마련해 두고 가끔씩 도식화된 수행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나만의 자유로운 사유의 자유를 맛보곤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즐겨 찾는 공간은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 법보전 뒤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장경각에 올라와 도수다라전을 거쳐 법보전 마당만 둘러보고 간다. 법보전 뒤의 고요는 언제나 삶의 여유를 찾는 나의 몫으로 남아 있다.
법보전 뒤에는 단순히 고요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뒤로는 옛날 돛대바위가 있던 자리에 새로 세운 수미정상탑의 아름다움이 노송들과 어울려 있고 잘 다듬어진 잔디와 오백여 년의 역사를 고요히 간직하고 있는 180개의 붉은 기둥과 늘 무언의 법음이 흘러나오는 듯한 법보전의 창틈이 있다.
나는 자주 이 곳을 혼자 찾는다. 때로는 무심히 앉아 탑 위를 흐르는 구름을 응시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한 옛 스님들의 고마움을 생각하기도 하고, 또 내가 부처님을 알고 느낀 생의 참다운 기쁨과 행복감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남몰래 다짐하기도 한다.
해인사 일원에는 이 곳 외에도 몇몇 고요히 사색을 즐길 만한 장소가 더 있다. 참배객이 적은 날이면 학사대도 더 없이 좋다. 장경각을 나와 학사대 쪽에서 발길을 옮기다가 바라보는 해인사의 당당한 기상과 멀리 전망대와 남산 제일봉의 힘찬 기운은 하루의 피로를 재충전하기에 충분하다.
포행하기에 적합한 곳으로는 극락전을 뒤로 하여 지족암 가는 오솔길이 있다. 그 길은 고요하여 우리를 깊은 사색으로 이끌어 들이기에 충분하다. 사색이 깊어지다가 문득 고개 들어 솔가지 사이로 바라다 보이는 회랑대의 신비함은 또 어디에 비길 것인가?
사색을 유도하며 우리를 깊은 고요에 잠기게 하는 또 다른 길은 이마도 마애불 가는 길일 것이다. 이 길은 제법 넓고 꽃 무리가 길을 지키고 있어 사색에 향기를 하나 더 얹을 수 있어 좋다.
이곳저곳을 거닐며 나는 나의 삶에 쉼표 찍기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를 완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해인사를 다녀간 사람 가운데 몇 사람이나 자신의 삶에 쉼표를 찍고 산사의 진리를 가슴에 안고 갔을까.
모든 것이 상품이 되고 사찰마저 상품화되어 버린 오늘,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안온한 휴식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들어야 할 새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그들이 안아야 할 숲의 고요와 진리의 음성이 이 곳은 이토록 지천인데 그들은 그것을 얼마나 알고 갔을까. 진정 그들이 이 곳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사찰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깊은 고요와 사색적 분위기와 천이백년 동안 훼손됨 없이 지켜가고 있는 우리 전통 문화의 가치와 큰 그늘 드리운 숲의 조화로운 삶은 아닌지 생각한다.
많은 참배객들에게 해인사는 쉼터이겠지만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단오 체육대회는 또 다른 이름의 작은 쉼표이다. 휴식이 끝나면 모든 스님들은 세상사람들에게 전할 고요하고 명화로운 세계를 만들려고 저마다 노력할 것이다. 낭낭히 들려오는 저녁 간경소리가 안개 낀 해인사를 감싸고 있다. 어찌 남아로 태어나 출가하여 해인사에서 살아보고 싶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