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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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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6년 07월 173호
공염불이었나
이른 무더위가 한창 도시를 달구기 시작하던 6월 10일. 종단의 행정을 도맡아 책임지고 있는 총무원 청사에 중앙승가대 학승이 대거 찾아들었다. 통상 이 때쯤이면 학기말 시험을 치르느라 학업 외에는 일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시기이건만 학승들은 ‘학교의 정상화’를 위해 청사 1층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재작년 개혁불사 이후 종단과 관련한 사안으로 승가단체가 집단적으로 청사에서 농성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교계는 우려와 함께 사태의 추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개혁불사 과정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구종의 의지를 사루었던 장본인들이 다시 농성을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우에 따라서는 종단에 큰 파장을 일으킬 소지가 많은 사건이었다.
사실 중앙승가대, 정확하게 말해서 중앙승가대 학생회는 그 동안 종단안팎의 사회적 또는 종단 현안에 대해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사회민주화를 위한 투쟁도 불사하였고, 권위적인 종단운영을 바로 잡기 위한 구종의 대열에서도 그 누구보다 큰 힘을 발휘하였다. 한국불교 운동사에서 중앙승가대 학생회가 보여준 노력은 큰 발자취로 남아 있다. 한국의 민주화에 대한 기여와 아울러 종단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데에서 이들의 공헌은 부인할 수 없는 전통을 세웠다. 어디 그뿐인가, 졸업한 동문들이 여러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포교의 일선에서 감로의 법음을 전하고 있다. 참으로 중앙승가대의 존재는 한국불교의 발전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중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중앙승가대 학승들이 학업을 재껴놓고 다시 총무원 청사에서 농성하게 된 배경은 종단 집행부의 정책, 특히 승가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그 불신이 얼마나 골이 깊은지 지난 6월 4일 학생회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에는 노골적으로
승가대 이사장(총무원장이 당연직으로 이사장을 겸임하게 되어 있다)이 ‘공염불’만 하여 학인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곧, 월주스님이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교육 불사를 최우선으로 삼고 그 중에서도 승가대의 정규대 승격과 학사 이전을 교육 불사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적극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학승 쪽의 주장에 따르면 이사장이 너무 독선적이라고 한다. 승가대 최고 의결수렴 기구인 운영협의회에서 이사장에게 올린 건의사항어나 학인들의 의견과 질의에 대해 단 한번도 성의 있는 답변을 내놓거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학교 발전의 의지도 전혀 없어 보인다고 성명서에서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회가 성명을 발표하게된 동기는 이사장스님의 일방적인 학교 운영과 학교를 장악아여 학교 발전df 저해하려는 의도를 막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아마 학승들이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까닭은 학장 선출에 따른 잡음인 것 같다. 지난4월 26일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장이던 송산스님이 사퇴를 한 이후 동문회와 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학교운영협의회를 열었고 여기서 9인주비위를 결성, 이 주비위 모임에서 다시 학장후보를 두 사람 선정하여 이사회에 상정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불거져나왔다. 이사장인 월주스님은 13일 이사회를 열어 학교 쪽에서 추천한 두 사람을 모두 제치고 전격적으로 지하스님을 학장으로 선임한 것이다. 이에 학생회는 곧바로 총무원을 항의 방문했고 급기야 학승들 표현대로 ‘구교법회’라는 집단행동을 하게 됐다.

타협은 이루어졌는데
총무원청사 1층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 그 중 몇 사람은 단식까지 하는 상황에 대해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현재의 종단 집행부가 아직 완전하게 안정적이지 못한 점도 있고 학승들이 굳이 집단행동, 그것도 청사를 점거하고 농성한다는 점이 썩 달갑지 않기 때
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학승들의 농성이 자칫 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다. 또 농성 과정에서 감정적 대치로 이어져 아주 볼썽 사나운 사건이라도 일어난다면 불교 집안을 헐뜯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장난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른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지극히 평화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애초 학생회의 요구는 이사장 사퇴까지 담고 있었는데 6월 12일 농성 사흘만에 학교 이전 불사를 비롯한 여섯 개 항의 합의를 총무원장이자 이사장인 월주스님이 약속함으로써 농성을 마무리짓게 됐다. 그 합의 사항에서는 김포 금정사 부지에 9월말 이전에 착공하고 98년까지 완공하여 늦어도 99학년도 신입생을 새로운 학사에서 받겠다는 내용과 함께 정규대학으로의 승격을 위한 제반조건을 갖추겠다고 했다. 또 현재 학사가 있는 안암동 개운사 불사를 올 여름 방학 중에 마무리짓겠다는 약속도 있다.
아울러 사건의 발단이 됐던 학장 문제는 이사회에서 선출한 지하스님으로 받아들여 모든 문제는 일단락 됐다. 애초 학생회 쪽에서 학교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를 발표하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청사에 들어가 무기한 농성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위세에 견주면 얼마쯤 싱거울 정도로 단기전이 된 셈이다.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져 총무원은 총무원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정상으로 돌아갔으나 몇 가지 점에서 이번 농성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렇게 쉬운 합의를 찾을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왜 무리한 상황을 자초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양쪽은 자신들이 서있는 발 아래를 잘 봐야 할 것이다. 권위적인 사고로 대중의 요구를 무시했는지 혹은 상대방에 대한 불신부터 앞세워 물리적인 행위를 했는지, 그래서 밑을 보지 않은 탓에 돌뿌리에 채여 상처를 입지나 않았는지 정확한 자기 진단이 요구된다.
돌아보면 승가대 이전과 관련하여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종단 숙원사업 중의 하나라 하여 근 십 년 전부터 당시 총무원장은 정규대학 인가를 자신의 공약으로 내걸었고 지난 삼선의 명분으로 이 점을 활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앙승가대가 정규대학으로 인가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학교가 있는 개운사는 조건상 정규대학에 걸맞는 시설이 들어설 수 없고 또 서울에 더 이상 대학 설립을 불허하겠다는 정부방침도 난관으로 작용했다. 중앙승가대를 지방에 둘 수는 없던 참에 김포 금정사 부지를 희사받아 비록 교통편이나 입지 조건이 썩 내키지는 않더라도 수도권에 승가대를 건립할 수 있게 됐다. 건립에 드는 막대한 공사비를 종단 자체에서 마련하기 어려워 대중 권선을 통해 기금을 마련하여 작년에 성대한 기공식을 치렀다.

일관성으로 신뢰를
김포 금정사 부지는 승가대가 들어서기에는 여러 난점을 안고 있다. 인근에 공항이 있어 늘 소음에 시달려야 하며 또 수도권이라고 하기에는 동떨어져 있는 등 좋지 않은 조건에 있다. 그래서 기공식 이후에 다른 지역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공공연히 안성 쪽 말도 나오고 다른 지역도 거론되어 정작 김포부지는 기공식만 한 채 공사가 중지된 상태에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 교육 불사에 대한 정책이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불신을 얻게 됐다. 학생회가 지적했듯이 과연 이전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게 되는 것도 그런 과정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사장이자 총무원장이 확고하게 이전불사에 대한 약속을 밝힌 만큼 종단은 일관된 정책으로 신뢰를 회복해야할 것이며 학승들은 학문을 통해 연마에 전념하는 본분의 자세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다른 배움터와는 달리 중앙승가대는 순전히 뜻있는 몇 사람의 원력으로 세워진 곳이다. 1979년 기존의 전통 강원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회과학 등 인접 학문을 배우는 승가 전문교육기구가 중앙에 없다는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배움터다. 당연히 학교운영도 대단히 어려운 가운데 현재의 버젓한 모습을 갖춘 것이다. 밑으로부터 세워진 학교이기에 그간 사회와 종단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전통을 세웠다.
이제 정규대학으로의 승격도 몇 가지 조건만 갖추면 인가를 받을 수 있어 유일한 승가 전문의 정규대학이 실현될 것이다. 따라서 종단은 기존 강원과 중앙승가대의 교육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 내전교육과 인접 학문을 연마하여 변화하는 사회에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정신적 지도자를 배출하는 과정이 정확하게 입안되어야한다.
거듭 강조하는데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 공신력을 확립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집단 농성이 하나의 전례가 되어 물리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구습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바란다. 명분과 본분을 각자 확실히 하는 계기로 삼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