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은 이루어졌는데
총무원청사 1층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 그 중 몇 사람은 단식까지 하는 상황에 대해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현재의 종단 집행부가 아직 완전하게 안정적이지 못한 점도 있고 학승들이 굳이 집단행동, 그것도 청사를 점거하고 농성한다는 점이 썩 달갑지 않기 때
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학승들의 농성이 자칫 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다. 또 농성 과정에서 감정적 대치로 이어져 아주 볼썽 사나운 사건이라도 일어난다면 불교 집안을 헐뜯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장난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른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지극히 평화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애초 학생회의 요구는 이사장 사퇴까지 담고 있었는데 6월 12일 농성 사흘만에 학교 이전 불사를 비롯한 여섯 개 항의 합의를 총무원장이자 이사장인 월주스님이 약속함으로써 농성을 마무리짓게 됐다. 그 합의 사항에서는 김포 금정사 부지에 9월말 이전에 착공하고 98년까지 완공하여 늦어도 99학년도 신입생을 새로운 학사에서 받겠다는 내용과 함께 정규대학으로의 승격을 위한 제반조건을 갖추겠다고 했다. 또 현재 학사가 있는 안암동 개운사 불사를 올 여름 방학 중에 마무리짓겠다는 약속도 있다.
아울러 사건의 발단이 됐던 학장 문제는 이사회에서 선출한 지하스님으로 받아들여 모든 문제는 일단락 됐다. 애초 학생회 쪽에서 학교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를 발표하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청사에 들어가 무기한 농성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위세에 견주면 얼마쯤 싱거울 정도로 단기전이 된 셈이다.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져 총무원은 총무원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정상으로 돌아갔으나 몇 가지 점에서 이번 농성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렇게 쉬운 합의를 찾을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왜 무리한 상황을 자초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양쪽은 자신들이 서있는 발 아래를 잘 봐야 할 것이다. 권위적인 사고로 대중의 요구를 무시했는지 혹은 상대방에 대한 불신부터 앞세워 물리적인 행위를 했는지, 그래서 밑을 보지 않은 탓에 돌뿌리에 채여 상처를 입지나 않았는지 정확한 자기 진단이 요구된다.
돌아보면 승가대 이전과 관련하여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종단 숙원사업 중의 하나라 하여 근 십 년 전부터 당시 총무원장은 정규대학 인가를 자신의 공약으로 내걸었고 지난 삼선의 명분으로 이 점을 활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앙승가대가 정규대학으로 인가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학교가 있는 개운사는 조건상 정규대학에 걸맞는 시설이 들어설 수 없고 또 서울에 더 이상 대학 설립을 불허하겠다는 정부방침도 난관으로 작용했다. 중앙승가대를 지방에 둘 수는 없던 참에 김포 금정사 부지를 희사받아 비록 교통편이나 입지 조건이 썩 내키지는 않더라도 수도권에 승가대를 건립할 수 있게 됐다. 건립에 드는 막대한 공사비를 종단 자체에서 마련하기 어려워 대중 권선을 통해 기금을 마련하여 작년에 성대한 기공식을 치렀다.
일관성으로 신뢰를
김포 금정사 부지는 승가대가 들어서기에는 여러 난점을 안고 있다. 인근에 공항이 있어 늘 소음에 시달려야 하며 또 수도권이라고 하기에는 동떨어져 있는 등 좋지 않은 조건에 있다. 그래서 기공식 이후에 다른 지역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공공연히 안성 쪽 말도 나오고 다른 지역도 거론되어 정작 김포부지는 기공식만 한 채 공사가 중지된 상태에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 교육 불사에 대한 정책이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불신을 얻게 됐다. 학생회가 지적했듯이 과연 이전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게 되는 것도 그런 과정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사장이자 총무원장이 확고하게 이전불사에 대한 약속을 밝힌 만큼 종단은 일관된 정책으로 신뢰를 회복해야할 것이며 학승들은 학문을 통해 연마에 전념하는 본분의 자세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다른 배움터와는 달리 중앙승가대는 순전히 뜻있는 몇 사람의 원력으로 세워진 곳이다. 1979년 기존의 전통 강원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회과학 등 인접 학문을 배우는 승가 전문교육기구가 중앙에 없다는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배움터다. 당연히 학교운영도 대단히 어려운 가운데 현재의 버젓한 모습을 갖춘 것이다. 밑으로부터 세워진 학교이기에 그간 사회와 종단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전통을 세웠다.
이제 정규대학으로의 승격도 몇 가지 조건만 갖추면 인가를 받을 수 있어 유일한 승가 전문의 정규대학이 실현될 것이다. 따라서 종단은 기존 강원과 중앙승가대의 교육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 내전교육과 인접 학문을 연마하여 변화하는 사회에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정신적 지도자를 배출하는 과정이 정확하게 입안되어야한다.
거듭 강조하는데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 공신력을 확립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집단 농성이 하나의 전례가 되어 물리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구습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바란다. 명분과 본분을 각자 확실히 하는 계기로 삼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