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다양한 내용의 월간 「해인」을 볼 수 있다. 불교 잡지가 대개 그렇듯이 한문 많고
알아듣기 힘든 어록 중심의 사찰 포교지로서 소속사찰중심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불자들도 보기 힘들만큼 딱딱하고 생동감 없는 현실 외면적인 내용의 포교지들을 많이 접한다. 그러나 「해인」지를 보면 그런 우려가 쉽게 사라진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저마다 색깔을 가지고 참가하기 때문에 쉽게 읽혀지는 글들이 많다. 특히 사회 문제와 불교문제를 시원스레 꼬집어 내는 ‘해인 리포트’ 는 스쳐 보내기 쉬운 문제를 다시 한번 자각시켜 주며, 승속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밀히 읽는 부분이다. 깨끗하고 시원한 편집과 다양한 내용에서 편집하는 분들의 노고를 읽을 수 있으며 이런 수준 높은「해인」지를 무상으로 다달이 받아보기 때문에 해인 강원이 좋다.
둘째, 빈틈없는 규칙과 체계성을 갖추었다. 망상을 피울 틈이 없는 규칙과 체계성이다. 입승, 찰중, 반장 등 비중 있는 대중소임부터 소두, 정두, 욕두 등의 비교적 가벼운 소임까지 백 명 넘는 스님이 모두 소임을 맡는다.
이렇게 강원 스님들의 손이 안 닿는 곳이 없으며 새벽 예불부터 시작하여 저녁 잠잘 때까지 시간을 쪼개어서 철저하게 활용하고 있다. 하루를 크게 네 등분하여 휴식시간까지 철저히 배려하는 짜임새는 스님들에게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법당, 관음전, 적묵당, 운동장, 발우공양 때에 지켜야 할 규칙을 외우다보면 아랫반 생활은 홀딱 지나간다. 이 모두가 공부 잘하라는 선배 스님들의 배려이다.
셋째, 기술 만물상이다. 강원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라’던 군사문화가
판치던 시절의 얘기가 아니다. 해인사에는 대중 운력이 참 많다. 힘으로 되는 일이야 많은 대중이 모여 하면 쉽게 할 수 있겠지만 전문성을 갖춘 일이라면 출가 전의 자기 기술들을 충분히 발휘해야 쉽게 할 수 있다.
축구할 때는 날랜 스님이 박수 받고, 못질할 때는 목수 출신 스님이 인기 있다. 나도 처음으로 연극대본까지 써 보았다. 각 부분의 기술과 전문성이 인정받는 사회 그 곳이 바로 해인 강원이다.
넷째, 대중 절대 우선의 원칙이 지켜지는 곳이다. 일백 여 명의 스님이 한방에서 사 년 동안 공동 생활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질서와 규칙이 있다. 그 가운데에도 주제 토론이나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육수준, 생활환경 ,성격들이 제각기인 스님들이 의견을 좁혀가며 , 내용을 모아감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일단 의견이 모아질 경우 최대한 존중하여 그것을 실천하려고 모두가 애쓴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도 없다. 종단 개혁 , 가야산 골프장 문제를 비롯하여 사중문제까지 크고 작은 일을 많이 해왔다.
대중 개개인의 의견을 모아 그 내용이 거대한 실천으로 결실을 보았을 때, 이는 큰 힘으로 한국 불교에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다섯째,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곳이다. 삼다도인 제주는 돌, 바람, 여자를 내세운다. 우리 해인 강원은 무엇을 내세울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스님들의 참회 , 운동, 운력을 내세우지 않을까.
말 많이 한다고, 노래(염불) 못 부른다고, 공양 잘 못 푼다고, 팔 흔든다고... 그럭저럭 많이 걸리는 스님은 하루에 4∼500배를 한다. 운동도 참 많이 한다. 매주 수요일에는 축구와 족구, 기분 나면 소프트볼까지 하기 때문에 다치는 스님들도 많다.
이런데 적응하다 보면 성격이 때론 급하고 거칠어지게 된다. 그런 점을 만회하기 위해 기초 소양에 관계되는 것도 많이 한다. 다경원에서의 다도회, 도서관의 비디오 정진, 암자로의 산 행파 포교활동 등을 통하여 일반 대중들과 만나는 시간도 자주 갖는다.
자못 산 속 생활에서 오기 쉬운 무력감, 고립감을 없애기 위해 치열하게 생활들을 해나가고 있다.
모두가 다 공부라 생각하고..............
여섯째, 역사를 앞서간다. 해마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해인사의 각 단에 마지를 올리게 된다. 큰법당, 법보전을 비롯하여 조사전, 걸상탑 등에 마지를 올리고 일 년 동안의 사중 평화를 기원한다. 올해에 지정된 세계문화재 팔만대장경은 이미 해인사를 떠나 온 국민의 자랑이 되었으며 그 보존과 계승의 한복판에서 해마다 정성스레 불공을 올린다. 법당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과 가야산에 붉게 핀 철쭉꽃을 바라보며 천년 전에도 있었을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낸 원을 자랑스럽게 보듬어 감싼다. 오랜 역사를 치열하게 살아왔던 선배 스님들과 민족의 정기를 받으며 수행하는 우리 학인들은 역사, 문화와 더불어 공존하며 해인사를 지켜가고 있다.
일곱째, 자주 먹어서 좋다. 선진국일수록 야채류가 비싸다는 얘기를 얼핏 듣고는 슬쩍 웃어 넘기고 말았다. 이제는 체질 개선이 많이 되었지만 풀뿌리를 먹고 힘든 운력을 하려면 식은땀이 나고 현기증이 돌 때가 많다. 또 육식에 익숙했던 출가 전 생활에서 채식으로 바뀌는 생활습관은 건강했던 스님들을 많이 아프게 한다. 그래서 보이는 데로 많이 먹는다. 물론 스님들끼리만 있을 때이다. 공부하며 쉬는 시간마다 자주 먹기 때문에 공부와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지만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자주 먹는다.
또한 암자나 후원에 몰래 내려가 라면 끓여먹는 맛도 일품이다.
가난해야 수행 잘 할 수 있다는 선배 스님들의 말은 멀어져가지만......
어느덧 부처님 오신 날이다.
위와 같이 좋은 점이 많은 해인 강원생활의 중심에서 많이 벗어난 느낌이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에 깊이 참회해야겠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해인 강원 후배들에게 좋은 해인 강원을 물려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