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주장
통신노동자들이 결연한 의지로 농성을 하게 된 까닭은 이러했다. 노동자의 실질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임금인상이 정부의 임금인상 지침(가이드라인)에 의해 원천적으로 차단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통신시장 개방에 따른 국가중추신경의 외세독점이라는 막중한 문제였다. 이른바 국제무역기구의 출범과 함께 한국경제의 모든 면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시장개방의 문제가 이들의 주요한 문제의식이었다. 국제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야 하는 한국정부가 차마 경제대국의 눈치를 보느라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서 노동조합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대견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98년부터 통신시장이 개방될 예정인데 만일 지금 미국 둥의 요구대로 개방할 경우 국가의 중추신경이나 다름없는 정보 통신은 거대한 국제 자본 의해 완전히 장악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종교 성지를 찾아 들었을 때 종교계를 포함한 국민들
은 그들의 주장에 상당수 동의를 표했고 정부와 공사, 그리고 노동자의 원만한 타협점을 찾는데 종교계가 앞장선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웬만한 타협올 위한 노력이 일정한 성과를 보고 있는 시점이었던 지난해 6월 6일 그것도 국가적 추념일인 현충일날 아침에 정부는 전격적인 노동자 진압 작전을 벌여 종교계노동계와 민주적 인사들 모두 현 정부의 과도한 노동정책과 공권력 남용에 대해 거센 항의를 펼친 바 있다. 대체 정부가 한국통신노동조합의 국가의 장래를 걱정한 주장에 대해 공권력을 사용하고 나아가 농성자 전원을 구속, 파면하는 강경책을 쓴 저의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정책을 고집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점에서는 아예 더 나쁜 쪽으로 정책을 수정하고 있으니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농산물 시장 개방이 민족의 양식을 남에게 저당 잡히는 정책이라면 정보 통신 시장의 개방은 바로 민족의 신경망을 님에게 맡기는, 말하자면 주권에 관한 중대한 문제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지
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국통신노동조합과 공공부문노동조합대표자회의 등 민주적 노동계를 포함한 국민의 목소리를 정부가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즉각 잘못된 정책을 시정할 것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통신의 민주화를 위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동전화를 잇는 차세대 최고의 무선통신으로 다가오는 2005년에는 시장규모만 무려 5조로 예상되는 개인휴대 통신(PCS : PersonalCommunication SeIvice) 시장을 따기 위한 재벌과 정부의 막후 절충이 일반의 예상을 초월하고 있다. 이 시장을 선정하는 재벌은 앞으로 그 규모만으로도 재벌의 판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정통부)는 올3월에 일곱 개 통신 서비스의 설흔여 개 새 통신 사업자의 선정기준을 바꿨다. 본디 지난해 십이월까지만 해도 한국통신을 포함해 3개 업체를 선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재벌들이 이 방침에 강력 반발하자 통신장비 업체를 거느린 삼성, 엘지, 현대, 대우 등 이른바 \'빅사(Big4)’ 가운데 한 개 업체를, 데이콤, 한솔, 금호, 효성 둥 통신장비 제조업체가 없는 재벌이나 업체 가운데 한 곳을 선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통신에 대해서는 본사의 직접 참여를 배제한 채 중소기업 등 일반기업을 주주로 참여시켜 설립되는 자회사子會社에만 사업권을 주기로 했다. 곧 한국통신의 직접적인 참여가 불가능해졌으며 우리나라최대 재벌인 네 개 재벌이 담합하여 이십일세기 최대상품 시장을 장악하게 됐다.
정부가 작년 말까지 고수하던 방침을 바꾸고 이미 통신망을 소유하고 있으며 전국에 기지국을 갖고 있는 한국통신을 배제한 방침은 경쟁력의 강화를 위한 조치였다는 정부의 말을 도저히 믿지 못하게 한다. 한국통신이 그간 축적해온 유무선 통신의 경험과 실적 그리고 각종의 시설을 제껴놓고 별개로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것부터가 경쟁력의 한 축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 각 국의 예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미 업체간의 통합을 우선하고 있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도 그러하거니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 정부만이 기존업체인 한국통신을 제외하고 새로운 신규 사업자를 선정하여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모순의 극치라고나 할까.
이런 정부의 방침이 변경된 배경에는 미국의 입김이 깊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있다. 「한겨레21」의 보도에 따르면 89년 9월에 있었던 한미간의 일차 통신회담에서 미국은 ‘공정경쟁 보장’ 이라는 전제 아래(한국내) \'독점 사업자의 불공정 방지와 경쟁보장을 위해 독점서비스 제공자가 경쟁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할 때 분리 자회사를 설립하여 모회사와 별도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한국정부는 이 요구를 수용하고 재벌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는 밀실행정의 표본으로 국가의 중추신경은 국민의 손을 완전히 떠난 셈이다.
결론적으로 한국통신 노조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 한 국가의 공공성은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굴욕적인 통신시장의 개방을 중단하고 재벌 편향의 통신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아울러 부당하게 파면된 노동자의 원직복귀와 사용자 편에서 자의적으로 해
석될 수 있는 제반 노동관계법은 개폐되어야 한다. 최근정부도 국제노동의 관례를 존중하는 신 경제정책을 발표한 바 있는 만큼 노동계의 요구는 즉각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고자 하는 한국통신노조는 지하철노조 등 공공부문의 노동조합과 연대하여 삼백 만 명을 목표로 이번 6월 2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인 서명운동을 펼칠 예정이므로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 나아가 국가의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통신주권의 수호와 재벌의 독점을 방지해야한다. 독도를 지키고자 하는 애국심과 통신시장을 지키고자 하는 주권의식은 동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