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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속에 감춰진 대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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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염화미소 - 성전 1996년 06월 172호
살아가면서 자꾸 지난 시간의 풍경들을 돌아본다. 막연히 좋았고 막연히 슬펐던 시간의 물결들이 뇌리를 스칠 때마다 너털웃음을 쳐보기도 하고, 때로는 왜? 하는 의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그러면 그 때는 몰랐던 대답들이 지금에 와서는 세월의 메아리 속에서 저절로 들리곤 한다.
유년 시절에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의 하나는 우시장에 소를 내다 팔고 돌아오던 날의 할아버지의 침묵이었다.
그 때 할아버지는 내 질문에 왜 아무런 대답도 활 수 없었는지...... 나는 이제야 할아버지의 침묵에 대해서 어렴풋이 나마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가 어렸던 그 때. 산촌에서의 소는 집안의 큰 재산이자 노동력의 전부를 뜻했다. 이렇다할 농기계가 없었던 그 무렵은 소가 없으면 한 해 농사를 짓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골을 파고 이랑을 낼 때도 그렇지만 농사와 상관없는 일에도 소는 아주 유용하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때 소에 쏟는 정은 유난했고 소는 가족의 한 구성원처럼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사람의 사랑을 먹고 자란 소는 그 만큼 사람에게 충실했다. 젊어서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늙어서는 가산의 일조를 위해 우시장을 향해 집을 떠나던 한국의 소.
소가 팔려 나가는 날 새벽은 유난히 슬펐다.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여물을 먹이던 할아버지의 손길. 할아버지는 소가 마지막 식사를 마치도록 오랫동안 소를 들여다보았다.
소가 떠나던 새벽녘은 우리의 슬픔을 감추느라 그랬는지 해도 일찍 돋지 않았다. 박명의 새벽길을 소를 몰고 몰아 우시장으로 향하던 할아버지와 나. 할아버지가 이랴!이랴! 할 때마다 소는 슬프게 울었고 그 때마다 우리는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산길을 돌고 돌아서는 시간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었던 우시장의 풍경은 할아버지와 나의 슬픔과는 달리 활기 차고 분주했다. 즐비한 국밥집과 각지에서 모인 좌판상들의 외침.
그 분위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곳에서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했고 다만 소만이 슬픈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소의 노고와 소에 쏟았던 정의 무게를 잊어 버렸다.
오후가 좀 지나 우리 소가 팔리고 할아버지가 사 준 운동화 한 켤레를 사 들고 우시장 떠나며 나는 누렁이가 팔려나간 빈자리를 오랫동안 돌아보았다. 집을 떠나며 울던 누렁이의 슬픈 울음이 고여 있는 것만 같았다.
어둠이 내리는 산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께 물었다. “우리 소는 어떻게 될까요. 할아버지, 응?\"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 없이 담배 연기만을 어두어져가는 하늘을 향해 길게 내뿜었다.
나는 하늘로 사라지는 담배 연기보다 끝내 아무런 말씀도 없던 할아버지의 입술을 바라보며 그 말 없음의 끝을 궁금해했다.
이제 나이가 들고 때로 침묵으로 말끝을 닫아야 함을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할아버지의 침묵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이 큰 슬픔의 이름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음을 그리고 그 슬픔의 이름들은 우리가 호명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며 들러주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음을.
그 날 할아버지의 침묵은 세상에 말해질 수 없는 많은 것들은 세월 속에 그 대답을 감추고 있다는 고요한 진리의 가르침으로 여태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