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水心이 불심佛心과 또 다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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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며 - 장원
1996년 06월 172호
조선시대 지리서인 「택리지」에 \'우리나라 물은 맑고 깨끗해 항아리에 담아두고 마시면 그 물맛이 기가 막히고 몸에도 좋다\' 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요즈음 우리나라 물을 침전, 여파, 소독 등의 정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마신다면 그 물맛 또한 기가 막힐 것이다. 각종 유기, 무기의 오염물질이 구색 맞춰 골고루 들어 있을 터이니 말이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그런지, 시절이 하수상해서 그런지 강물은커녕 수돗물조차 마음놓고 마실 수 없게 되었지만 옛날엔 물 좋기로 우리나라 만한 곳도 없었다. 독일 사람들이 맥주를 물먹듯 하고, 프랑스 사람들이 포도주를 즐겨 마시고, 일본 사람들이 차를 끓여 마시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 곳의 물이 좋지 않아서 바로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물 하나만은 최고였고 확실했었는데 이제 그것마저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사실 우리 한민족에게 있어 물이 어디 그냥 단순히 ‘물\'이기만 한가? 물의 오염과 고갈은 곧 우리 생명과 문화의 오염이요, 고갈이다. 지금은 강이 오염되고 고갈되어 모두들 강에 둥을 돌리고 살지만 그전에는 내 집 마당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강을 오가며 살았다.
우리에게 강은 단지 물이 흘러가는 곳만이 아닌 그 지역사회의 문화이며, 생활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물이 좋다’, \'한물 갔다\' 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은 물과 생명을 다르게 보지 않았다. 이렇듯 범상한 의미를 넘어 우리의 생명과 문화 그 자체인 물이 어째서 오염되고 또 고갈되어 가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 깨끗하고 풍족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첫째, 물 오염과 고갈의 책임이 상당부분 정부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물 지킴에 대한 의지가 아직 약하다. 정부 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는 물이 곧 문화요, 생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물 지킴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아니 문화와 생명 이전에 당장 마실 물은 깨끗하고 충분해야할 것이 아닌가?
물이 맑고 깨끗해야 국민들이 마시는 아랫물도 맑을 수 있다. 옛날에는 홍수와 가뭄, 곧 물의 양을 잘 다스리는 임금이 현군이었지만 요즈음은 물의 질을 좋게 유지하는 대통령이 뛰어난 지도자, 그야말로 ‘환경대통령’ 이 될 수 있다.
기업도 물 지킴에 좀더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 우리나라 일부기업들은 물 지킴을 위해 법률에 규정된 최소한의 기준마저도 지켜오지 않았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폐수를 몰래 방류시켜 왔다. 뿐만 아니라 공해산업을 외국으로부터 들여오고 그것도 모자란 산업쓰레기마저 수입해 왔다. 이제 모든 기업은 제품 생산과 매출 실적만을 중시하여 환경보전을 기업의 부수적 기능으로 인식해 온 것을 반성하고, 환경을 보전하면서도 기업의 발전이 함께 성취될 수 있는 새로운 기업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물 지킴의 책임과 의무가 정부와 기업에게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개인의 환경보전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적 환경의식 또한 물 오염과 고갈에 한몫을 했다. 아무리 강과 호수가 오염되어도 생수 사다 마시고 정수기 달면 그만 이라는 생각, 아무리 가뭄으로 온 나라가 쩔쩔 매도 물을 펑펑 물 쓰듯 하는 풍토에서 어떻게 우리나라 물이 견뎌내고 살아날 수 있겠는가? 물지킴은 바로 현장에서의 실천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 기업, 국민 개개인이 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물은 곧 문화요 우리의 생명이라는 인식, 우리 삶의 터전인 한반도는 하나밖에 없다는 인식, 이 좁은 땅에서 더불어 몸 비비며 같이 물 마시며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물 지킴을 생활화 할 때, 우리 물은 기쁘게 살아날 것이다. 물의 오염은 곧 우리네 생명과 문화, 그리고 마음의 오염이다. 수심水心이 불심佛心과 또 다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