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의 선지식은 돈오돈수를 이렇게 주장하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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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종성
1996년 06월 172호
오로지 간화선을 주장하며 척사위정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대혜 선사는 그의 서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위산 선사가 말하기를 만일 편안히 참선하고 고요히 생각하지 않으면 여기에서는 모조리 망연할 따름이다. 만일 바르게 화두를 제시할 때는 돌이켜 제시하는 근본자리를 생각하여 이것이 도리어 멀리가 버림이 아니냐할 것이니 여기에서는 털끝이라도 늦춤을 용납할 수 없다. 만일 생각을 늦추고 마음의 기틀을 멈추면 영자의 미혹을 입는다.
若不安禪靜濾到遮須裡茫然------若於正是話購頭時
返思能提底還是汪彦章否|聽裡問不容髮若佇思佇幾 則
影子. --
「書
이렇듯이 화두를 드는 데서부터 생각을 머뭇거리고 기틀을 머뭇거리지 말 것을 대혜 선사는 강조하였거니와 하물며 깨달은 뒤에 접수적漸修的인 저사저기 佇思佇機를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화두 드는데 있어서 몽산 선사도 말하기를 \"만일 혼침과 도거가 있으면 일이성 으로 화두를 들면 자연히 모든 마가 소멸한다.(若有 沈掉 提 一二聲話頭自然諸賢消滅...「夢山法語」)라고만 하였지 곧 화두만 들으라고만 하였지, 장황히 차츰 닦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돈수사상 의 대종이라 할 수 있는 육조 선사는 말하기를 \"자기 성품을 깨쳐서 단박 몰록 깨치고 단박 몰록 닦으니 또한 점차가 없느니라(自性自惜顆惜顆修亦無漸次...「六祖權經」) 하였고, 또 말하기를 “오직 돈교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아가 삿된 종을 파 하니 미할 때에는 누겁을 지나고 깨친즉 찰나간이다{唯傳願敎門出世破 宗迷來經累 悟則 那間.. . 「六祖擔經)”라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 조계선종은 누구나 육조의 법손으로서 오직 「단경檀經」을 표준삼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밀이다. 그러므로 육조 이하 오가 철종의 정안종사 들은 모두 한결같이 본분활구로써 돈오돈수를 주장하였지 깨달은 뒤에 점수를 거론하지 않았다.
법안종의 삼세적손 三世懶孫인 영명 연수 선사는 말하기를 “돈오점수는 깊이 교리에 해당하고 돈오돈수는 정히 종경이 된다(顆惜漸修探該敎理願順悟順修正當宗鏡...
「宗鏡錄」, 「神門正路」)고 하였으니 지극히 옳은 말이다. 그런데 흔히 영명 선사의「종경록宗鏡鐵」에 대하여 선교일치사상이라고 이르는 사람들이 있으나 「종경록」에서의 염불문이나 교화문은 어디까지나 돈오 이전의 방편설 이지 이를 규봉, 보조 선사가 주장한 점수의 연장선상에서 비약 초월이 아닌 돈오점수 설과는 구분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흔히 돈오점수문 중에서 의례이 남악 선사의 수중불무오염부득 修證不無汚梁不得을 들어 이것이 깨달은 뒤의 점수가 아니냐고 그릇 인증을 하는데 실은 이 남악 선사의 일물부중一物不中 - 한 물건 이라 해도 맞지 않음-과 수증불무修證不無 오염부득汚染不得 -닦아 중독함이 없지는 않으나 더럽혀 물들지 않음 -의 어구는 무서운 화두로서 구태여 말하기로 하면 수증불무란 소지분향補地쫓香의 불행佛行으로 오후점수惜後漸縣 문제로 다룰 문제가 천만 아니며 오후점수 문제와는 전혀 딴 말이다.
그러므로 성철 선사는 「선문정로輝門正路」와 「육조단경지침六祖樓體指針」에서 심중무망心中無忘 -마음 가운데 망념이 없음-으로 소지분향 掃地焚香-청소하고 향 피우는 등 일상의 모든 크고 작은 일 -의 불행佛行기용機用임을 누누이 역설하였다. 그리고 또 박산 무이 선사의 어록에도 수중불무오염부득조에 반야 관조-반야지혜를 비추어 보아 수행하는 10지 보살의 수행으로서 언교와 관행을 모두 쉬어 버린 불지무심佛地無心이 아님 - 아닌 소지분향인 불행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남악 스님이 이르기를 수중修證이 없는 것은 아니나 오염은 없다. 바로 이것은 오염이 없는 수修로서 원수圓修라 하는 것이니 도리어 수자修字로서 붙을 것이며 바로 이것이 오염이 없는 증證으로서 원증圓證이라하는 것이니 도리어 증지證字가 붙을 것인가. 이와같은 즉 종일 닦아도 닦음이 없고 비로 쓸고 향 피우는 일이 모두 한량없는 불사이거니 어찌 가이 없애리요. 다만 수증이 붙지 않는 것이다. 9지 보살도 오히려 공용이 없거니 하물며 10지리요. 등각위等뿔位에 이르러서는 설법이 쏟아지는 비처럼 유창해도 남전 스님은 꾸짖기를 \"도와는 전부 어긋났다”고 하였으니 하물며 10지에서 수행하는 원증이 전의 관조 공부와 원증 이후의 우리 종문과 우열을 비교 해서야되겠는가?
南岳云修證不無汚染卽不得卽此不汚染之修可謂圓修
遭著得簡修字卽此汚染之證可謂圓證箇證字
如此則終日修而無修掃地焚香皆實無量之佛事又安可發
但不著修證九地尙無功用況十地乎乃至等覺法說如雲雨
猶被南泉可斥與道全乖兄十地觀照宗門而較其優勢可乎
「博山警語」
우리나라의 고려 시대의 보조 국사보다 조금 뒤에 출현한 진정 국사의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서도 간단명료하게 돈오점수설이 이견사설異見쨌設임을 드러내 돈오돈수설이 정종정승正宗正乘임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본분을 모르는 승려가 조사 스님네의 뜻을 잘못 전하여 혹 돈오점수가 정맥이라 하고 또 원돈의 교의를 들어 종승을 지으려 한다{譯會眞 之衆侶錯購傳上祖之購或謂觸頓脈憶之門以爲正脈又學圓頓之敎將作宗「禪門寶藏錄」齊20則忘詮會旨之宗章).
또 조선조의 서산 선사는 「선교결禪敎訣」에서 말하기를 \"만일 배우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함을 보고 문득 뻘 밭으로 이끌어 교리를 말하면 사람의 눈을 멀게 함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만일 종사가 이 법을 어기면 비록 설법하여 하늘에서 꽃비가 어지러히 쏟아져 내릴지라도 이는 모두 어리석고 미쳐서, 밖으로 내닫는 것이 될 뿐이다{若見學 人不薦便與拖泥設敎 人眼不少若宗師違此法則雖說法天花亂墮總是癡狂外邊去也.. . 「禮敎誰)하였고. 그의
선교결에서 교에서도 돈오도 있고 무수무중無修無證- 수함도 없고 증득한다는 것도 없음-과 이언절려離言總慮 -말을 떠나고 생각이 끊어짐 -란 말도 있지만 이 말은 비록 말은 같으나 조사선 곧 화두선의 입장에서는 선가 초기로 어디까지나 교판선敎判禪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