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의 꿈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죽비의 소리 - 원택
1996년 06월 172호
성철 큰스님은 곧잘 봉암사 이야기를 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 아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먹지 않는다.\"는 총림의 법도를 실천하려 했다는 얘기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멀리 있는 도반에게 \"그렇게 살지 말자. 부처님 혜명을 철저하게 밝히려면 한번 죽는데 기운 내서 다시 살아 나야하지 않는가?\" 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봉암사로 오게 하였다. 그래서 3. 7일 용맹정진을 하여 도를 깨치게 한 인연은 수좌 스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전설이 되고 있다.
그때는 궁핍한 때라 살기가 참 힘들었다. 누구보다도 자운 큰스님과 법전 큰스님이 대중을 위해 동냥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그러한 가운데 성철 큰스님은 자운 큰스님에게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법망경 보살계를 설하도록 하고는, 신도들에게 \"스님은 인천의 스승이니 법망경 내용대로 스님들에게 스승의 예를 다하여 삼배하시오\" 하여 그때부터 봉암사 에서는 신도들이 스님들에게 삼배를 깍듯이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철 큰스님의 봉암사결사는 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좌, 우 대립과 6·25사변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봉암사에 대한 큰스님의 애정은 퍽 깊었다. 이루고자 한 것을 못 내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여러 얘기 속에 묻어나곤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공개된 큰스님에 대한 자료 가운데 찢은 일력 뒷면에 당신의 이력을 메모한 것이 있다. ‘봉암사의 꿈 - 불교중흥의 환상\' 이라는 친필의 글을 본 나는 무척 충격을 받았다.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서 성철 큰스님은 어떤 환상을 가졌으며, 봉암사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하는 의문이 가슴에 꽉 차 올랐다.
큰스님 살아생전, 저녁에 잠자기 전에 상좌들이 큰스님 다리를 곧 잘 주물러 드렸다. 그때마다 큰스님은 “해인사 큰절에 사람 많이 오제, 도 닦는데 아무 소용이 없고 방해만 되제. 그래서 참배 오는 사람들은 팔만대장경만 보고 가게하고 대적광전 큰법당을 선방으로 하여 대중이 정진해야해. 그래야 도인이 나제, 그래야 되는데...” 하며 걱정을 하곤 하였다.
이렇듯 큰스님은 해인사 대적광전 큰법당을 선방으로 사용해서 도인이 나와야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큰스님 생전에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생활걱정 때문에, 또는 전통적 고정 관념 등으로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큰스님이 해인사에서 가졌던 꿈은 무엇인가. 바로 해인사 같은 좋은 도량에서 도인이 많이 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야산자락 해인사에서 공부하는 대중스님은 큰스님의 원력을 가슴에 담아 하루 빨리 도를 성취하여 무량중생을 이익케 하여 주십시오.’ 이것이 성철 큰스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것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