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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소멸은 참회하는 마음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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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6년 06월 172호
불교에서는 업장소멸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업장이란 과거의 나쁜 행위에 의해 형성된 습
관이나 성격, 체질 등이 현재 올바르게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
서 과거로부터 형성되어 온 좋지 않은 습관이나 체질, 성격 등을 잘 파악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좋지 않은 요인들이 현재의 삶을 지배할 뿐 아니라 차츰 더 나쁜 행위들을 추가해 감으로써 현재보다 더 좋지 않은 미래의 삶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불교에서는 업장소멸을 강조한다.
「관무량수경」에서는 위제희라는 한 왕비의 삶을 통해 업에 대한 과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그가 그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가는 자세를 설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갈 것을 호소하고 있다. 내용의 전말은 이렇다.
석가모니가 만년에 기사굴산에 계실 때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에 큰 비극이 일어났다. 그
것은 태자 아자세가 석가모니의 사촌인 제바달다의 꼬임에 빠져 부친 빈바사리를 유폐시키고 굶겨 죽일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까닭은 아자세가 태어나기 전에 빈바사라 왕에게는 뒤를 이을 이들이 없었다. 점장이를 불러 물어보니, 산중에 한 선인이 있는데 천수를 다하면 다시 이 왕궁에 태어나 왕자가 될 것이라 하였다. 왕은 기다릴 수가 없어 사신을 보내어 선인을 살해했다. 선인은 임종하는 순간에 “아무리 왕이라도 수명이 다하지 않은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내가 왕궁에 태어나 왕자가 되면 왕을 살해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선인이 죽자 과연 왕비가 임신을 했으므로 다시 점장이를 불러 물어보니, 옥동자를 임신하고 있으나 성장하면 대왕에게 해를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왕은 이 사실을 왕비에게 알려고 아기를 없애버릴 것을 부탁했다. 왕비는 왕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아기가 태어나자 높은 누각에 올라가 던져버렸다. 그러나 아기는 행인지 불행인지 손가락 하나만 다쳤을 뿐 무사했다. 이러한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이가 바로 아자세 태자였다.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된 태자는, 제바달다와 결탁해서 부왕 빈바사라를 없애려고 감옥
에 유폐시키고 물과 음식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제희가 와을 면회할 때마다 몰래 음
식을 가져다주었으므로 왕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것을 알게 된 아자세는 크게 화를
내며 모친까지 살해하려고 왕궁의 깊은 곳에 유폐시켜 버렸다. 위제희는 슬퍼하며 기사굴산
을 향해 예배하고 석가모니께 도움을 청했다.
석가모니는 위제희의 소원에 따라 아난과 목련존자를 데리고 위제희의 처소에 몸을 나투었다. 위제희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보자 예배한 후 엎드려 통곡하며 “세존이시여, 저는 과거 숙세에 무슨 죄가 있길래 이런 악한 아들을 두게 되었습니까? 부디 원하옵건데 저를 위해 괴로움과 번뇌가 없는 세계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요\" 하며 호소했다. 이에 석가모니가 시방세계의 정토를 보여주자 위제희는 그 중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을 원하고 그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을 간청했다. 석가모니는 부인을 위해 세 가지 복(三福)과 열여섯
가지의 관법을 설해주었다. 이 설법을 듣고 위제희는 진리의 실상을 깨닫는 무생법인을 깨달았으며 오백 명의 시녀들도 무상보리심을 발하여 극락왕생을 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은 한치 앞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인간에게는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강한 욕망이
있다. 더구나 현실에 문제가 있으면 있을수록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미래를 알고자 한다. 점성술이 유행하고 운세 판단이 인기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미래에 대해 미리 아는 것 이 과연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위제희가 겪어야 했던 비극의 근본적 원인은 남편인 빈바사라 왕과 결탁해서 아들을 낳은
뒤 죽이려 한 것에 있으며, 더구나 자식을 원한 나머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선인을 살해한
것과 점성술사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모든 원인은 위제희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위제희는 지신의 행동을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저는 과거 숙세 에 무슨 죄가 있길래 이런 악한 아들을 두게 되었습니까? 또 세존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제바달다와 같은 악한 자와 친족이 되셨습니까?\' 하고 투정을 하였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의 불행은 석가모니의 사촌인 제바다달가 내 아들을 꼬득였기 때문이니 석가모니가 책임져야 된다는 뜻을 담고 있어, 자신의 불행을 석가모니에게 전가시키려는 잠재의식이 엿보인다.
위제희가 자신의 비극의 원인을 석가모니에게 전가시키려 한 것은, 모든 것을 자기 이외의
사람들의 책임이나 원인으로 돌리려고 하는 현대사회의 병리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행소년, 소녀들이 곧잘 쓰는 변명 가운데에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니?\' 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나는 나쁘지 않다. 나에게 이런 짓을 하게 만든 부모와 사회가 나쁜 것이라고 하여 본인이외의 것에 원인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환경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주위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인간에게는 환경에 맞서서 이것을 뿌리치고 변혁시킬 수 있는 고도의 정신력과 문화적 능력이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은 환경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둔 자기 지신에게 원인이 있다. 문제는 지금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과거로부터의 좋지 않은 습관이나 성격 등을 개선하려는 의지, 곧 업장을 소멸시키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서원\' 을 세우고 \'참회’하게 한다. 서원이란 기필코 목적을 이루고 말겠다는
맹세를 말하고, 참회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마음이다. 깨달음을 이루려면
먼저 업장을 소멸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필코 이 업장을 소멸하겠다는 서원이 필요하며, 이 서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작심 삼일의 흔들리는 마음에 대한 참회가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참회가 깊어지면 그 동안 스스로의 잘못을 보지 못하고 독단과 편견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남을 헐뜯던 아집을 버리게 되고, 남에게 베풀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이 생기게 된다. 참회할 줄 아는 자만이 불교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