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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가 아직 살아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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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박원순 1996년 06월 172호
\"일체중생은 무시제로부터 나의 권속이었으나 도리어 가책하여 은혜를 갚지 못했다.
이와같은 인연으로 중생을 구제하며 물러나지 않겠다. 더욱 용맹을 더하여 일체지를 중득하
면 중생의 생사와 고난을 구제하는 것이 보살\"이라고 불교의 중생 구제와 보살 사상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불타는 고해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구원하는 것은 보살의 영원한 숙제로 낸 것이다. \"인간은 어떤 독자적 자기 완결성을 띤 것이 아니므로 하나의 전체적 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부족과 결여를 보충받고 이와는 반대로 자신 역시 상대방과 사회적 타자를 위해 자신의 고유성을 통해 이바지\" 하게 된다는 마르틴 부버의 이야기가 불교 사상과 다르지 않다. 자본가의 위세 앞에 어찌할 바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개입\'의 손길을 건네지 않는 \'제3자\'가 어찌 기독교적 사랑을 펴고 불교적 중생 구제를 도모한단 말일까.
\'제3자\' 가 문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제3자\' 가 되어 처벌되었다. ‘제3자\' 조항이 문제라고 떠드는 \'제3자\' 가 많았다. ‘제3자\' 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말썽인가.
노동쟁의조정법 제13조의 2(제3자 개입금지) 직접 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근로자나 당해 노동조합 또는 사용자 기타 법령에 의하여 정당한 권한을 가진 지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쟁의 행위에 관하여 관계 당사자를 조종, 선동, 방해하거나 기타 이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노동쟁의조정법 제45조의 2(벌칙) 제 13조의 2의 규정에 위반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 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자 개입금지〉 조항. 실로 얼마나 많은 노동 운동가, 정치인, 지식인 등이 이 조항으로 감옥을 갔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힘없는 노동자가 옆에서 얻어터지더라도 제3자 는 참견하지 말라는 것이 이 법이 명령하는 바이다. 노동쟁의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는 그 사업장의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또 다른 제3자 이면서도 사용자를 편들기 일쑤였던 경찰 외에는 얼씬도 못하게 이 법은 만들고 있는 셈이다.
변호사와 노무사 등 전문가들은 말할 것 도 없고 주변 회사의 노동조합, 정치인, 학생들이 함부로 노동분규 현장에 기웃거렸다가는 이 법의 적용을 받기 십상이었다. 지난 1988년 대우조선사태에 개입한 노무현, 이상수 변호사, 현대중공파업을 벌이던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연설을 한 이부영 의원 등이 이 조항이 적용된 제3자였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 사회적 약자의 고립을 요구한 독재의 그림자였다.
박원순님은 단국대를 졸업하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과 대한변협공보이사를 역임하였다.
지금은 변호사로 있으며 참여연대 사무처장 함께 맡고 있다.
그러면서 사용자측은 거물 변호사와 회계사. 노무사 에다가 공권력의 힘까지 얻어 노동자 탄압에 공공연히 나서도 이 조항으로 처벌되는 사람이 없었다. 불공평하기만 한 법이었다. 수억 원에서 수백 억 원의 뇌물을 주고도 입건조차 안 되거나 법정에 서서도 끔찍한 예우를 받는 재벌회장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법 위의 재벌\" 임을 곱씹고 있다. 이러니 전경련이나 경총 또는 사용자 편의 사람이 제3자로 되는 일은 없었다. 노동자의 편을 드는 \'불순한\' 자들만이 제3자였다.
세계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제3자 개입금지조항〉이 한국의 법제사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1980년 국가보위 입법회 에서였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부 세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기 위한 수많은 법률들을 무더기로 통과한 악법의 꾸러미에 이 조항도 들어 있었다. 통과되자마자 \'전가의 보도’로 사용자와 권력에 의해 애용되었음은 물론이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을 각개 격파하는데 그지없는 무기였다. 흔한 이름이 되고 말았던 \'연대파업\' , ‘노학勞學 연대\' 뒤에는 감옥 가는 제3자 가 잇따랐다. 노동운동의 질곡으로 작용해 왔던 이 조항을 노동계에서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1995년 전국금속노조 6차전 대표자회의에서는 \'3자 개입금지조항 무력화투쟁\' 을 선언하였고 부천시흥지역 민주노조진영은 \'3자 개입\' 을 다짐하였다. 노골적인 \'악법 어기기’ 운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법의 규범력, 승인력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이 조항의 국제적 병상 이 역시 높아져 갔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93년, 94년 연속으로 한국 정부에 〈제3자 개입금지조항〉의 철폐를 요구한바 있다. 국제회의에 나가 이 조항에 의해 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노동운동가에게 외국 사람들은 “아직 제3자 가 살아 있느냐’고 반문한다고 한다. 제3자의 안부를 묻는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의 그 같은 악법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태도였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제3자가 처벌된다는 것이 이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모양이다.
“인간의 인간다운 도덕성은 그가 제3자로서의 남의 고충과 남의 재난에 개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개입하는 \'제3자\' 의 존재가 없다면 인간의 편에 가담하는 역사와 문화를 건설할 수 없다. 야수들의 싸움에는 제3자가 개입하지 않지만 인간들 사이의 분쟁에는 제3자가 개입해야한다.”(김훈, “제3자가 필요하다\", 미디어 오늘, l995. l2. 6일자)
김남주 시인은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라고 노래하였다. “일체중생은 무시제로부터 나의 권속이었으나 도리어 가책하여 은혜를 갚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중생을 구제하며 물러나지 않겠다. 더욱 용맹을 더하여 일체지를 증득하면 중생의 생사의 고난을 구제하는 것이 보살”이라고 설하는 불교의 중생 구제와 보살 사상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불타는 고해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구원하는 것을 보살의 영원한 숙제로 낸 것이다. “인간은 어떤 독자적 자기 완결성을 띤 것이 아니므로 하나의 전체적 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부족과 결여를 보충 받고 이와는 반대로 자신 역시 상대방과 사회적 타자를 위해 자신의 고유성을 통해 이바지\" 하게 된다는 마르틴 부버의 이야기가 불교 사상과 다르지 않다. 자본가의 위세 앞에 어찌할 바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개입\'의 손길을 건네지 않는 \'제3자\'가 어찌 기독교적 사랑을 펴고 불교적 중생구제를 도모하란 말일까.
인도적 개입이 단지 종교적 또는 도덕적 의무에 그치지 않는다. 여러 나라의 형법은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조하지 않는 자\"에 대하여 처벌조항까지 두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인도, 19세기 이후의 러시아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그러한 규정이 있었다. 19세기 수백만 아르메니아인의 죽음을 목도한 유럽 국가들이 그 내전에 개입한 이후 인도적 개입은 하나의 국제법 규범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법제와 법규범을 가지고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지난4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은〈신 노사관계구상〉올 발표하는 자리에서 드디어 이 〈제3자 개입금지조항〉의 철폐 검토를 밝혔다. 그러나 이어 대통령직속으로 구성된〈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현승종 위원장은 “국민의 뜻에 따라 신중하거나 개혁할 것을 언명함으로서 제3자 조항 철폐 문제는 미궁에 다시 빠지는 느낌이다. OECD 가입을 위해서 우리의 수준을 국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국제적 여론의 지탄이 된 \'제3자\' 조항을 없애기는 해야겠는데 그렇다고 선뜻 없애자니 노동운동의 확산을 막을 길이 막연하니 양손에 떡을 든 놀부의 심정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직도 이런 비인도적 법률 들어 우리의 일상과 노동의 자유를 구속하는 한 여전히 우리는 ‘제3자\'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법전 속에 \'제3자\'개입 은 범죄로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행동, 보상받아야 할 용기로 기록되어야한다. 야수들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인 또는 불퇴전의 보살이 우글거리는 사회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