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는 용맹스러움에 있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혜암
1996년 06월 172호
우리 부처님께서는 본래 오신 일이 없습니다. 중생들이 생사의 고통을 받는 인연을 끊어주기 위해서 연극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것을 화신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이 오신 지 삼천 년이 다 되어 가는 부처님의 참다운 소식이여 한없는 하늘에 외로이 밝은 해가 둥글었더라.
부처님의 참다운 소식은 저 해가 뜬 이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이 본래도 성불한 것, 곧 인간의 절대적 존엄성을 가르쳐 주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몸뚱이는 물거품처럼 허망하지만 말하고 들을 줄 아는 참다운 나, 법신, 본래면목은 보물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늘
땅을 만들었고 그 사어의 만물을 만들었습니다. 내 몸도 내 부모가 만든 것이 아니고 내가만든 것입니다. 마음이 우주 법의 왕입니다. 마음밖에 성인이 없고 마음밖에는 일체법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오시기 전이나 뒤에라도 추호도 변함이 없는 진리이며 우주의 근본 원리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지 않고 달마가 오지 않았더라도 불법은 천하에 꽉 차서 봄바람어 부니 모든 꽃이 활짝 피더라.
이 도리가 부처님 진리 지리라는 것입니다. 깨치고 보면 부처님 아닌 것이 없고 진리 아닌 것이 없다고 합니다.
두 손으로 물을 움켜쥐니 맑은 달이 손위에 있고 꽃놀이를 하니 꽃의 향기가 옷에 가득하더라.
진리는 하나라고 하는데, 하나라고 하면 허물이 됩니다. 하나라고 하면 둘이 생겨나고 셋이 생기는데, 이렇게 진리 자리를 말할 땐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절대, 상대가 다 끊어진 자리입니다. 알아듣게 하기 위해 부처니 하나니, 진리니 도니 말했을 뿐, 진리는 부처라고도 할 수 없고, 마음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상대가 끊어졌기 때문에 모양이 없는 물건이고 이름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따라가면 죽습니다.
천상천하가 편안치 않으니 마치 불구덩이 같음이여, 그 중에 중생은 다 나의 이들이더라.
모든 고통이 많으니 오직 내가 구제하리라.
이 세상에 만일 생로병사 네 가지 고통이 없었다면 부처님이 출현하져 않았을 것이요.
부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나의 아들이라는 것은 부처님이 제일이라는 뜻이 아니고, 진리는 하나밖에 없다라는 뜻입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법당에 가서 병을 낫게 해달라고, 오래 살게 해달라고, 돈 벌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 불법이 아닙니다.
생사일대사라고, 세상에 나고 죽는 일이 가장 큰 일이라고 합니다. 나고 죽는 일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몸뚱이 먹여 살리는 일에 욕심만 냅니다. 진심만 내고 어리석은 짓 만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밝은 성품에 등을 밝히고 고해의 배를 저어 번만의 굴속에서 자유해탈의 길을 부르짖고 나고 죽는 길을 헤매는 우리 중생을 제도코자 하시었다. 그러나 태양이 아무리 밝더라도 그늘진 골짜기를 밝히지 못하고 양춘 선생의 힘이 아무리 크더라도 고목에는 미치지 못함과 같이 우리 부처님의 법문이 아무리 크게 울리고 부처님의 광명이 아무리 널리 빛나며 팔만대장경의 이론이 아무리 밝다 할지라도 사람마다 제 귀를 제가 막고 제 눈을 가리는 어리석은 범부들에게야 무슨 공적이 나타나며 어떻게 부처님이 구원할 수 있겠는가.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은 못 건진다는 말입니다. 아미타불은 참선을 하느라고 천 겁을 눕지 않았다 합니다. 허리를 다쳐 혼자 얼어나지도 못할 지경인데도 결제 못할 일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어서 참선을 하러온 보살도 여기 있습니다. 저녁 용맹정진에도 참석하며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허리 아픈 것이 없어지고 혼자 거동을 합니다. 죽는 것을 돌아보지 않고 정성을 내면 부처님, 보살, 호법선신 들이 다 도와줍니다.
죽을까봐 걱정을 하니까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라도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들면 일이 수월해집니다. 편안한 것을 찾고 구하면 더 어려운 일이 생긴다고 부처님이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스스로 애쓰는 사람들은 천지가 도와줍니다. 못한다고 자포자기하면 도움을 못 받습니다.
여러분의 귀를 기울여 사자후 법문을 듣고 실천궁행하여 여러분의 마음 눈을 밝혀 광명의 불국토를 장엄하고 속히 널리 광도 중생하소서.
모든 부처님들께서 다 같이 팔상성도를 보이시는 여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팔상록을 보면 팔상성도 법이 나옵니다. 여덟 가지 모습을 부처님 부처님들이 다 똑같이 보여줍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도 도솔천에서 호명보살로 계셨다고 합니다. 공부를 하면 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연극을 한 것이지 여기 와서 공부하신 분이 아닙니다.
도솔천 호명보살로 계시다 코끼리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 두 번째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는 모습, 세 번째 동서남북으로 생노병사하는 모습을 보고 두려운 생각을 내는 모습, 네 번째 도망질하여 출가하는 모습, 만승천자를 버리고 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만승천자를 버리고 집이 없어서 얼음산에서 공부를 했겠습니까. 고생을 해야 공부가 잘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부시키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편안하면 공부가 안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편안 하려고만 하는데 부처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만승천자를 버리고 고생을 했는지. 게으른 마음이 생기고 공부가 안 될 때는 부처님이 어떻게 공부를 하셨는지 생각하면 게으른 마음이 사라집니다.
편안한 것은 사람을 죽이는 비상과 같습니다. 지혜 있는 옛 사람은 편한 것을 찾지 않았습니다. 도를 닦는 데는 용맹스러워야 합니다. 아들이 뭡니까. 원수와 한 가지입니다. 이름만 아들일 뿐입니다. 집안 식구, 일가친척 내놓고 원수 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인과법 모르니까 잘하다가 잘못하면 원수가 되고 죽은 뒤에라도 원수를 다 갚게 됩니다.
부처님의 은혜는 말로는 다할 수 없습니다. 성불해서 중생을 제도하기 전에는 다 갚을 수가 없습니다. 이 좋은 법을 어쩌다 만났는가 감사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걱정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고 재주가 있고, 남에게 대접을 받고 권속이 많아도 괴롭기만 합니다. 남의 일이고 헛 짓거리입니다. 돈이 많고 학식이 높아도 그것에 얽혀 자유가 없습니다. 이만하면 만족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무 밑에서 법을 전하는 모습, 숲 속에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어떤 부처님도 한 가지 법을 여덟 가지 모습으로 가르쳤습니다. 더 닦으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무전사승으로 전한 것은 결론적으로 중생교화의 방편입니다. 본심은 청정한 부처님인데 밖의 인연 따라 번뇌의 구름이 덮여 어둡다고 하였습니다. 허공에 떠 있는 달은 잠깐 구름에 덮여 있으나 구름에 더럽힘도 없고, 또한 동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객진 번뇌를 자기 본성인줄 생각하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착한 마음도 나쁜 마음도 허망한 마음일 뿐 내 마음이 아닙니다. 나왔다 없어지는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닙니다. 도 닦는 것은 한 생각 일어나기 전 소식을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스님이 자기 마음을 깨치지 못하면 스님이 아닌지라.
견성을 못하면 마음을 모르니 어찌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느냐. 팔만대장경이 나고 죽 는 고통을 벗어주지 못한다.
내가 도를 닦아야 나고 죽는 고통 바다를 해결하는 것이지 부처님들의 설법이 귀중하고 덕행이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모든 도인들이나 스님들께서 나에게 도를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 큰 은혜입니다.
도가 이런 것이다. 네 마음이 부처다 이렇게 갇혀 놓으면 사람 죽이는 것입니다. 모든 도인들이 내게 도를 가르쳐 주지 않는 은혜가 한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말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데 말로 가르쳐 주면 공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방망이로 때리기만 했습니다. 도를 물으면 무슨 망상이냐 하고 때리기만 하니까 공부할 일밖에 없었습니다.
도를 가르치는 법이 이와 같습니다.
참선 하나 하는 법이 모든 법을 다 포섭하고 있는 것이요
하루 스물네 시간 행주좌와 네 때에 참선만 하라.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 참선 밖의 일은 모든 세상만사가 다 마구니의 업을 짓는 일이다.
내 주인공을 찾는 일 밖의 것은 모두 나고 죽는 일로 변해 버립니다. 바쁘다고 참선 못하는 사람들, 이는 다 죄짓는 열입니다. 아들 사랑하고, 남편 사랑하고 돈을 욕심내는 일이 다 지옥에 가는 일입니다. 몇 만 년 살려고 나온 것도 아닌데 무엇 하려고 죄를 짓습니까. 나고 나는 곳 한 세상 속은 것도 억울한데 말입니다.
우바새경계에 이르되, 도닦을 마음을 내는 데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선지식을 가까이 하라.
둘째, 진심을 버려라.(욕심을 백 번 낼지언정 진심을 내지 말라고 합니다. 진심 한번 내면 지금까지 쌓은 공덕이 다 무너져 버리고 지옥에 간다고 합니다.)
셋째, 가르치는 지도자를 따라 잘 배워라.
넷째, 일체중생을 다 불쌍히 여겨라.(얼굴이 잘생긴 사람 부러워 말고, 기력 센 사람 부러워하지 말고, 재주 많은 사람 부러워하지 말고, 잘사는 사람 권력 많은 사람 부러워하지 말라. 반대로 불쌍히 여겨라. 알고 보면 부러워 할 사람 없다는 말입니다.)
다섯째, 부지런히 \'이 뭣고\' 하는 공부를 해라.
속세에서도 도를 닦으려면 이 다섯 가지를 잘 지키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도하는 데 네 가지 요긴한 것은,
첫째, 대원력을 세워라.
둘째, 크게 믿는 마음을 내라.
셋째, 대분심을 내라.
넷째, 대의정을 내라.
대원력이라고 하는 것은 널리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삼세제불이 모두 이 목적 아래에서 성불하셨습니다. 대원력을 마음 속에 확립하지 않고 성불할 수 없습니다. 대원력은 자동차의 핸들과 같습니다. 핸들 없이 자동차가 갈 수 있습니까. 대선심 이라는 것은 내 마음이 부처라는 것을 믿고 선지식의 말씀을 잘 믿는 것이 선심이다라는 것입니다. 선지식을 믿지 않고서는 진정한 대도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설혹 현세에 선지식을 인하지 않고 혼자 스스로 도를 이룬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전생에 선지식의 지도를 믿어서 훈습해 온 선근 종자가 없고는 도를 이루는 법이 없습니다.
대분심을 내라는 것은 참선하는 사람이 화두를 참구하되, 비유컨대 부모 죽인 원수를 만나서 한칼에 두 동강이를 내고자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보내고 내일은 저렇게 허망하게 보낼진대 비록 부처님이 출현할 때라도 또한 성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의정은 사량분별을 떠나서 알래야 알 수 없는 곳에 대고 의단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만일 의정이 없으면 사구, 죽은 공부가 되니 짐짓 조작이라도 \'이뭣고\' 두세 번 부르면서 의정을 일으켜야 합니다. 견성을 하지 못하고 와 크게 깨닫고 못함이 의심을 하고 안한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심이 생명입니다.
이상 네 가지 법이 요긴하여 구족하여야 필경에 성취하나니 성불 못함이, 비유컨대 소나 말의 네 다리가 하나만 없어도 걸어가지 못함과 같다.
끝으로 착한 벗을 가려서 따르고 나쁜 벗을 멀리 여의라.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나는 본래 착한 스승과 착한 벗을 따랐기 때문에 바야흐로 성불했다. 너희들도 그렇게 하면 성불할 것이다.
이상이 부처님이 처사들에게 부탁한 말씀입니다.
세월은 번갯불과 같이 지나가는데 어느 해를 맞이해 마음고향에 돌아갈까보냐.
참선은 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본인들이 용맹스럽게 공부하는 데 있을 뿐이다. 곧장 \'이뭣고’만하면 이 허망한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나갈 것 같으면 모든 법이 한터럭 끝 속에 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