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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민족은 하나, 불교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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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88년 09월 79호
북녘땅에 울려퍼진 반야심경
‘평양 구룡사,
해는 서산에 걸려 있으며 통일을 기원하는 남북 스님의 반야심경 봉독 소리와 합장에 주변의 나뭇잎도 숨을 죽이고 있다…’
분단된 지 40년이 넘어서 처음으로 방문하는 북녘땅의 절터. 남녘의 스님이 북녘의 스님과 함께 우리 민족의 땅, 평양의 사찰에서 남북통일을 서원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도시는 꽤 커 보였습니다. 건물이나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불편한 것은 없었습니다. 백화점에서 쇼핑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읍니다.”
대원(大圓)스님, 지난 7월 20일부터 23일까지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평양에 대한 인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와 같이 말했다. 분단 43년 만에 북한을 방문한 최초의 스님이 되어 우리에게 전한 북한 불교의 사정은 매우 빈약한 것이었으나, 스님이 북한을 갔다온 사실 자체만으로도 반가움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더욱이 평양의 사찰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의식까지 하고 온 터라 기쁘기 그지없다.
6•10, 8•15 등 두 차례의 남북학생회담의 열풍으로 온나라는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매우 고조되었으며, 불교계의 통일운동 전개도 전례가 드물게 광범위하고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40여개 단체가 준비한 8월 15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 불자공동기원 조계사법회가 성황리에 끝났다. 이러한 계기들로 인해서 북한 바로 알기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북한관계 책자, 사진, 슬라이드, 비디오 테이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북한의 실상이 광범위하게 알려지고 있다. 일간신문이나 잡지 등도 북한관계 사진이나 글을 자주 게재하고 있다.
불교계도 「민족 화합공동 올림픽 추진 불교본부」, 「대승불교 승가회」, 「한국 불교사회 연구소」, 「8•15남북 불자공동기원법회 남한준비위원회」 등에서 북한의 실상에 대한 사진 전시회, 비디오 상영을 하고 있으며, 북한 불교의 실상에 대한 연구발표 및 책자 발간 등 다채로운 매체와 행사로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계속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요즈음 불교신문, 주간불교, 법보신문 등 불교계 신문들도 북한 불교에 대한 기사를 자주 다루고 있다.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북한을 알아야 한다. 북한 사람의 머리에는 뿔이 없으며, 그들은 얼굴이 새빨간 괴물도 아니다. 평양에도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휴일을 즐기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있다. 지하철도 있고 높은 빌딩과 고층 아파트 단지가 있음도 관광객의 사진은 전한다. 언제나 가고 싶은 산하, 백두산과 금강산은 여전히 그 때 그 자리에서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북한은 아름다운 산천과 정다운 이웃이 있는 사람사는 세상이다. 우리가 통일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북한이 사람 사는 세상인 까닭이다. 수천년을 함께 해 온 민족이 한갓 이데올로기 때문에 영구히 분단될 수는 없다. 언제부터 사회주의, 자본주의가 생겼는가. 기껏 백여년에 불과하다. 민족이 더불어 살아 온 반만년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짧은 순간이며, 그 이념들조차 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데올로기를 빌미로 독재를 연장해 온 부끄러운 역사는 이제 대중들의 자각으로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날이 멀지 않았다.
인류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 국민들도 역시 그러한데, 우리에게는 분단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큰가. 막중한 군사비, 민족의 존속을 위협하는 핵무기, 이산가족의 아픔, 분단을 빙자한 기본권의 억압과 독재 체제의 유지, 그리고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는 외세의 지배 등, 그 폐해를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제 통일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은 멈출 수 없는 대세이다. 그리고 통일을 위해서 우선 북한을 바로 알려는 운동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통일운동은 통일에 대한 어떤 선언을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노력이 통일운동이기에, 통일은 선언적인 의미를 넘어선 절대적인 과제이다.
그러므로 통일을 위해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 울려퍼지고 있다.

최근의 북한 불교
“북한에는 아직도 기독교인이 있다. 불교인도 있는가? 물론이다. 그들도 기독교인처럼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다. 정말이지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이 절에는 세 명의 승려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우리를 맞은 그 승려는 깊은 산중에는 아직도 수도승이 있다고 말했다.”
「생의 한가운데」 작가 루이제 린저의 「북한 이야기」에서
묘향산의 보현사, 금강산의 유점사, 이제 이 절들은 남한의 젊은 불자에게도 귀익다. 비록 사진으로나마 어슴프레 눈에 익기까지 하다.
88년 5월 북한을 방문했던 서독교포 조명훈 씨의 증언에 의하면 “보현사에 있는 승려는 남한의 승려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다. 법당에는 불상이 장엄하게 있으며, 머리를 삭발하고 가사장삼을 입은 두 명의 스님이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앞의 대원스님(하와이 대원사 주저)과 85년 5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북한방문 기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머리는 길며 양북위에 가사를 걸치는 일본식이었다고 한다,
복장이야 어쨌든 스님들이있다는 것에는 일치한다. 여기저기의 자료를 보면 현재 북한에는 300명의 스님이 있으며 1만명의 신도가 있다고 한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북한에는 종교가 없으며 있다 해도 전시형의 형식적인 종교만 있다는 지금까지의 정부의 선전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북한의 불교 단체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불교 강의를 개최하기도 하며, 「민족고전연구소」에서는 7년에 걸쳐서 고려조 팔만대장경 전체를 한글로 완역하여 25권의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 국역사업은 남한 불자의 최대 숙원 중의 하나이다.)
북한에도 사찰은 있으며 법당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고, 불상 앞에는 촛불이 켜있고 향을 피우며, 염불과 예불 때는 목탁과 염주를 사용한다. 독경(천수경)올 하고 법회 때는 선승이 부처님의 평등과 평화이념 등에 관한 설법을 한다. 불교신자들은 일년에 몇 번씩은 절에 가서 쌀이나 돈을 시주하며 불공을 드리고 공식적인 불교 행사에서든 불기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남한의 불교와 큰 차이가 없는 신앙 생활과 의식이다. 북한땅에 불교가 여전히 남아 있음에 기쁨이 앞서지만 계속해서 궁금증이 많이 있다. 8•15 직후의 9개 본산과 400개 말사는 어떻게 되었나? 그리고 현재 사찰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나? 북한의 스님들은 예불과 법회만보면 되는가?
북한의 대부분의 사찰은 6•25전쟁 중에 미군의 폭격으로 부서졌으며, 전후 복구와 사회주의 건설 시기에도 사찰의 복구 및 보수사업은 뒤로 밀려서 70년대에 와서나 전개된 듯하다. 묘향산 보현사의 복구도 70년대 후반에 시작하여 올해가 되어서야 완료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금강산의 정양사, 신계사, 표훈사와 개성의 계곡사, 관음사, 그리고 성불사, 석왕사 등이 완전하게 복구되었거나 부분적으로 복구가 완료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현재 북한에는 60개의 사찰이 있다고 한다. 북한의 사찰들이, 문화재를 비롯한 민족적 유산의 보존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음은 남한이나 별다름이 없는 것 같다. 또한 사찰은 관광지, 휴양지, 학습당으로서의 역할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스님들은 민족문화 유산의 보존과 관리 그리고 내외국 관광객에 대한 사찰 소개 및 안내 등 사회적 역할-주요 사찰에는 사찰 안내인이 따로 있다. -을 하며 일상생활(사찰 관리, 필요한 노동)과 수행 생활(예불, 수행)을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불교 단체는 1955년에 결성된 「조선불교도연맹」 하나뿐인 것 같다. 조직구성이나 활동상황을 자세히 알기는 힘들지만, 80년 이후 해외 불교계 인사와 자주 접촉하고 국제 모임에도 자주 참석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81년 동남아에 불교대표단 파견, 82년에 몽고에서 열린 제 6차 아세아불교도명의회 참석, 86년 12월 네팔에서 열린 제 15차 세계불교도 우의회(WFB)에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였다. 87년 말경에는 북한의 불교단체 대표가 소련 불교계 인사와 접촉을 가졌다. 또한 88년 미국에서 열리는 제16차 WFB대회에 조선불교도 연맹은 참가 신청을 하고 미국 정부로부터 비자 발급을 기다리고 있다.

민족 대단결의 불교이고자
앞에서 장님이 코끼리 코를 만지는 식으로 북한 불교를 더듬어 보았다. 가서 보고싶은 산하, 만지고 싶고 소리도 듣고 싶은 불교이기에 떨리는 가슴과 손을 가지고 더듬어 본다. 언제까지 이런 식의 탐험을 계속해야 할지 모르지만 단 하루라도 멈출 수는 없다. 당국이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느 정도나 지킬 것인지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이를 요구하는가에 달려 있다.
물론 북한의 종교 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동참과 개조를 주된 목적으로 하여 왔다. 그리고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북한 스님의 말처럼 불교는 미국에서 수입된 기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원래 우리나라에서 계속 있어 왔으므로 박해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앞에서 지적했듯이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다른 사회 • 역사적조건 때문에 특별한 배려를 받고 있으며, 그래서 불교문화 유산에 대한 보존과 관리도 상당히 진척되어 있는 듯하다.
1972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북한은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여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이를 계기로 하여 종교에 대해 좀더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70,80년대에 와서야 종교 단체의 국내외적인 활동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그것이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통일의 기운이 드높은 l988년, 이제는 한갓 구호만의 민족통일이 아니라 통일로의 실질적인 접근을 위한 성과를 만들어 내야한다. 그런데 현 정권은 진정으로 통일을 추진할 만한 신뢰감을 국민에게 주고 있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대중들의 통일에 대한 열의와 결의를 모아서 조국 통일 운동을 전개할 주체 세력의 결집에 더 큰 기대를 갖고 있다. 그리고 북한을 바로 앎으로써 민족공동체 의식을 형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남한 불교도와 똑같은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북녘땅 어떤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통일의 의지를 다진다.
“남조선의 불교도와 만날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우며, 한시 빨리 남북통일이 되도록 부처님께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