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북한 불교
“북한에는 아직도 기독교인이 있다. 불교인도 있는가? 물론이다. 그들도 기독교인처럼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다. 정말이지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이 절에는 세 명의 승려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우리를 맞은 그 승려는 깊은 산중에는 아직도 수도승이 있다고 말했다.”
「생의 한가운데」 작가 루이제 린저의 「북한 이야기」에서
묘향산의 보현사, 금강산의 유점사, 이제 이 절들은 남한의 젊은 불자에게도 귀익다. 비록 사진으로나마 어슴프레 눈에 익기까지 하다.
88년 5월 북한을 방문했던 서독교포 조명훈 씨의 증언에 의하면 “보현사에 있는 승려는 남한의 승려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다. 법당에는 불상이 장엄하게 있으며, 머리를 삭발하고 가사장삼을 입은 두 명의 스님이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앞의 대원스님(하와이 대원사 주저)과 85년 5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북한방문 기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머리는 길며 양북위에 가사를 걸치는 일본식이었다고 한다,
복장이야 어쨌든 스님들이있다는 것에는 일치한다. 여기저기의 자료를 보면 현재 북한에는 300명의 스님이 있으며 1만명의 신도가 있다고 한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북한에는 종교가 없으며 있다 해도 전시형의 형식적인 종교만 있다는 지금까지의 정부의 선전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북한의 불교 단체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불교 강의를 개최하기도 하며, 「민족고전연구소」에서는 7년에 걸쳐서 고려조 팔만대장경 전체를 한글로 완역하여 25권의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 국역사업은 남한 불자의 최대 숙원 중의 하나이다.)
북한에도 사찰은 있으며 법당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고, 불상 앞에는 촛불이 켜있고 향을 피우며, 염불과 예불 때는 목탁과 염주를 사용한다. 독경(천수경)올 하고 법회 때는 선승이 부처님의 평등과 평화이념 등에 관한 설법을 한다. 불교신자들은 일년에 몇 번씩은 절에 가서 쌀이나 돈을 시주하며 불공을 드리고 공식적인 불교 행사에서든 불기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남한의 불교와 큰 차이가 없는 신앙 생활과 의식이다. 북한땅에 불교가 여전히 남아 있음에 기쁨이 앞서지만 계속해서 궁금증이 많이 있다. 8•15 직후의 9개 본산과 400개 말사는 어떻게 되었나? 그리고 현재 사찰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나? 북한의 스님들은 예불과 법회만보면 되는가?
북한의 대부분의 사찰은 6•25전쟁 중에 미군의 폭격으로 부서졌으며, 전후 복구와 사회주의 건설 시기에도 사찰의 복구 및 보수사업은 뒤로 밀려서 70년대에 와서나 전개된 듯하다. 묘향산 보현사의 복구도 70년대 후반에 시작하여 올해가 되어서야 완료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금강산의 정양사, 신계사, 표훈사와 개성의 계곡사, 관음사, 그리고 성불사, 석왕사 등이 완전하게 복구되었거나 부분적으로 복구가 완료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현재 북한에는 60개의 사찰이 있다고 한다. 북한의 사찰들이, 문화재를 비롯한 민족적 유산의 보존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음은 남한이나 별다름이 없는 것 같다. 또한 사찰은 관광지, 휴양지, 학습당으로서의 역할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스님들은 민족문화 유산의 보존과 관리 그리고 내외국 관광객에 대한 사찰 소개 및 안내 등 사회적 역할-주요 사찰에는 사찰 안내인이 따로 있다. -을 하며 일상생활(사찰 관리, 필요한 노동)과 수행 생활(예불, 수행)을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불교 단체는 1955년에 결성된 「조선불교도연맹」 하나뿐인 것 같다. 조직구성이나 활동상황을 자세히 알기는 힘들지만, 80년 이후 해외 불교계 인사와 자주 접촉하고 국제 모임에도 자주 참석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81년 동남아에 불교대표단 파견, 82년에 몽고에서 열린 제 6차 아세아불교도명의회 참석, 86년 12월 네팔에서 열린 제 15차 세계불교도 우의회(WFB)에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였다. 87년 말경에는 북한의 불교단체 대표가 소련 불교계 인사와 접촉을 가졌다. 또한 88년 미국에서 열리는 제16차 WFB대회에 조선불교도 연맹은 참가 신청을 하고 미국 정부로부터 비자 발급을 기다리고 있다.
민족 대단결의 불교이고자
앞에서 장님이 코끼리 코를 만지는 식으로 북한 불교를 더듬어 보았다. 가서 보고싶은 산하, 만지고 싶고 소리도 듣고 싶은 불교이기에 떨리는 가슴과 손을 가지고 더듬어 본다. 언제까지 이런 식의 탐험을 계속해야 할지 모르지만 단 하루라도 멈출 수는 없다. 당국이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느 정도나 지킬 것인지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이를 요구하는가에 달려 있다.
물론 북한의 종교 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동참과 개조를 주된 목적으로 하여 왔다. 그리고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북한 스님의 말처럼 불교는 미국에서 수입된 기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원래 우리나라에서 계속 있어 왔으므로 박해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앞에서 지적했듯이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다른 사회 • 역사적조건 때문에 특별한 배려를 받고 있으며, 그래서 불교문화 유산에 대한 보존과 관리도 상당히 진척되어 있는 듯하다.
1972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북한은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여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이를 계기로 하여 종교에 대해 좀더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70,80년대에 와서야 종교 단체의 국내외적인 활동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그것이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통일의 기운이 드높은 l988년, 이제는 한갓 구호만의 민족통일이 아니라 통일로의 실질적인 접근을 위한 성과를 만들어 내야한다. 그런데 현 정권은 진정으로 통일을 추진할 만한 신뢰감을 국민에게 주고 있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대중들의 통일에 대한 열의와 결의를 모아서 조국 통일 운동을 전개할 주체 세력의 결집에 더 큰 기대를 갖고 있다. 그리고 북한을 바로 앎으로써 민족공동체 의식을 형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남한 불교도와 똑같은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북녘땅 어떤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통일의 의지를 다진다.
“남조선의 불교도와 만날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우며, 한시 빨리 남북통일이 되도록 부처님께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