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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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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토와 비유경 - 김현산 1988년 09월 79호
나무에 물주기
「자타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날 인도의 바라나시라고 하느 곳에서 축제가 있다고 하여 궁궐의 정원사도 그 곳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그 정원사는 정원에서 놀고 있는 원숭이 두목에게,
“나는 지금부터 외출할 테니, 내가 없는 동안 이 정원 안의 어린 나무가 말라 죽지 않도록 물을 좀 주도록 해라.”
하고 명령하고 떠났다.
그러자, 그 원숭이 두목은 휘하의 원숭이들을 모아 놓고
“너희들은 지금부터 어린 나무에게 물을 주어야 하는데 물을 아껴서 사용해야 한다. 때문에 나무 뿌리를 하나하나씩 뽑아서 뿌리가 깊이 뻗은 나무에는 물을 많이 주고 얕게 뻗은 나무에는 물을 조금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물이 부족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하고 명령했다.
원숭이들은 명령을 받은 그대로 실천했다. 그때 한 사람의 현자가 이를 보고
“어찌하여 나무 뿌리를 뽑느냐?”
하고 원숭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우리는 두목님이 명령하신 대로 실행했을 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현자는 그 말을 듣고
“아, 실로 어리석고 무지한 자여, 남을 위해 일한다구 생각하면서, 도리어 남을 망치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 원숭이들은 다만 그저 상사의 명령에 순종하여 물을 주는 데만 정신이 팔려가지고, 나무를 소중히 길러야한다는 사실을 잊음으로써 도리어 나무를 말려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도 이같은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 ‘88 올림픽이라는 잔치가 벌어지는데 그 잔치를 위해 나무를 뿌리째 뽑아 물을 주려는 어리석은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어리석은 행위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점상의 일제 단속이다. 이 노점상 단속의 이유는 ‘88 올림픽에 참가하는 외국인에게 보이기가 창피하다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는 노점상을 그런 시각으로 보고서, 서울이라는 정원을 잘 가꾸기 위해 노점상을 철거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노점상은 서민에게 있어서는 삶의 수단이며 생계의 최후 방편이다. 단지 외국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서민의 생계를 뿌리째 뽑으려는 정책 당국의 소행은 원숭이의 어리석음과 무지에 버금가는 것이 아닐 수가 없다.

훌륭한 지도자 원숭이
역시 「자타카」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옛날 산 속에 착한 원숭이 두목과 나쁜 원숭이 두목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산에 임금님이 사냥을 나와 많은 병사들이 산을 둘러 쌌기 때문에 착한 원숭이 두목은 나쁜 원숭이 두목에게
“이렇게 많은 병사들에게 산이 포위되엇으니 큰일이다. 빨리 내를 건너탈출하자.”
하고 말했다. 그러나 나쁜 원숭이의 두목은
“그따위 위험한 짓은 할 필요가 없어. 강을 건너간다고 하더라도 그 곳에 먹을 것이 많이 있다고는 볼 수가 없지. 그리고 이 곳이 그렇게 위험할 까닭은 없어.”
하고 떠벌렸다.
그리하여 착한 두목을 따랐던 원숭이들은 무사하게 탈출하여 두목의 선견지명을 칭찬하며 잘 지냈는데, 나쁜 두목을 따랐던 원숭이들은 결국 붙잡혀 온갖 고통을 다 겪었다는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자신과 나라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보고 그것에 대처하는 과단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지도자에게 그러한 면이 없다면 그의 불행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민족에게까지 불행을 가져다 주게 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지도자에게 과단성이 없는 것 같다. 그 역시 제오 공화국의 주역으로서 당시의 비리와 권력 남용에 대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우와 의리를 앞세워 오공 비리의 진상 규명을 주저하는 것은 착한 원숭이 두목이 될 수 없는 행동이다.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 현실을 직시하고 과단성 있게 내를 건너는 지도자의 용단은 본인은 물론 대다수 국민에게 신뢰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첩경이다. 은사의 학설을 반박한 제자의 논문이 배은망덕이 아니듯, 친구의 부정과 비리를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진정한 우정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달과 토끼
역시 「자타카」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여우와 원숭이 그리고 토끼가 놀고 있는 곳에 배가 몹시 고픈 나그네가 지나갔다. 여우 등 세 마리의 짐승은 가없게 생각한 나머지 길손에게 줄 음식을 찾아 나섰는데, 여우와 원숭이는 많은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토끼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리하여 토끼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몸을 모닥불 속에 던져 나그네에게 그 몸을 바쳤다. 토끼는 그 공덕으로 인해 달세계로 보내져서 이로부터 달에는 토끼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토끼의 마음가짐이다. 여우나 원숭이는 숲속에서 자기 스스로 사람이 먹을 만한 식량을 구할 능력이 있는 동물이다. 그러나 토끼가 구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토끼풀 정도이다. 따라서 자기 몸을 바쳐서라도 배고픈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가짐은 높이 살 만한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노동자에 의해 번 돈을 가지고 마치 임금 인상이 무슨 선심이나 되는 듯, 임금을 올려 주네, 마네 하는 기업주가 많다. 특히 재벌의 경우에는 마치 자기 혼자 번 돈인 양정치 자금에는 수십억씩 내놓으면서 노동자의 대우에는 인색한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토끼와 같은 희생 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일한 만큼은 내놓아야 하지않는가. 특히 일해재단에 기십억의 성금을 낸 재벌들이여.

우리가 해야 할 일
이 세상에는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않아도 될 일이 있다. 진리를 보는 사람은 그것을 구분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정성을 쏟아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부처님께서는 독화살의 비유를 드셨다. 독화살을 맞아 고통 속에 죽어가는 사람에게 곧바로 해야 할 일은 고통의 원인인 독화살을 제거하는 일이다. 그외의 다른 일에 몰두한다면 죽음은 곧 그에게 닥쳐올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물을 주기 위해 뿌리를 뽑는 일인가, 아니면 예우와 의리를 내세워 전 시대의 비리를 은폐하는 일인가?
우선 우리 시대, 우리 한반도의 중심에 박힌 독화살을 뽑는 일이 지금 해야 할일이다. 그 독화살을 뽑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 고통을 느끼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이 하나가 되어 그들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사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고통의 원인이 되는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 이 시대의 첫 번째 독화살을 뽑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