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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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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엮은 삼국유사 - 김호성 1988년 09월 79호
이번 호에서는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편의 ‘문호왕 법민(文虎王 法敏) ‘ 조(條)를 소개한다


1

“대왕이시여, 비록 선왕〔太宗武列王〕의 크신 지혜와 덕, 여러 장수들의 노고와 백성들이 무수히 내던진 목숨으로 인하여 백제를 쳐서 복속시켰사오나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닌 줄 아뢰옵니다”
“그래 물론이오. 아직 우리에게는 저 백제보다 몇 배나 더 강성하고 용맹한 고구려라는 큰 적이 있지 않소.”
“고구려도 고구려이옵니다만 더욱 큰 걱정거리가 있을 것이옵니다. 이는 마치 혹을 떼려다 도로 하나 더 붙이는 격이옵고, 바깥에 있는 도적을 안방으로 불러들인 것에 비할 것이옵니다.”
“아니, 그렇다면 당나라를 이름이 아니오? 당이 고구려보다 더 어려운 적이 될 것이란 말이오?”
“황공하옵니다.”
“그건 지나친 기우(杞憂)일세. 그대들도 익히 알다시피 선왕께서는 친히 가셔서, 당태종과 약정한 바가 있지 않은가?”
“예,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고구려를 쳐 무찌른 뒤 평양 이남의 전지역을 우리 신라가 차지한다고 굳게 약속까지 한 줄 아옵니다. 하오나 저들의 방자하고 무례함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을 뿐아니라 우리를 도우러 왔다고 믿을 수없는 지경에 이르러, 오히려 제 손의 큰 떡을 젖혀두고 어린아이 손의 작은 떡조각을 욕심내는 격이옵니다. 벌써 백제가 멸망한 뒤, 저들의 횡포가 어떠하옵니까? 웅진(熊津), 마한(馬韓), 동명(東明)이며 금련(金蓮), 덕안(德安)에다 각기 도독부를 두었으며 특히 웅진도독에는 저들의 장수 왕문도(王文度)를 임명하지 않았사옵니까? 저들의 속셈은 불을 보듯 훤히 드러나는 판국이옵니다.”
“음…. 허나 아직 북쪽에 고구려가 있으니 고구려 멸망 때까지는 그냥 참을 수밖에. 싸움에는 순서가 있는 법, 저들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서야 어찌 고구려를 물리칠 수 있겠소?”
무진년(668년), 마침내 문무왕(文武王)은 군사를 거느리고 김유신, 김인문, 김흠순 등과 함께 고구려를 쳐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대왕이시여, 당나라 군사들이 진(鎭)에 머물러 있으면서 횡포를 일삼고 있사옵니다. 저들을 그냥 두어서는 아니될 줄 아옵니다. 전쟁이 끝났으면 저들은 마땅히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옵니다.”
‘이제 저들과도 일전을 불사할 수밖에 없지. 모든 장수와 군사, 그리고 백성들은 한마음이 되어 대적을 무쩔러서 나라의 자주와 독립을 지키며 참통일을 이루도록 할지니라.”
이때가 문무왕 9년(669년)이다.

2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으니 백성들의 인심이 다소라도 흉흉해지는 것은 인지상정, 민심을 안정시킬 계책이 없겠소?”
“근간에 명랑(明朗)법사가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오는 길에 용궁에서 비법을 배워 온 것이 있다 하옵니다. 그를 불러 묘책을 물음이 어떠하올지요?”
명랑법사가 왕명을 받들어 입궐한다.
“낭산(狼山) 남쪽에 신유림(神遊林)이 있사옵니다. 거기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우고 도량을 개설하면 좋겠사옵니다.”
“사천왕이라…”
“불가에서 사천왕은, 정법을 수호하고 뭇악마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재앙을 멀리하는 수호신들입니다.”
“오, 그러하오. 법사께서 사천왕사를 창건하며 나라를 보호하도록 해주시오.”
그러나 절을 다 짓기도 전에 급보가 날아든다.
“당나라 군사가 무수히 우리 국경에 이르러 바다 위를 돌고 있읍니다.”
‘명랑법사를 속히 부르시오.”
급히 달려온 명랑법사,
“대왕어시여, 안심하소서. 비록 사천왕사를 다 짓지 못했으나 방편이 있사옵니다. 여러 가지 빛깔의 비단으로 절을 임시 만들어 풀로써 오방의 신상(神像)을 짓고 유가(瑜伽)의 대덕 열 두 스님을 모셔서 문두루(文豆婁)의 비법을 베풀게 하겠사옵니다.”
그때, 당나라 군사는 교전도 해보지 않았는데 난데없는 바람과 물결이 거세게 일어 배와 군사가 모두 물속에 침몰한다. 그 후 신미년(671년)에 당나라는 다시 조헌(趙憲)을 장수로하여 오만(五萬)의 군사로 쳐들어왔으나, 명랑법사로 하여금 이전의 비법을 쓰게 하였더니 당나라 군사의 배는 또 침몰하였다.

3

“통일을 이루었으니 바야흐로 태태평성대이어늘, 나랏님은 어찌 그리도 성(城) 쌓기를 좋아하시는지….”
“누가 아니래. 즉위하자마자 남산에 장창(長倉)을 지어 식량과 병기를 쌓아둔 것만도 엄청나지 않다던가. 이제 전쟁할 일도 없을 테니 그도 소용이 없어졌는데 말일세.”
“모두가 전쟁에 오죽 시달렸는가?
이제 나라에서는 응당 병역과 부역을 면하고 조(租)를 가볍게 해주어야 할 것인데 도대체 그럴 기미가 보이지않으니 정말 큰일일세.”
“아무래도 성 쌓는 일이 나랏님 취미이신 게지. 진덕여왕 때 쌓다가 그만둔 남산성을 쌓았지 않나? 둘레가 이천팔백오십 보나 되는…. 그뿐인가? 삼년에 걸친 부산성(富山城)에다 안북하변(安北河邊)에 철성(鐵城)을, 그것도 모자라신 게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네. 민심의 행방을 살피고 계시기나 한지….”
“경사(京師 경주)에도 성을 쌓는다는군. 이미 관리들에게 명이 떨어졌다네. 준비를 철저히 갖추라고 말일세….”
문무왕의 무리한 축성(築城)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이 일고 있다.
“대왕이시여. 태백산의 의상(義相) 스님께서 글을 올렸사옵니다.”
“오, 그래? 몇 해 전, 당나라에서 급히 귀국하여, 당이 군사 오십만을 훈련시켜 우리나라를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그 스님 아니더냐?”
“예. 그러하옵니다.”
“어디, 그 글을 읽어보자. 무슨 법어(法語)를 내리셨는지.”
의상스님의 글을 읽는 문무왕의 표정이 엄숙해진다.
‘왕의 정치가 밝으시면, 비록 풀이자란 언덕에 금을 그어 성(城)이라 해도 백성들은 감히 이것을 넘지 않을 것이며 재앙을 씻어 깨끗이 하여 모든 것이 복이 될 것입니다.
하오나 정치가 밝지 못하면, 튼튼하고 긴 성이 있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이를 예사로 넘을 것이며 재해를 막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민원(民怨)의 대상이 되고 있던 축성에 대한 것이었다.
“음. 성을 쌓음은 평소에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아서 후일의 환난을 미리 막자는 것이 그 본뜻이나, 백성들의 고초가 심하고 대덕스님의 경계가 있으니 마땅히 성 쌓는 역사는 중지하도록 하라. 무릇 뭉쳐 하나된 민심보다 더 든든한 성은 있을 수 없느니라.”

4

어느 날, 왕은 그의 서제(庶弟)차득공(車得公)을 불렀다.
“이제 그대는 재상이 되어 백관을 통솔하고 천하를 다스림이 어떻겠소?”
“폐하께서 소신(小臣)으로 하여금 재상을 삼으신다는 말씀을 지금 당장은 받잡기 어렵나이다.”
“그게 무슨 연고이던고?”
“원컨대, 나라 안을 몰래 다니면서 백성들의 부역이 알맞은지 아니면 지지나치게 무겁고 괴로운지, 또 조세는 가벼운지 무거운지, 관리들은 청렴한지 아니면 탐욕스럽고 썩어서 부정을 저지르는지 알아본 뒤에 관직을 맡겠나이다.”
“좋은 생각이로고. 그리 하도록 하오, 대저 정치를 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은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민심에 부합하는 정치를 해야 하거늘, 간악한 신하들의 소리에 귀멀고 눈멀어서 정사를 그르친 예가 고금(古今)에 어디 한둘이던가? 잘 살피고 와서 직언(直言)토록 하오.”
차득공은 승복을 입고 비파를 든 거사의 행색을 한 채 서라벌을 나섰다. 아슬라주(강릉), 우수주(춘천), 북원경(원주), 그리고 무진주(광주) 등지를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