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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단상(斷想)-하안거 정진을 끝낸 도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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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현응 1988년 09월 79호
처서가 얼핏 지나더니 백로(9,7)가 성큼 다가온다. 가을이다.
그대는 청운에 오르는데
나는 청산에 든다.
(君登靑雲去 我向靑山入)
이 맑은 가을에 옛 당음(唐音)의 한 귀절이 떠오름은 웬일일까? 달은 차면 기울고, 잎은 무성하다 이윽고 시든다. 하나의 잎사귀 떨어짐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감지한다 했으니, 찬바람 스치자 어느덧 스산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사실 앞의 옛시는, 친구는 입신양명하여 부귀의 길에 오르는데 자기는 인생무상을 느껴 자연에 돌아감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구월이 오고 산사에서는 여름 안거수행을 끝낸 많은 스님들이 만행의 길에 나서는 해제 즈음에, 시정에서 무더운 여름을 보낸 나는 오히려 청산이 그리워 문득 이러한 싯귀가 생각난 것이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이번 여름을 그때그때 깊은 계곡의 자욱한 찬물 냉기를 떠올리며 견뎌내기도 했지만, 이제 곧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즈음엔 푸른 산자락이 또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그리움으로 물들일까 생각하니 더없이 청산으로 달려가고 싶다.

해제를 하여 걸망을 메고 길을 나서는 도반이여! 간간히 인편을 통하여 불같이 정진하는 그대의 소식은 익히 들었으니, 이제 땀으로 적신 좌복(방석)일랑 가을볕에 내어널고 산문을 나서 시정을 누비는 만행(卍行)을 하시라.
이 세상이 온통 불타는 집인데 어디로 가야 청량함을 구할꼬?
끓는 물 타는 숯불 속에서 얻으리라.
옛 선사들의 번개질문과 천둥대답이다. 원효와 경허를 서투르게 모방 말고 두타행으로 잠행하면서 겸허히 중생사를 느끼고 살펴 그대의 법력을 함께 나누어 주시길. 그대를 통해 중생들은 부처님의 강락아정 청량함을 얻을 것이며, 그대는 중생의 아픔을 통해 보살의 대비를 성취하는 청량함을 얻으리니.
나는 한편 청산으로 돌아가 고덕스님을 참배하고 법을 묻겠다. ‘유위(有爲)도 구하지 아니하고 무위(無爲)도 구하지 않으니, 마침내 어느 곳에 안심입명하겠읍니까?’ 아마 방망이 서른개 쯤은 짊어지고 여쭈어야겠지. 아무려나 큰스님의 넉넉한 품에 새삼스런 투정과 푸념을 늘어놓은들 어떠하랴.

구월은 의외로 심각하고 맑고 싸늘한 달이다. 9,7 해인사 승려대회 기념일, 분단 현실과 더불어 서울올림픽, 평화구역 선포와 집회 •시위 금지, 한가위 보름달, 스님들의 만행(卍行), 이 모든 것이 뼈다귀를 감춘 채 잔영처럼 흘러간다.
오늘의 불교현실과 민족현실은 이 구월에 다 나타나었으니 가까이로는 구월을 잘 살피자.

오늘의 불교 집안의 현실은 상당히 배타적에고 편협하며, 사상적 • 실천적 전망 또한 바로 잡혀 있지 못하다고 본다. 이런 즈음 지난 봄에 여러 스님들과 뜻을 같이 하여 ‘대승불교승가회’를 창립하였음은 그대도 알고 있으리라.
‘깨달음(부처)’과 ‘역사(중생)’를 결합하여 ‘보디 • 사트바’의 대승불교의 기치를 내세우는 일은 단순히 불교단체의 또 하나의 탄생이 아니다. 기왕의 불교적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결합하면서-이 결합은 양적인 결합이나 형식적 결합을 뜻함이 아니며, 각성된 실천적 삶으로 이끌도록 이 둘을 하나로 묶는 일정한 관점을 반드시 갖춘 결합이다. -진정한 불교적 삶으로 나아가고자 함이다. 그리고 삼보(三寶)의 한부분이자 불교문제의 책임있는 당사자인 승가가 전면에 나서 불교문제, 사회문제와 직접 부딪침과 더불어 불교중흥과 중생계의 안락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우리들의 취지는 ‘선(禪)의 정신과 대승(大乘)의 정신으로 종지와 종론을 바로 잡고, 수행론을 정립하여 정법을 구현하고 정토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불조의 가르침에 근간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특히 오늘의 현실 속에서의 제반여건과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는 일을 필요로 한다. 오랜 기간을 정진한 그대의 수행력이 이러한 제반문제의 해결에 힘이 될 것은 필연지사. 그대의 허심한 동참을 한껏 바라마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일도 없는 일만 못하느니.’ 하는 노스님의 훈도를 받으며 지내온 우리가 아닌가? 그러나 좋은 일과 없는 일은 어떻게 다를까?
바닷물이 잔잔해짐에 만물의 모습이 물결 위에 나타난다 하여 해인(海印)이라 했으니, 더위를 잠재우고 정열을 열매 맺게 하는 투명한 이 가을에 우리는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삶들의 상관성과 변화성을 드러내자. 그래서 마침내 청산(靑山)과 청운(靑雲)이 본래 둘이 아닌 것을 알아채자, 도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