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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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8년 09월 79호
천수가 고아원을 뛰쳐나간 것은 남쪽바닷가에 흔치 않는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도 아침밥을 타기 위해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우그러진 양재기 그릇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아이들은 차례가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만약에 새치기를 하거나 떠들면 밥도 안 주고 꿇어앉아 벌을 서야 했다.
여자 이이들이 먼저 받아가고 그리고 그날은 제일 앞장선 꼬마둥이 웅이가 밥과 국을 받아갔다. 줄은 초춤조춤 앞당 겨져서 천수 차례가 왔다.
천수는 밥을 받고 그리고 한 손에 시래기국을 받아 막 돌아서다가 몸을 움찔했다. 밥그릇과 국그릇을 털썩 놓치고 그대로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천수는 개구리 헤엄을 치듯이 허위대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괴로와했다.
밥을 나눠주던 아주머니들도, 밥을 타기 위해 서있던 아이들도, 모두 엉거주춤 조용해졌다. 천수의 간질발작은 많이 보아왔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은 움츠리며 겁을 내었다.
오분 뒤에 천수는 정신을 차라고 일어났다. 해쓱해진 얼굴을 들고 돌아보니 밥그릇이 나뒹굴어 흩어지고 국그릇이 쏟아져 있었다.
“천수 지랄하다가 이제 깨어났다!”
누군가 소리치고는 깔깔 웃었다.
아이들이 따라서 까르르 웃자 천수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휑하니 나가버렸다.
언제나 있는 일이어서 아무도 말리거나 붙잡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다시 밥을 타다 먹고 금새 아무일도 없었던 것 같
았다.
천수의 쏟아 놓은 밥그릇은 식사가 모두 끝난 다음 설젖이를 할 때야 주워다가 함께 부시었다 천수는 그냥 굶은 채. 밖은 내리던 눈이 그쳤고 내렸던 눈은 쌓이지도 않고 녹아 있었다.
점득이는 막사 언에 웅크리고 앉아 창덕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창덕이는 나보다 나이 한 살 적은데도 생각하는 것이 깊고 넓었어.’
점득이는 앞이 보이지 않고부터 왜 지꾸 마음이 빗나가는지 괴로왔다.
‘창덕이는 낯선 미국에 가서 어떻게 살까? 미국이란 나라는 어떤 곳일까?’
그렇게 골똘하게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가까이 다가왔다.
“점득아.”
천수였다.
“천수야, 어디 갔다가 왔니? 아침밥도 안 먹고 배고프지않니?”
점득이는 창덕이 생각을 하던 터여서 천수가 가여워졌다.
“괜찮어. 그런데 점득아…”
“……”
“나 천사의 집에서 나갈 거야.”
“나가다니, 어디로 간단 말이니?”
“그래. 지금 길거리엔 엄마 아버지 잃은 아이들이 많어. 구걸도 하고 구두닦이도 하고 껌팔이도 해.”
“그래?”
“그러니까 나도 나가서 혼자 살 테야. 나 여기 고아원이 싫어.”
“……”
“그냥 가버리려다가 모두 찾을 것 같아서 너한테 이야기하는 거야.”
“……”
“넌 누나가 있으니까 외롭지 않겠지?”
“……”
“난 아우도 없으니까 여기 있으나 밖에 나가나 마찬가지지.”
“……”
“그동안 혼자 많이 생각했어.”
“……”
“점득아, 우리는 어쨌든 이 어려운 세파를 헤치고 나가야하지 않니.”
“……”
점득이는 ‘세파’ 란 말을 얼른 깨닫지 못했다.
“이 다음에 성공하거든 만나자.”
천수는 점득이 손을 끌어다 쥐었다.
“잘 있어. 점득아.”
“처, 천수야…”
점득이가 더듬거리는데 천수는 재빨리 일어나 나가버렸다.
그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 뒤 주일날, 장대성 목사님이 왔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조금 뒤 원장님 방에서 떠들썩 시끄러웠다.
원장님과 목사님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목사님이 원장님에게 아이들을 좀더 잘 보살펴 주도록 권하다가 결국 다
투게 된 것이다.
서로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말다툼은 결국 나쁜 결과를 가져와 버렸다.
“목사님은 앞으로 주일날에도 절대 천사의 집에 오지 마십시오.”
원장님이 마지막 말다툼의 마무리를 짓는 말을 했던 것이다.
조금 크고 살이 찐 윤 세원 원장님과 조금 작고 여윈 몸집의 장대성 목사님은 서로 마주 노려보다가 헤어졌다.
장 목사님은 고아원을 나갈 때 점례와 판순이한테 점득이를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내가 너무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어 너희들을 이렇게 버려두나 가슴이 아프다.”
장 목사님은 점득이의 손을 잡고,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병원에 한 번 꼭 가보자꾸나.”
그러고는 머리를 숙이고 힘없이 걸어나왔다.
장 목사님은 다음 주일부터 오지 않았다.
전부터 큰 아이들이 고아원의 사정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이때부터 점점 작은 아이들한테까지 옮겨갔다.
동진이가 윤세원 원장님에게 대어들었다. 아침체조 시간이 끝난 바로 뒤였다.
“원장님!”
“왜 그러느냐?”
“우리한테도 맛있는 쌀밥을 주시고, 한 번이라도 새옷을 주십시오.”
원장님은 무슨 말인지 갑작스러워서 못 알아 들은 모양이다.
“원장님의 자식들 미선이 성길이처럼 새 운동화에 새 양말을 주고 학교에도 보내주십시오!”
원장님은 겨우 알아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동진이는 원장님의 말엔 대답하지 않고 계속 따지고 들었다.
“우리는 고아입니다. 전쟁 때문에 부모님을 잃고 고향을 잃었읍니다. 그래서 이렇게 거지가 되어 얻어먹고 살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짜로 얻어먹지는 않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합니다.”
“너희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되는데 밥값이나 되거든 그따위 말을 해라. 건방전 자식!”
원장님은 화가 나서 붉으락푸르락했다.
동진이는 끄떡도 않았다.
“그렇담, 오늘부터 우리들에게 일을 시키지 마십시오. 원장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니 그냥 먹여 주십시오.”
윤세원 원장님은 기어코 손을 치켜들더니 동진이의 뺨을 철썩 때렸다.
“못된 자식! 여기가 싫거든 나갓!”
“……”
동진이는 한쪽 볼이 빨갛게 물이 든 채 원장님을 쏘아보았다.
보고 있던 작은 아이들이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동진이도 금방 울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결국 동진이는 마지막 한마디를 차분히 말했다.
“당신은 양의 가죽을 쓴 늑대요.”
동진이는 침착하게 세수를 하고 그리고 필꿈치가 뚫어진 야전잠바를 입고는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하고 천사의 집을 떠났다.
원장님은 불잡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불씨를 일으켰다. 아이들은 둘씩 셋씩 모여서 쑤군대었다.
저녁 때 아이들 스무명이 한꺼번에 뛰쳐나가 버렸다.
“원장은 우리를 이용해서 자기 배를 채우고 있다.”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고아원이 뒤집혀진 것이다.
그날 밤, 판순이가 점례한테 소근거리며 말했다.
“점례야, 우리도 나가자. 그래서 고향집으로 돌아가자꾸나.”
“어떻게 고향에 가니?”
“걸어서 가지.”
“……”
“괜찮어. 가면서 밥을 얻어먹고, 트럭이 지나가면 태워달라고 하자.”
“점득이는 어떻게 하니?”
“데리고 가야지.”
“잘 걸을 수 없잖어.”
“손잡고 가면 돼. 점득이는 용감하니까 씩씩하게 갈 거야.”
점례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비록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계시는 곳이지만 외가집 모과나무골에 가고 싶었다. 외숙부님과 승숙이와 승기가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
‘승숙이 언니는 벌써 나이 스물이구나.’
점례는 마음 속으로 나이를 꼽아보았다.
‘외숙부님께 비행기 폭탄 이야기를 말씀드려야지. 아아, 엄마……’
점례는 판순이 말을 따르기로 했다.
천사의 집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고아원도 만원이었다. 그래도 모자라 집 없는 아이들은 길거리에 수없이 있었다.
윤세원 원장님은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달아난다고 붙잡거나 말리진 않았다. 달아난 만큼 거리에서 또 데려오면 되기 때문이다. 데려오기보다 찾아오는 아이들을 다 감당 못하는 판인데 나가고 싶어 나가는 아이들을 불잡을 까닭이 없었다.
점례는 점득이에게 부엌 뒤 창고에서 두툼한 덧저고리 하나를 몰래 꺼내다가 입혔다. 판순이와 함께 셋이서 가시철사로 엉성하게 쳐놓은 울타리를 뚫고 나오는데 아이 하나가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쳐다보니 기만이였다. 지난해 점득이가 던진 돌맹이에 맞아 이마를 다친 곳에 새끼손톱만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나도 같이 갈 테야.”
기만이는 조그만 몸뚱이를 점례 등에 기대며 울상을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떼어놓을 수 없어 점례는 기만이 손을 잡았다.
넷은 아직 어스름이 깨이지 않은 새벽길을 더듬으며 걸었다.
언덕길을 내려와 판순이가 한번 뒤돌아봤다. 우중충한 비탈에 전쟁이 만든 가엾은 목숨들의 움막이 청승맞게 웅크리고 있었다. 벌써 거리는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찼다. 시커먼 석탄부대를 인 아주머니들이 석탄처럼 시커먼 모습으로 종종걸음치고 있었다.
자갈을 부수는 듯한 전차소리에 섞여 장사꾼들의 외치는 소리는 모두 살려달라는 외침이었다.
점례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점득이의 손을 꼭 잡고 시끄러운 거리를 조심 조심 걸으며 고향까지의 거리는 까마득히 멀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기만아, 이리 와. 넌 내손 붙잡고 가자.”
판순이는 겁에 질려 있는 기만이의 손을 불끈 틀어쥐고 앞장서서 걸었다. 흡사 고향까지의 길을 단숨에 걸어갈 듯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례 손에 끌려가는 앞못보는 점득이는 판순이 걸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판순아, 천천히 가.”
점례가 불러 세웠다.
판순이는 멈추어 서서 뒤돌아봤다. 점득이는 정말 엄마젖 먹던 힘까지 다해 걷고 있었지만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판순이는 그렇게 몇걸음 걷다가는 멈추어서고 멈추어서면서 걸어야 했다.
점득이는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렸지만 가슴은 활활 달아오르듯이 얘가 탔다. 누나의 걸음을 쉽게 띠라가 주지 못해 미안하고 안타까왔다.
해가 떠오르고 거리는 더욱 시끄러워졌다.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걱정이 몰려들었다. 무얼 먹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했던 것이다.
그때, 아이들 눈에 얼핏 나타난 것이 깡통을 든 거지들이었다. 점례는 움찔했다. 넷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것이 정례였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판순아, 여기서 점득이하고 같이 기다려.”
“왜 그래?”
“뭘 먹을 걸 구해 와야 하잖니.”
“그래. 그럼 나하고 같이 가.”
둘은 점득이와 기만이의 손을 끌어다 꼭 붙잡게 했다. 그리고는 골목길 구석에다 둘을 앉혀 놓고,
“너희들 우리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했다.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