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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Pali어에 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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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박용길 1988년 09월 79호
얼마 전에 신문지상을 통하여 본 다음과 같은 기사가 생각난다.
간단히 요약하면, 미국의 한 과학자가 모나리자의 체형을 각 부위별로 수치화하여 이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우아하고 달콤한 그녀의 실제 음성-어떤 것이 그녀의 진짜 목소리인지 알아볼 이가 누가 있을까마는-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때에 필자가 이 기사를 읽고 음성 합성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기억이 오늘 다시 새삼스럽다.
물론 이와 같은 첨단과학기술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용모나 행동거지만을 보교도 얼마든지 그의 인품은 말할 것도 없고 목소리까지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모두 각자의 고유한 음색과 음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단순한 어림짐작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반면에, 몸집과 체형 및 골격의 구조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음성을 인공의 힘으로 합성해내는 기술을 이용하면, 생존해있는 사람은 물론이요 이미 세상을 떠난 이의 목소리까지도 모두 그 개성대로 근사하게 재생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찌기 이천오백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우리의 대교주(大敎主) 석가모니불의 목소리를 지금 이 시대에 듣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그것은 이론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 문제는 석가모니 생전의 그 체형을 정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더러는 가장 인간적인 형상을 하고 있는 불상도 전해 오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과연 석가모니 진신(眞身)을 어느 만큼 비슷하게 모사했느냐에 따라 그 재생된 목소리 또한 크게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는 모두 지나치게 신격화된 불신관(佛身觀)에 입각하여 제작된 소상(塑像) 또는 회화뿐이어서, 이로부터 생전의 불음(佛音)을 그대로 재현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천둥 소리나 탱크 달리는 소리에 가까운 부처의 목소리에 모두들 혼비백산하지 않으까 걱정이 앞선다).
이윽고 천신만고 끝에, 정말로 역사적인, 아니 반역사적인, 부처의 음성 재생에 성공을 거두었다면, 과연 세상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대스타의 출현에 열광하는 청중들의 환호성, 뭐 이런 것도 연상이 되기도 하고, 차라리 안 듣느니만 못하다며 소태 캡은 얼굴로 못내 안타까와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상혼에 투철한 음반가에서는 ‘오리지날 화엄경’, ‘오리지날 금강경’은 물론 심지어는 ‘오리지날 천지팔양신주경’ 같은 것조차도 다투어 선을 보일 것이다. 한술 더 떠 TV에서는 부처님의 자비성(慧悲聲)으로 팔십도짜리 러시아산 보드카 광고가 나올지 그 누가 알겠는가.
한국말로 화엄경, 금강경을 설하고, 한국말로 보드카 광고를 하는 석가모니불-하지만 그것은 옛날 인도땅에서 살았던 진짜 석가모니불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과학기술에 의해 인위적으로 합성된 음파의 청각적인 동일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기적인 대사건이 좀더 허구 자체에 충실해지려면 그 목소리에 그 언어를 실어주어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최소한 가슴 뿌듯한 원어(原語)로부터의 감동을 흠뻑 느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그러면, 부처가 사용했던 언어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당시 갠지즈강 중부의 마가다Magadha 지방에서 쓰이던 고대 마가다어였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음성에 가장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상좌부 불교의 성전(聖典)은 마땅히 고대 마가다어로 씌어져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것이 빠알리Pali어로 기록되어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빠알리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의문에 대한 답변 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다시, 빠알리어란 무엇인가?

빠알리어의 명칭에 대한 고찰
빠알리어란 본디 언어학에서 독립된 어떤 한 언어체계에 붙여진 분류명이 아니다. 빠알리Pali 란 말은 상좌부 불교의 ‘성전(聖典)’을 의미하는 말인데, 정작 상좌부의 성전 곧 경율론 삼장 가운데에서는 빠알리란 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말은 성전이 성립된 뒤에 출현한 각 성전에 대한 주석서(註釋書)류 가운데에서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다만 주석에 대한 대립어로 그 개념이 한정되어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상좌부 불교계에서는 빠알리란 삼장의 성전만을 가리키는 말이며, 성전에 대한 주석은 아트하까뜨하Atthakatha(의소 義疏), 의소에 대한 주석은 띠까Tika(복주 復註), 복주에 대한 주석은 아누티까Anuti-ka (복복주 復復註)라고 한다.
요컨대 빠알리어란 다름아닌 ‘성전어(聖典語)’ 란 의미의 말이되, 그 명칭이 사용되기는 주석서가 성립된 시기(오륙세기)보다 다소 후기이고 그 명칭이 처음 등장한 문헌은 소사(小史,Culla-vaimsa) 90장 제83게(偈)이다. 헌데, 소사의 이 부분은 십사세기 전반의 세일론의 왕 파라까마바흐Parak-kamabahu 4세 시대에 관한 기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씌어진 때는 그보다 훨씬 더 뒤인 십팔세기 말쯤이기 때문에, 실제로 ‘빠알리어’ 라는 말이 십사세기 무렵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십팔세기에 들어 비로소 출현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이 십사세기 이전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편 십이, 십삼세기 무렵부터 빠알리 불교가 세일론을 중심으로 버어마, 타이, 캄보디아 등지로 널리 전파되어 전성기를 구가함에 따라, 이들 각국의 승려들 사이에서도 유학을 간다든지 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상호교류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언어 체계가 서로 다른 이들 승려들은,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성전에 사용되고 있는 언어야말로 자신들의 상호 의사소통 수단으로 최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곧 자신들의 그러한 언어 수단을 ‘성전어(聖典語)’ 곧 빠알리어라고 불렀다. 그 뒤로 이 명칭은 십육, 십칠세기부터 상좌부 불교권에 도래한 서양인들에 의해 서구로 전파되어 오늘날과 같이 일반인에게도 널리 통용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빠알리어의 위치
빠알리어를 언어 계통에서 살펴보면 쁘라끄리트Prakrit어의 일종에 속한다. 쁘라끄리트어란 중기 인도 아리안어의 총칭으로서 기원전 육세기 무렵부터 기원후 십일세기 무렵에 걸쳐 인도 전역에서 사용되던 인도 아리안어의 민중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쁘라끄리트라는 말의 어의에 대해서는 학설이 여러 가지로 분분하지만, 가장 널리 유통되는 한 견해에 따르면, 싼스끄리트Sanskrit 곧 고전 범어(梵語)에 맞서는 말이며, 고전 범어가 빠니니Panini의 문법이론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규정되고 정리된 완성어, 인공어, 아어(雅語), 표준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하여, 쁘라끄리트는 인위적인 요소가 첨가되지 않은 자연어, 속어, 민중어라는 의미를 갖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 양자는 공히 고대 인도의 베다어Vedic 및 그 밖의 고대 일상용어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고전 범어와 쁘라끄리트어 사이에는 또 각 쁘라끄리트어들 사이에는 상당히 긴밀한 언어적 친연관계(親綠關係)가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쁘라끄리트 제어(諸語)가 중기 인도 아리안어라고 불리는 데에 대하여, 베다어 및 고전 범어는 고대인도 아리안어로 지칭되며, 쁘라끄리트 이후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도 아리안 제어(諸語)는 근대 인도 아리안어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빠알리어의 기원
빠알리어의 기원에 관해서는, 십구세기 초부터 서구인들에 의해 빠알리어가 연구되어 온 이래로, 동서의 많은 학자들로부터 다양한 학설이 제시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옛날부터 전해 오는 바대로, 마카다어로부터 발달해 왔다는 학설.
2. 불타가 활약하던 모든 지역의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던 코살라Kosala어를 기초로 하여 발달한 것이라는 학설.
3. 세일론과 가까운 인도 대륙의 칼링가Kalinga 지방을 빠알리어의 고향으로 보는 학설.
4. 서부 인도의 웃제니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학설.

위의 학설 가운데에서 현재 가장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네번째의 ‘서부인도어설’ 이다. 이를 직접, 간접으로 증명해 주고 있는 몇몇 사례 가운데에서, 상좌부의 성전이 왜 부처가 사용한 고대 마가다어가 아닌 빠알리어로 기록되어 있는지 그 까닭도 함께 설명해 주는, 아주 그럴듯한 사례가 있다.
곧 상좌부는 본디 웃제니 지방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까닭에, 서부 언도는 후대에 이르기까지 상좌부의 주요 세력권 안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상좌부의 성전이 이 지방의 민중어에 가까운 언어로 기록되어 전해 오는 것은 어쩌면 이주 당연한 일인 것이다. 불타의 업적과 거의 동시에 서부 인도로 전파된 보수계의 불교가 불멸로부터 일백년째 되는 해에 개최된 재2차 결집에서는 동부의 혁신계와 대립하여 보수계는 마침내 독립되어 나왔던 것이며, 나아가 아쇼카 왕 시대의 상좌부에 있어서도 그 장로들의 대다수가 서부 인도 또는 그와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도, 상좌부가 서부 인도 또는 그에 가까운 지방에서 번영하였으며, 따라서 그 성전의 언어가 당연히 그 지방의 언어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별 무리가 없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다음 호에는 ‘빠알리Pali어에 대하여 Ⅱ가 소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