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식과 민중의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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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진철승
1988년 09월 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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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식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불교학계에서 거의 공백지대나 다름이 없다. 홍윤식 교수에 의한 일련의 연구를 제외한다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구 작업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불교의식에 대한 연구는 문학,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등 예술과 관련된 연구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예술 연구가들은 때로는 단순한 연구영역의 확대로서, 때로는 민족예술의 역사를 파헤치려는 민족 의식의 귀결로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식은 결코 이와 같이 서구적 예술의 개념으로 분해하여 연구할 수 없다. 불교의식은 그 예술적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의식’으로서의 총체성에 대한 연구를 선행해야 한다. 의식의 구조와 그 역사적 변천, 그리고 신앙 대중과의 관계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분석함이 없이 각 예술 장르로서 분해하여 연구할 때 불교의식은 더 이상 불교의식일 수 없다. 그것은 불교의식을 단순히 ‘옛날’ 의 예술, 이제 더 이상 대중 속에 살아 숨쉬지 않는 박제화된 무형문화재로 전락시키는 중대한 과오를 낳게 될 것이다.
예술 연구가들에 의한 연구와 그 성과를 비하하거나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예술적 분석을 하는데 밑받침이 되는 총체적 의식 연구를 해내지 못한 불교학계의 불성실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교의식의 총체적 분석은 무척이나 시급한 과제이다. 그것은 올바른 민중불교를 서술하는 데도, 그리고 오늘날 대중포교를 바르게 하는데도 긴요한 작업이라고 하겠다. 불교계 안에서 기초 작업이 이루어진 바탕에서만 불교의식을 예술적 측면에서 유용하게 분석할 수 있다.
불교의식은 그대로 민족문학의 보고이다. 석문의범(釋門儀範)을 비롯한 불교의식집을 보면 경전의 핵심이 되는 내용으로부터 한시로 된 수많은 게송(偈頌), 잘 다듬어진 축원문, 불교의 교의를 쉽게 풀어서 대중들의 이해를 돕고자 만들어진 불교가사 등 민족문학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할 만한 내용이 엄청나게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그속에 담겨 있는 신앙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문학적 전승으로서 파악할 때, 불교의식은 그 생명력을 상실하고 말것이다.
불교의식은 또한 민족음악사의 서술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불교의식은 대개의 경우 범패(梵唄)로 알려져 있는 바, 이 범패는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에 대한 찬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범패는 점차 뛰어난 음악성을 지난 음성공양의 형식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그에 대해 전문적인 승려들에 의해서 전송되어 왔다. 음악으로서의 범패는 가곡, 판소리와 더불어 삼대 성악으로 불리울 정도로 그 음악적 기교가 빼어나다.
범패 소리는 대개 안차비소리와 바깥차비소리, 그리고 화청(和讀)으로 나누어진다. 안차비소리는 일반 승려들이 하는 독경 소리이며, 바깥차비소리는 전문적인 승려들이 부르는 소리로서 홋소리와 짓소리로 나누어진다. 범패의 음악성을 논의할 때는 대개 바깥차비소리가 그 대상이 된다. 화청은, 그 내용이 한시 게송이나 다라니로 되어 있는 범패 소리를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풀어서 토속적 민요가락에 얹어 부르는 것이다. 회심곡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범패 소리는 국악학자들에 의해 일부가 연구되어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에는 불교의식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해함이 없이 범패를 음악으로만 취급하여, 그것을 오선악보에 채보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는 민중들의 생활문화의 총체인 굿을 농악(農樂)으로 축소시킨 국악 및 민속학계의 잘못된 시각이 불교의식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식이나 굿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지 않는다면 불교의식이든 굿이든 대중의 생활로부터 유리되어 박제화된 무형문화재나 사물놀이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불교미술은 민족미술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타가 공인하고있다. 불교미술은 사찰의 건축물로부터 시작하여 불상, 불화, 탑, 각종 공예물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범상히 보아 넘길 수 없는 미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불교미술은 불교문화 연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당연히 그 연구 성과도 자못 방대한 편이다. 그러나 그 미술적 가치와 우수함에 대한 찬탄은 많아도, 그것들이 역사 속에서 대중의 신앙과 어떻게 구체적으로 연관되는지, 또 신앙의 외적 표현인 불교의식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 않다. 모든 불교미술은 지극한 신앙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져 신앙의 대상으로 섬겨져 온 성물(聖物)이다. 이러한 측면에서의 본격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불교미술은 ‘과거’를 찬란하게 밝힌 역사적 유물 또는 관광자원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불교미술 생산의 정지를 의미하며 신앙의 죽음을 의미한다.
불교의식에는 작법, 또는 요잡이라 하여 부처님께 드리는 춤공양, 즉 몸공양이 있다. 이는 민족무용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으며, 각종 의식 무용이나 탈춤, 승무 등의 민속무용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불교의식은 또한 총체적 연극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에 일부 연극학자들에 의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불교의식의 연극적 측면이나 무용적 측면에 대한 연구도 그 의식의 총체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불교의식을 토막내어 연구한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불교의식에는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등의 여러 요소가 두루 포함되어 있다. 또 각각 민족문화사 혹은 민족예술사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불교의식은 불교의식으로서의 완결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따로따로 분해되어서는 그 의미와 역할이 옳게 규명될 수 없다. 따라서 불교의식은 그 예술적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그 총체성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은 불교의식과 신앙과의 관계에 대한 검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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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관념과 의례로 구성된다. 관념은 신앙의 내적 구조물이며 의례는 신앙의 외적 표현이다. 관념과 의례는 둘이되 하나이며, 한쪽에 치우친 연구는 신앙의 총체성에 대한 올바른 규명을 해낼 수 없다. 따라서 불교의식을 연구할 때도 신앙내용, 즉 관념에 대한 분석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불교의 세계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분석함은 철학적•교리적으로 점검을 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그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과제이다. 이 글에서는 불교의 관념 체계 중에서도 특히 대중의 신앙 세계, 즉 신앙 대상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의 신앙체계는 삼단(三檀) 신앙 체계이다. 삼단은 상단(上壇), 중단(中壇), 하단(下壇)이다. 상단은 불보살단(佛菩薩壇)이며, 중단은 신중단(神衆壇)이고, 하단은 영단(靈壇)이다. 불교의식 중에는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처럼 삼단의 구성이 복잡하게 세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이 삼단의 구성이 기본으로 되어 있다.
상단은 불보살단으로 삼단의 중앙에 위치하며 최고의 신앙 대상이다. 여기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하여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여래, 미륵불 등의 모든 부처님과 관음,대세지, 문수, 보현, 지장, 미륵, 일광, 월광 등의 보살이 모두 모셔진다. 이 불보살 신앙은 대승불교에 이르러 교의 체계가 정교하게 다듬어지면서 동시에 대중의 다양한 소망과 만나기 위해 형성된 신앙 체계이다.
이 불보살은 각기 그 기능과 역할이 다르며 신앙의 도량이나 신앙 의식에 있어 다양하게 분화된다. 이 불보살 신앙은 불보살을 모신 전각이나 불상, 불화의 형태로 구상화되었다. 대웅전(석가모니), 미타전(아미타불), 대적광전(비로자나불), 미륵전(미륵불), 약사전(약사여래) 등은 각각의 부처님을 주불(主佛)로 모신 전각들이다. 또 원통전(관음보살), 문수전(문수보살), 명부전(지장보살) 등은 각각의 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이들 전각에는 또한 각 불보살의 조각이 모셔지며,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탱화가 불상 뒤 벽에 모셔 있는 경우가 많다. 불화는 대개의 경우 전각 안에 모셔지지만 불교의식을 야외나 절마당에서 거행할 때는 괘불(掛佛)을 모시기도 한다.
중단은 신중단으로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며 그 설법 도량을 옹호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을 모신 단이다. 이 중단의 신앙 체계 역시 전각, 조각, 회화로 구상화되는데, 주목할 것은 이 중단의 신앙 대상이 모두 인도, 중국, 한반도의 민간 신앙이라는 점이다. 이는 이미 불교와 민간신앙(연재 5회)에서 밝힌 바 있다.
이중 인도의 민간 신앙이었던 제석, 사천왕, 금강신 등은 주로 불화의 외호중이나 불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사찰 입구의 사천왕문이나 천왕문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중국의 민간신격이었던 칠성과 시왕(十王)은 철성전, 지장전(명부전)에 모셔지며, 한국의 민간신격인 산신은 산신각에 모셔지고 산신화로 구상화된다.
하단은 영단으로서 선망부모를 비롯하여 무주고혼과 중음신(中陰神)을 천도하는 단이다. 이는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의 조상숭배사상과 결합되면서 성행한 신앙 체계이며 많은 불교의식 중에서도 대종을 이루고 있다. 더구나 가장 정교하고 장엄하게 다듬어진 불교의식이 모두 천도재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볼 때 이 하단은 한국인의 생사관과 세계관이 반영된 중요한 요소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하단에는 영가의 위패가 모셔지며, 많은 경우 우란분경변상도(盂蘭益經變相圖)라고 불리는 감로탱화(甘露憧畵)가 후불탱화로 모셔 있다. 이 감로탱화는 감로왕, 즉 아미타불이 지옥고나 아귀도에 빠진 부모를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맞아들일 수 있도록 부처님과 스님께 공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우란분경에 근거하여 음력 7월 15일에 지내는 우란분재와 연관되며, 이조 시대 민중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민중생활사의 규명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민중미술의 선구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식은 이와 같은 삼단신앙의 체계를 바탕으로 하여 거행되는 의례이다. 즉 관념적 신앙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의 체계이며, 동시에 대중들과의 만남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던 중요한 틀이라고 할 수 었다. 또한 고도로 정교화된 부처님 예경으로서의 다양한 예술적 표현이 그대로 대중의 신앙을 심화시키면서 동시에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