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서울올림픽 식전행사인 장승제와 유등제를 놓고 벌어진 불교계 및 토착종교 세력과 일부 기독교인들간의 대립은 우리 사회가 분열되어 있는 모습의 하나를 보는 듯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유등제가 불교적인 내용이며 장승제는 미신이라는 이유로 올림픽조직위에 압력을 넣어서 이를 무산시키려고 했다. 이에 불교계 등은 이를 민속문화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이러한 대립은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며, 기독교가 들어온 뒤로 끊임없이 계속된 모습이다.
그러면 이러한 대립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먼저 이러한 대립의 원인을 종교적 입장 및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으며 인간의 고통은 신에 대한 죄악에서 시작한 것이므로 죄를 회개하고 신 앞에 다시 섰을 때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 및 토착종교는 신을 인정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수행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고 불국토를 이루려고 하므로 그 교리적인 면에서 기독교와 대립을 보일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대립을 가중시키는 요인은 타종교에 대하여 서로 배타적인 태도이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존속해 왔으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른 종교를 미신 또는 우상숭배라고 규정하고 철저히 거부해 왔다.-이것이 기독교 본래의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물론 근래에 들어와 종교의 자유가 존중되면서 이러한 태도는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일부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이러한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입장 및 태도의 차이가 종교 분열의 원인이지만, 사실 그 본질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종교의 대립이 종교적인 입장에서만 오는 문제라면 그 대립은 영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대립을 피하는 해결책이래야 기껏 상호 분쟁을 피하기 위한 양보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종교적 현상, 문화적 현상의 뒤에서 종교 대립의 본질적인 원인으로 도사리고 있는 사회•경제적인 요인을 밝히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투투 주교는 “백인들이 아프리키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들은 성서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황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눈을 떠 보니 우리는 성서를 가지고 있었고 황금은 백인의 손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제는 남아 공화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국가를 제외한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민중들도 이러한 상황을 면할 수 없었다. 이것은 결국 기독교재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경영함에 있어서 식민지 민족을 문화적으로 지배하는 무기의 하나였음을 말해 준다.
우리나라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해방된 뒤 남한이 미국의 영향 밑에 들어가면서 기독교의 교세는 놀라울 정도로 성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은 불행하게도 민족문화의 몰락과 반공의식의 강화등 외세와 지배 세력의 분단고착화 놀음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민족문화를 미신이라는 이름 아래 파괴하였으며, 반공이라는 명분 아래 북의 동족을 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통종교와 기독교의 대립은 이러한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대립과 갈등은 민족 전체에 불행을 가져오고, 우리를 지배하는 외세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식민지 사회에서는 종교 대립조차도 종교간의 문제가 아니라 외세의 민족 분열 정책의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종교가 우월하다거나 더 민족적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종교가 분열된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고, 그 해결책을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요구를 바탕으로 해서 찾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종교간의 분열과 대립을 진정으로 해결하는 길은 우리 종교인 모두가 한민족이고 똑같이 외세에 억압받는 형제임을 깨달아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는 데 있다. 종교가 폐쇠성과 형식의 틀을 열고, 인간 중심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또한 이를 바탕으로 외세에 대해 민족적인 자각을 함으로써 종교 대립의 본질적인 요인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칠십년대 이후로 기독교인들은 민주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였고 뒤늦게나마 불교계도 민족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지금 통일운동 속에서 상호연대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는 길이므로 앞으로도 민족 대단결이라는 원칙 속에서 종교간의 대화와 연대를 끊임없이 이뤄내야 한다.
2. 통일운동에서의 종교의 지위와 역할
현재 대중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통일운동에서 종교인들은 청년, 학생들과 함께 선두에 서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처음으로 통일운동의 물꼬를 터놓은 한국기독교협의회(KNCC)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는 이 선언에서 현정권에 대해 ●이산가족찾기, 자유주거 보장 ●친척, 고향 방문 허용 ●정보 독점, 통일 논의 독점 지양 ●상호비방, 욕철, 배타주의 제거 ●상호교류, 방문, 통신 개방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교류 ●경제 교류 ●평화협정 체결 ●불가침 조약 ●주한미군 철수 ●주한유엔사령부 해체 ●군사력 감축 ●군비 축소 ●핵무기 철거 ●남북협상, 국제적 협약에서의 민족자주성과 주체성의 견지 •불평등조약 협상 수정•폐기 등을 요구하였는데 이 내용은 현단계 통일운동이 추구해야 할 과제 및 통일을 위한 전제와 통일운동의 기본 방도를 제시한 모범인 것이다.
KNCC의 선언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통일운동에서의 과제는 남북간의 분열과 대립을 조성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이며,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통일 방안은 진정으로 통일을 추진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 줌에 다름아니다. 지금 통일촉진 세력과 통일반대 세력이 기본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불교계에서도 ‘공동 올림픽 개최및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불교운동본부’를 결성하여 공동 올림픽 개최를 위한 서명운동 및 남북한공동기원법회를 북측에 제기하는 등 대중적 실천에 나섰다. 이러한 모습은 종교가 통일운동에서 분명한 자기의 몫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며 통시에 남한의 특수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통일운동에서 종교인들의 선도적인 역할은 시대와 민족이 부여하고 있는 종교적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조국통일 문제는 본질적으로 민족의 자주성과 민족적 대단결을 실현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통일운동의 주체는 어느 한계급이나 계층 또는 남한과 북한의 어느 한쪽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에 살고 있는 민족구성원 전체의 문제이다. 곧, 민족구성원 전체가 사상과 제도, 이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때만이 달성할 수 있는 사업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이라면 종교인이든, 노동자이든, 학생이든 누구나 통일운동 속에서 분명한 자기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종교인들이 통일운동에서 선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남한의 특수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남과 북이 분단된 가운데 남한의 지배세력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반공이라는 명분 아래 모든 진보적 세력을 철저하게 탄압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공공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있었던 종교계의 경우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점들이 지금의 통일촉진투쟁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종교인들의 앞장 선 역할은 노동자 농민이 통일운동의 주체로 설때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불교의 진출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조국의 자주화와 민주화, 통일을 위한 전선에서 불교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부문의 운동에 못지 않게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것은 불교인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주의식, 그리고 제국주의와 대리 정권에 의해 현실적으로 탄압받았던 모순 구조에 대한 인식이 그 동력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요소뿐만 아니라 한계 요인도 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점은 현재 종교인들의 통일운동이 사회변혁운동 속에서 자신들의 운동을 정확히 위치 지우지 못하는 비과학성에 있다.
현재로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현실로 말미암아 종교인들이 통일운동에서 선진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 농민이 주체로 선 이후에도 종교인들이 일정한 자기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종교인들이 통일운동을 사회변혁운동 속에서 올바르게 위치 지우는 과학적인 운동론을 확보해야 하며, 이로써 인권과 쁘띠적인 민족 감정의 차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독교나 불교를 막론하고 모든 대중의 참여가 아닌 일부 선진적 역량만의 운동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두 종교가 아직은 진보 세력보다는 보수 세력이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있다. 이처럼 보수적 틀 안에 갇혀 자신들의 진정한 이익을 알지 못하는 대중들을 각성시켜 통일운동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신중히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문제는 오늘날의 사원과 교회가 통일의 운동에 어떻게 활용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통일 문제에 있어서 오늘의 현실은, 재야운동권의 정치적 집회 및 선언적 의미밖에 없는 몇 가지 선언이나 제의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부분으로는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나 여망을 집결시킬 수 없다. 따라서 각 종교의 법회나 예배가 통일의 의지를 담을 수 있는 형식이 가미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동민이나 주민들의 집회가 통일의 의지를 엮을 수 있는 중심 역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나 사찰이 마을의 ‘통일회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민주와 평화의 대원칙을 전제로 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분단모순의 가장 큰 피해를 받고 있는 노동자와 농민 등의 기층대중이 통일의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조력하여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민중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문제와 이 땅의 비민주적인 요소를 척결하는 일도 통일 문제와 더불어 수행하여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