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 위장이 약해 음식물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병치레가 잦던 스님은 주위의 여러 큰스님의 충고에 힘입어 참선과 단전호흡을 통해 썩 건강한 몸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백일을 자지 않아도 잠 잘 생각이 안 들고, 백일을 먹지 않아도 약해지지 않는 건강을 갖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그리하여 삼개월 동안 꾸준히 우주의 기(氣)를 충전하며 우주와 일체가 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스님은 ‘욕심대로’ 백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생수만 마시며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참선과 산에 오르기, 선도요법을 통한 육체의 단련 과정으로 꼬박 백일을 난 눈에서는 빛이 쏠 듯이 이글거렸다고 회상한다.
“난 그때 부처가 되는 줄 알았어. 전망이 컸거든. 그러나 잠을 자지 않는 것만으로 부처가 될 수는 없지!”
혹시 백일을 마친 날부터 내리 며칠씩이나 주무신 것은 아닌가고 여쭈니 ‘주변의 움직임을 느낄 만큼’ 의식의 절반은 자고 절반은 깨어 있는 턱이라 깊은 잠은 들지 않는다고 이르신다. 우리네가 선잠 자고 깼을 때 느끼는 피곤함을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기를 모으고 쌓으면 가능한 일이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힘이 나거든. 해와 달〔月〕이 바뀜이 역(易)이듯이, 중생이 성자 됨이 바로 역이야. 단전호흡을 통한 참선은 우주의 기를 충만시켜 심신을 개조시키는 작업이지.”
육체의 장애로 말미암아 성격까지 뒤틀리는 경우가 많은데 기를 축적함으로써 질병에서 벗어나고 또한 원만한 성격을 이룰 수 있다면서, 스님은 종이에 화랑도 정신의 일부였던 다음의 글귀를 써 주셨다.
기가 가득 차면 먹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정이 가득 차면 색욕에 흔들리지 않고,
정기가 가득 차면 수면을 생각하지 않는다.
단전호흡을 정통하게 배워 익힌 스님에게 외적인 변화가 생겼다. 혈색이 창연해지고, 뼈가 커지고, 목소리가 변화했다. 여성의 음성마냥 곱던 스님의 목소리는 십삼 년 전부터 굵어지기 시작하여 지금도 계속 굵어지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스님의 엑스레이 사진이야말로 변화를 일으킨 스님의 몸을 한눈에 알려주는 뚜렷한 증거물(?)이다. 척추를 이루는 등뼈 하나하나가 둥근 형으로 쌓여 있고, 허리뼈 하단이 삽 모양을 하고 있는 여늬 사람의 것과 다르게 나비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화랑도에서는 기(氣)와 혈(血)과 맥(服)이 바뀌고, 육(肉)과 수(髓)와 힘줄을 비롯한 아홉 가지가 바뀐다고 가르쳤더군. 이것이 32상 80종의 부처 모습을 향한 변화라네.”
스님은 ‘외도(外道)’ 라며 손가락질하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꾸준히 한길을 걸었다. 누구에게서 전수받는 것도 아닌지라 십수 년을 바쳐 외롭게 연구하던 시절을 지금 돌이켜보면 ‘허망할 만큼 어려운 세월’ 이었음을 고백하는 스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 덕분에 이제는 당당하게 내보일 수 있게 되었어. 삼국통일의 정신적 토대였던 화랑도가 곧 신선도였음을 발견했지. 한편 화랑 기운데 최고의 경지를 이루면 ‘금선(金仙)’ 이라 일컫는데, 이는 부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거든. 불교와 선도는 하나임이 여기서도 증명되는 셈이지.”
명허스님은, 몸이 야위도록, 오랜 역사를 흘러온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연구해 왔다. 그리하여 신라 뒤로 그 맥이 끊어진 줄 알았던 화량도가 고려, 조선, 일제 침략기를 거치면서 다른 이름으로 존재해 왔음을 손수 밝혀내기도 하였다. 선도의 바탕 위에서 불교를 하라던 탄허스님의 가르침을 쫓아 성불할 때까지 선도를 생명처럼 여기며 닦으리라는 스님은 한민족의 역사의 흐름에 일조하며 이제껏 걸어 온 ‘소신’ 의 길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유-불-선도가 모여 이 땅의 사상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본디 사상이 ‘불교와 선도의 융합체’ 라는 것이다.
스님은 인연 따라 정착한 이곳에 훌륭한 정기가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전생에 이 자리에 절 짓고 수도한 적이 있었던 듯 싶던 차에, 공사하다가 신라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장이 발견되자 더더욱 ‘내 터를 되찾은’ 심정이다.
선역사는 지금 일층만 어렵사리 불사를 마쳤다、 이층을 올리고 세조상님을 아버님 모시듯 모실 계획이지만, 조급하지 않게 십 년을 내다보고 있다 그건 수도정진이 앞선 후에 불사를 이루어야 한다는 남다른 고집 때문이다.
“그래서 난 불사(수도정진)부터 하고 부처님 모시는 공사를 할 참이네.”
스님은 ‘수도정진이 진짜 불사’ 라고 믿고 있다.
김 정빈의 소설 ‘단(丹)’이 출판되면서 권 필진 옹을 비롯한 선도인을 찾는 세인의 발길이 잦아졌다. 스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화 하나를 보려고 긴 줄을 기다려 돈 주고 표를 사는 중생들인지라, 어디가 아프거나 참선을 배우려거나 사주팔자를 알아보려거나 아니면 어찌 생겨먹은 중인지가 궁금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가는데, 한편으로는 연구할 일은 많고 해서, 생각다 못한 스님은 인적 드문 곳에 또 하나의 토굴을 짓고서 아침에 올라 저녁녘에 내려올 때까지 그곳에서 수행에만 힘쓴다.
아직도 진행해야 할 연구거리는 산적해 있어 아득한데, 사람 만나는 일로 수행에 차질이 생길 것을 염려한 스님은 후일에 비디오 제작을 통해 세인들에게 강의할 부푼 꿈을 품고 있다.
스님이 거하는 초막에는 불상 대신 세 분의 성자가 커다란 그림틀 속에 모셔져 있다. 그 중 한 분이 복희씨이다. 요, 순에 앞선 고대 중국의 성황으로 알려진 태호(太皥) 복희(伏義)씨가 우리나라 사람임이 증명된 것은 그리 오래지도 않을 뿐더러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다. 명허스님은 한민족의 뿌리이며 인류 문명의 선구자로서 복희씨의 초상을 걸어두었다. 가운데에는 사직동 단군성전에 모셔진 단군상을 확대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흔한살 때의 석가모니 부처님 초상이다. 불상을 통해 만나던 금속쟁의 이미지가 아니라, 검은 머리카락이 이름다운, 정말이지 달려가 덥썩 손을 잡고서 “당신이 진정 부처님이십니까?” 하고 묻고픈, 우리의 이웃 같은 부처님의 모습이었다.
“부처님의 초상화를 통해서도 그 분이 금강석 같은 분임을 느낄 수 있지. 열반에 드실 때의 모습은 또 다를 형상일 게야. 우리도 변하는데 부처님이야 상상을 초월하는 형상을 지니셨을 게 아닌가, 그 분은 4차원의 세계를 연마하였을 것이네.”
‘4차원’ 이란 낱말에 문득 호기심이발동한다.
“중생에서 성불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능력이 초능력으로,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야. 우리의 단계야 2차원에 자족하며 꾸준히 노력하는 단계지.”
초능력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불을 위해 무예를 연마하면 좋은 영양소가 될 것이라고 부연하는 스님은 본시 문무를 겸비하지 않고는 큰 인물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문무를 겸비한 최고의 경지가 바로 금선 곧 부처의 경지이지. 금선 직전의 수준은 칼을 잡고 허공을 날면 사람과 칼이 보이지 않고 광선만이 보인다지. 금선의 경지는 무술이 필요없이 자비로 섭수절복시키는 경지라네.”
“내 경지? 허허, 나는 겨우 하루 밥 두 공기 삭히고, 잠 편히 잘자고, 질병 예방하고, 질병에 걸려도 쉽게 벗어나는 정도일 뿐 그 이상을 터득하려면 멀고도 멀지, 허허허.”
한 마디 말씀을 끝내면, 스님은 허허 웃으셨다、 웃는 모습이 천진무구한 아이마냥 티없이 맑다. 요 며칠은 배가 불러(?) 생수 외에 먹은 것이 없다는 스님은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작업을 위해 오늘도 주장자를 앞세워, 아직은 세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스님만의 토굴로 향한다.
“복희씨부터 내려오던 우리의 사상이 인도와 중국의 도반을 맞아들이면서 더욱 흥성해진 걸세. 언어, 사상, 문화전반이 뒤죽박죽이 되도록 외래의 문물이 범람하고, 불교는 정신만을 추구하다보니 절반의 역할밖에 못하는 오늘날, 민족의 정기를 되찾으려면 우리의 뿌리부터 바로 찾아야지.”
그래서 스님은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한단고기(桓檀古記)’를 권한다. 삼천리 금수강산만이 우리 땅이 아니라 광활한 만주벌판, 시베리아 등지가 우리의 선조들이 말 달리던 터전이며, 올해는 단기 4321 년이 아니라 한기 (桓記) 9183년으로, 우리는 반만년이 아닌, 그 곱절인 일만년의 역사를 지닌 자랑 깊은 한민족임을 느끼라고 말이다.
스님은 또한 의술에도 조예가 깊다. 그래서 그 사이 알게모르게 많은 스님들에게 약을 지어 주어 병을 고쳐 왔다. 도심에서야 지천에 널린 것이 병원, 약국이지만 깊은 산중의 수행자들은 한번 앓으면 돌보아 주는 이도 없이 힘겨운 투병생활을 한다.
“이러한 현실은 지신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청담불교’ 의 병폐야. 건강과 영양은 전연 무시한 채 정신만을 추구하면 된다는 식의 청담불교는 극복되어야 해.”
스님에 의하면, 역학과 의학 그리고 수도정진은 성불의 삼대 조건이란다. 약이란 병든 자를 살리고, 산 자를 오도(悟道)케 하는 방편이어서, 홍익인간을 펼치기 위한 귀중한 쓰임이라고 강조하는 스님에게서 어릴적부터 한문에 능해 갖가지 의학서를 탐독하였던 것이 지금의 수도와 접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만병통치의 스님’으로 소문이 나면서 스님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스님은 병을 지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각각 그 체질에 부합되는 약이나 단전호흡, 지관법, 명상법, 요가 등의 다양한 방법을 써서 건강을 복원시켜 주었다.
가겟방에도 상호가 있는데 이곳 초막도 불리울 이름이 있어야겠다 싶어, 지난 해에 집을 현대식으로 고쳐 지으면서 붙인 이름이 선역사(仙易舍)다. 민족의 조상을 분명히 알고 정신의 뿌리를 제대로 알자, 그래야 청담불교의 각질을 벗고 인도의 근본불교의 씨앗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런 뜻에서 ‘일만여 년전통의 불교와 선도의 뿌리를 찾는’ 이름을 붙였노라며 스님은 호탕하게 웃는다.
‘자비로운 문중에서 어찌 불교만 갖고 연구하는가, 전 인류 스승이고자 하는 성직자가 어찌 불교로만 사는가, 그것은 모순이다, 범인류의 학문을 꿰뚫자, 소신껏 연구해 보자’하는 강한 욕구를 방편으로 삼았다. 그래서 산사를 떠나 십년 전에 이곳에 초막을 짓고 정착하였다.
마을에서 스님은 애써 포교하려 들지않는다. 그것은 사명대사를 닮은 스님이 되어 부처와 어깨를 겨루고 싶다는 스님의 단단한 신념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법회라곤 달리 없다. 그 대신, 화랑처럼, 군내의 ‘스터디 그룹’을 통하여 복희씨 이후로 도가에서 흘러오는 특수 서적 따위를 강의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정통 강의는 강원에서 하고 있으니, 목마른 이 목을 축여주고 배고픈 이 밥을 주는 자비의 불교를 행하려는 것이 스님의 뜻이다. 스님은 설법보다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는 일이 급선무라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