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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되 살아난 비결(秘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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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이화 1988년 09월 79호
현대는 과학의 시대요 합리의 시대라 흔히 부른다. 그런데도 신비를 추구하고 미래를 점쳐보려는 풍조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비결(秘訣)은 지난날 혼란스러운 시대에마다 크게 유행했었다. 신라 말의 도선비결(道詵秘訣), 고려말의 무학비결(無學秘訣), 조선조 말기의 정감록(鄭鑑錄)들이 크게 번진 것이 그런 사실을 알려준다.
이 때에 유행한 비결은 미래 예언서로서 지배세력이나 변혁세력이 그것을 각기 유리한 대로 적절히 이용했었다. 변혁 세력은 묵은 체제를 뒤엎고 새로운 왕조 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뜻으로 비결의 내용을 퍼뜨렸고, 지배세력은 현재의 체제 또는 왕조가 일정한 기간 동안 유지된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비결을 이용했다. 조선조 후기에 왕조세력이 정감록의 이조 오백년설 따위를 은근히 강조한 것이 그런 예이다.
이런 배경을 지니는 비결은, 한편으로는, 생활에 찌든 민중들에게 새로운 시대 또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고, 가거지설(可居地說) 등으로 도피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오늘날은 그런 비결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가?

全자톨 全자로 쓰라는 지시
1980년초 전 두환 대통령이 취임하고나서 해괴한 공문 한장이 각 기관에 내려왔다.
그 공문은 “앞으로 공식 문서를 만들적에 ‘全’ 이라는 글자를 ‘全’으로 쓰라”는 내용이었다. 이 공문을 받은 사람이 필자에게 무슨 영문이냐고 물어왔다. 머리에 얼핏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全 자는 전 두환 씨의 성이 아닌가? 이 글자는 全으로 쓰면 파자(破字)로 入王이 되어 ‘들어가는 왕’ 이란 뜻이 되는데, 全으로 쓰면 人王이 되어 ‘사람의 왕’ 이라는 뜻이 됨을 알았다. 정자는 어디까지나 全이지만 필기체로는 全으로 쓰기도 한다.
全을 全으로 쓰라는 발상은 바로 파자를 이용하여 그 해석을 구구하게 만드는 비결의 수법임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그 한 예를 들어보자. 1912년은 임신년(王申年)이다. 홍 경래 등은 그 해에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변란을 크게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중에 수하를 시켜 이런 소문을 퍼뜨리도록 하였다.

①一士橫冠(한 선비가 갓을 비딱게 썼다.)
②鬼神脫衣(귀신이 옷을 벗었다.)
③十疋加一尺(열 필에 한 자를 더했다.)
④聖諱有兩足(성인의 이름에 두 발이 달렸다.)

이것은 정감록에 수록된 열여덟 자를 써서 이 해에 난리가 남을 암시한 것이다. 말을 풀이해보면, ①은 선비가 갓을 비딱하게 썼으니 ‘王’ 이 되고, ②는 귀신〔神〕이 옷〔衣〕을 벗었으니(엄밀하게는 示이다) ‘申’이 되며, ③은 十疋은 ‘走’가 되는데 走에 一尺를 더하였으니 ‘起’가 되며(이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④는 성휘(聖諱)라 함은 공자의 이름 ‘표’를 뜻하는데 丘에 두 발을 달면 ‘兵’이 된다. 곧 ‘王申起兵’ 이 되어 임신년에 난리가 남을 뜻하게 된다. 이렇게 파자를 꿰맞춘 것으로써 민심을 선동하여 임신기병(壬申起兵)은 운명적으로 일어나게 됨을 믿도록 하였다.
조선조를 세운 이 성계는 석왕사(釋王寺)에서 자다가 서까래 세 개가 등에 무너져내리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퍼뜨린 바 있다. 서까래 셋을 등에 얹어놓으면 王 자가 되니, 그것은 곧 왕이 된다는 꿈이 아닌가? 이 성계의 무리는 또한 ‘목자위왕(木子爲王)’ 이라는 구절을 비결에 슬쩍 집어넣어 이(李) 씨가 왕이 되는 것이 필연이라는 분위기를 조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全을 全으로 쓰게한 것과 그 의도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지시는 뒤에 흐지부지되어 실행되지 않았으며, 여론의 입방아가 무서웠던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참으로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웃기는 이야기 한 토막이다.

두미재전(頭尾在田)은 무엇인가?
지난 대통령 선거 때에는 느닷없이 ‘두미재전(頭尾在田)’ 이라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문구가 나돌았다. 무슨 단체의 이름으로, 미래의 지도자는 ‘두미재전(頭尾在田)’에 있다는 내용을 적은 선전문이 나돌았는데 거기에는 일천 년전에 남사고(南師古)가 쓴 격암유고(格菴遺稿)에 그 미래의 지도자가 적혀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뿐 아니라 그런 내용을 적은 깃발이 모씨의 선거 유세장에 버젓이 나부끼고 있었다. 필자는 처음에 이 선전문을 보고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남 사고가 일천 년 전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했고, 필자가 소장한 격암유고를 뒤져보고 그런 구절이 없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모든 비결은 이본이 많다.) 그러던 중 어느 대통령 후보의 유세장 깃발을 보고서야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뜻은 바로 이러하다. 앞글자〔頭〕곧 성과 뒷글자〔尾〕에 ‘田’이 들어 있는 사람이 미래의 지도자가 된다는 뜻이다. 일곱 사람의 후보 중에 성과 이름 끝 자에 田 자가 들어 있는 사람은 한 후보뿐이었다. 여기에서 田 자의 의미가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는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발상도 참으로 희한하고 기발하다. 田자의 의미도 더 풀어보자. 주역(周易)에서 왕을 상징하고 있는 효(交)는 ‘구오(九五)’ 이다. 특히 건괘(乾卦)의 구오에는 “나는〔飛〕 용이 하늘에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왕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구오의 왕자리를 향해 올라가는 효가 구이(九二)이다. 건괘의 구이에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見龍在田 利見大人)”라고 했다. 이를테면 밭에서 왕이 될 준비를 하면서 왕의 행동을 본받고 좋은 신하를 물색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리저리 뜻을 두어 꿰어 맞춘 그 발상이 더욱 놀랍다.
그런데 어느 스님은 한 책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횡설수설 적어 놓고 있다. 그책은 정확한 근거나 논리-비결의 내용에서 벌어 온 것이라도-도 없이 자기예언식으로 적어 놓고 있다. 아마 그는 자기의 이야기가 과연 맞지 않느냐고 뽐낼지도 모르거니와, 그것을 들고 어떤 뒷거래나 벌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를 두고 사이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소지는 다른 데에 있을 것이다. 全으로 써야 권력을 오래 누릴 수 있고 민심을 휘어잡을 수 있다고 누가꼬드겼다고 치자. 제대로 사회정의를 실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돈네 팔촌에게까지 이권이나 집어주고, 어려운 사람에게 분배를 고르게 할 생각은 않고 보이는 대로 걸리는 대로 손을 뻗어 먹어치우
면서 ‘인왕(人王)’ 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가슴속 한 구석에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 또한 가소로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국민에게 정책을 제시하고 참다운 여론을 환기시키면서 자기 주장을 납득시켜 지지도를 넓히는 것이 민주사회의 정치 지도자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얼토당토 않는 문구를 조작하여 선전문을 뿌리고 버젓이 깃발까지 내거는가? 설령 어느 덜 어진 인사가 그런 것을 제시하면 민심을 휘어잡을수 있다고 꼬드겼다고 치자. 그럴지라도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면인그런 발상을 틀어막거나 더 이상 발불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민주 의식이요, 참다운 여론의 주도자의 지녀야 할 태도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기발하게 내놓은 것들이 결국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우리는 보아 왔다.
예나 지금이나 참다운 지도자의 할 바는 위민(爲民)에 있을 뿐이다. 다만 위민이 봉건왕조 시대와 민주주의 시대에 있어서 그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달리할 뿐이다.

이미지 조작의 허구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정감록과 같은 비결류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미지 조작은 여러 시대에 여러 세력에 의해 야기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갚은 인생관, 자연관, 미래관에 토대를 두지 않았으므로, 늘 일시적인 방법으로 민심을 충동하거나 야합하거나 이반(離反)시켰을 뿐이다.
변혁세력들이 정감록을 변혁의 한 방법으로나 전술적으로 이용했던 것은 그시대의 사회상을 드러낸다. 민중들이 수탈당하지 않고 배불리 잘 먹고 잘 살 적에는 이런 비기의 예언들이 먹혀들어갈 틈이 없다.
마찬가지로 지배세력들도 옳은 정치를 하여 민심이 잘 따라줄 적에는 정감록과 같은 비기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언제나 민심이 이반하여 그네들의 지위가 흔들리고 어느 때에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처지에서 그들 지배세력은 이런 비기를 통해 이미지를 조작하려 한 것이다.
몇 해 전에 북쪽에서 금강산 댐을 만들어 88 올림픽 방해라든지 필요할 적에는 많은 수량을 한꺼번에 쏟아서 서울을 물 바다로 만든다고 떠들어댔다.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은 구체적 수치까지 들어가며 63빌딩은 얼마의 물을 쏟아놓으면 몇십층까지 잠긴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안에 떨었고 너도나도 한 푼씩이라도 내서 이를 대비할 평화의 댐을 건설하자고 했다. 그 일은 실제로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금강산 댐을 지금까지 건설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건설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믿을 만한 외신은 전한다. 그렇다면 먼저 선수를 쳐서 많은 물력을 기울여 평화의 댐을 만드는 것이 잘한 일인가? 이것이 유비 무환인가?
헤아려 보면 당시의 정권은 나라 안팎으로 여러 가지 위기에 부딪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밖으로는 민주세력에 대한 탄압과 인권 문제로 크게 압박을 받았고, 안으로는 여러 반독재세력이 힘을 뭉쳐 전정권에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때에 불쑥 금강산 댐이 튀어나왔고, 이를 빌미로 사람들의 관심을 한곳에 집중시켰다. 이를 두고 오비이락(鳥飛梨落)이라고 하기엔 정황이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달리하는 이미지 조작이라고 또는 국민 관심의 분산책이라 하겠다.
어찌되었거나 이런 것은 모두 정도가 아닌 사도요, 정직이 아닌 허위이다.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현대에도 해묵은 비기가 이용되는 모습을 보고 민주의식의 천박함을 엿보게 된다. 이처럼 다만 소기의 효과를 얻으려는 생각에서 앞뒤를 돌보지 않고 이용하는 작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타매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현대의 종교계에서도 이용되고 있다면 이는 더욱 경계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