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장엄의식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로서 불상을 조성할 때의 장엄의식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불상을 조성할 때에는, 복장腹藏이라 하여, 배 안에 사리와 여러 가지 유물을 봉안하는 장엄의식을 치른다. 불상은 석존을 홈모하고 경배하기 위한 대상물로 조성되었으나, 신앙의 대상물 중에서는 다른 것보다 뒤에 나타났으므로 복장물은 탑의 사리장엄구보다는 그 시대가 늦다고 하겠다.
석존을 공경하고 기리려고 제작한 대상물은 몇 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가사, 발우, 유골 등 석존의 숨결과 체취가 배어 있는 직접적인 유물과 유품을 경배의 대상물로 삼았으나, 그 다음 단계에는 행적과 관련된 상징물을 만들어 숭상하였다. 이를테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설법 불을 상징하는 법륜, 부처님의 행적을 의미하는 불족적佛足跳 등이 그것이다. 그러다가 석존의 유골을 안치한 탑을 조성하여 숭배하였는데, 이는 석존의 유품은 양이 부족하고 상징물은 구체성이 적었기 때문에, 구체성이 있는 대상이 필요한데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대상물들을 숭배하다가 서기 1세기 후반부터 비로소 인도에서부터 불상을 만들어 숭배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뒤늦게 신앙의 대상물로 제작하기 시작한 불상은 불상 불표현佛像不表現의 사상 때문에 일반 사람과 다른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32길상 80종호 및 광배 대좌수인의 특징이 그러한 것이다.
불상의 조성은 우선 적당한 소재(석재·목재·금속·토재 등)로서 외형을 만들고 그 안에 복장물을 봉안하는 복장장엄의 의식을 갖추게 된다. 그런 뒤에 도금이나 채색의 절차를 거쳐 마지막으로 점안의식을 행한다. 이렇듯 외형의 조성 외에도 복장의식이나 점안의식 같은 장중한 의식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불상은 완성된다. 복장 장엄의식은 점안의식과 함께 불장을 신격화하고 존엄하게 받드는 중요한 의례이다. 점안의식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줄 것을 가시적이고 외형적으로 표현하는 최종 의식이라면, 복장 장엄의식은 당시의 귀물을 법식에 따라 봉안하여 불상에 존격을 부여하는 구체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복장 장엄의 절차를 기록한 책은 1677년에 편찬된 관상의궤觀想f義漸와 1824년에 판각한 조상경이 있다. 이들 책은 약간의 차어는 있으나 사뭇 유사한 절차를 기록하고 있다. 그 절차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천 복장장엄에 사용되는 유물은 오경五鏡, 오보병五寶甁, 오곡五穀, 오보五寶, 오향五香, 오향五藥, 오황五黃, 오길상초五吉祥草, 오개자五芥子, 오시화五時花, 오보리수엽五菩提提樹葉, 오색채번五色綵幡, 오색사五色絲, 오산개五傘蓋, 오금저五帛柱, 일체여래전신사리보一切如來全身舍利寶, 진언眞言, 앙편원경兩面圓鏡, 횡복자黃福子, 원문願文, 사리舍利(수정,유리), 후령통喉鈴筒, 사방주四方兄, 팔엽대홍련주八葉大紅蓮兄 등이다.
복장 장엄은, 먼저, ①중앙과 네 방위에 따라 청색(동), 홍색(서), 황색(남). 녹색(북), 백색(중앙)으로 만든 다섯 보병 안에 방위에 따라 정해진 각각의 오물을 담는다. 그 순서는 오곡, 오보, 오약, 오향, 오황, 오개자, 오색채번, 오색선, 오시화, 오보리수엽, 오길상초 순이다. ②그리고 오산개로 각각의 오보병을 덮는다. 이 때, 나중에 외장할 후령통과 황색 보자기 밖으로 나오도록 오색사를 길게 늘어 뜨린다. ③오륜종자五輪種子, 진심종지眞心種子, 준제주准提呪, 보신주保身兄,, 화신주化身兄 등의 주문을 후령통안에 봉안한 뒤에 오보병과 사리합을 넣고 무공주심주를 넣어 팔엽개를 갖춘 후령통에 오보병을 안치한다. 후령통은 대개 불상의 경우는 원통형으로 만들고 불화인 경우는 방형으로 만든다. ④양면 원경으로 후령통 내 오보병의 바닥과 위에 봉안한다. ⑤후령통 외면에 사방주-아(동), 라(서) 마(남), 하(북)의 범어-를 쓴다. ⑥후령통 밖에 오경을 방위에 따라 걸거나 불인다. ⑦ 지방으로 후령통을 싼 후, 팔엽개를 덮고, 팔엽대홍연주를 덮개 위에 편 후, 천원으로 지방의 외부를 싼다. ⑧황초 보자기를 펴고 원문, 보협주를 봉안한 뒤에 후령통을 봉안하여 보자기로 싼다. 이 때, 보자기 끝과 오색실을 합하여 두른 후 배면에 접합한다. ⑨준제주准提呪를 세로로 봉하고 법인주法印呪를 가로로 봉한 후 남쪽 면에 증명인을 적는다. ⑩불상 안에 복장물을 안치하되 배꼽에 오도록 맞추어 봉안한 뒤에 기울지 않도록 진언이나 범서로서 가득채운다.
이처럼 복잡한 복장 장엄의식에는 오방법사를 맡은 스님 다섯 명, 복장 진언을 잘 외우는 송주법사 두세 명, 아사리 한명 등, 아주 제한된 사람만이 참여한다.
복장 장엄은 교계에서는 교리의 장엄한 상징과 신앙의 실천적 대상이나, 조각사나 불교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제작자(발원자),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정사나 고기록과 비교하여 시간과 공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불상에 복장 장엄을 하는 의미는 생신 사상生身思想에 기인한다. 곧, 사리를 불상 속에 넣음으로써 그 불상이 진신 부처님으로 화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사장이 확대되어 민간신앙인 기복사상과 결부됨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복상 장엄에서는 망자나 기원자의 의복조각을 함께 봉안하는 형태가 많이 발견된다. 망자나 기원자의 의복을 함께 봉안함으로써 그들의 극락왕생과 안녕을 기원하고자 하는 염원을 읽을 수 있다.
복장 장엄은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부터 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늦어도 8세기에는 복장 장엄을 갖춘 불상이 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복장 장엄이 조사된 예는 열 다섯 건쯤이다. 이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내원사 비로자나불의 복장 장엄(부산시립박물관 소장)인데, 납석제 통에 766년 명이 새겨져 있어 당시의 복장 장엄 형태를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한 건과 1302년 명의 아미타불 복장 장엄을 빼면, 지금까지 조사된 것은 모두가 조선 후기의 복장 장엄들로 한정되어 있어,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복장 장엄에 대한 연구가 과제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문언학자나 서지학자가 주로 담당하였고 대상도 한정되어 있었다. 석조불상의 장엄의식을 탑의 장엄의식에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것에서부터 좀더 깊은 연구 방법도 개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고학, 미술사 둥 관련 연구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며, 지금까지의 성과를 토대로 하여 좀더 다양한 연구 방법이 개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탑의 장엄의식(1,2), 건물지의 지진, 진단의식, 불상의 복장장엄에 대해서 소략하게 나마 살펴보았다. 신앙의 대상물은 어떠한 형태이든 신앙의 사상 속에서 조성된 산물인 만큼 불교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유물(자료)에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불교의 장엄의식은 여러 선생님들의 연구 성과를 참조하거나 요약하였다. 좀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해 각 주제별로 연구 업적을 소개하면, “탑과 건물지의 장엄의식”에 대해서는 강우방님의 「불사리장엄으론(국립중앙박물관. 1991)」을, 그리고 “복장장엄”에 대해서는 온양민속박물관에서 펴 낸 「1302년 아미타불복장물의 조사연구(199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