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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사성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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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토와 비유경 - 김현산 1988년 08월 78호
네 가지 진리의 법을 닦아 행하라
첫째는 괴로움의 진리,
둘째는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
세째는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
네째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진리이니,
그 이치는 끝이 없어서 생각으로도
다할 수 없고
말로도 다할 수 없느니라
-아함경 사제품-


설(說) 하는 이유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오셨읍니다. 그리고 우리 노동자를 위하여 이 「사성제」를 널리 가르치고 두루 나타내 보이셨으며, 우리가 믿음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베풀어 설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등과 평화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이 말씀을 잘 받들어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사성제는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의 사라짐 〔滅〕, 괴로움을 벗어나는길〔道〕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노동자에게 사성제란 무엇인가요.

괴로움의 진리
여러분, 괴로움이란 무엇입니까. 우선 우리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괴로움은 배고픔입니다. 나 자신의 배고픔보다는 사랑하는 가족의 배고픔이 더 큰 괴로움입니다. 또한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특히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제삿날이 되면 그 괴로움은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보고 싶은 친구를 못 보는 것, 사랑하는 친구와 헤어지는 것, 친구와 마음이 맞지 않는 것, 자기 또래의 친구들이 호화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 들도 괴로움이지만, 가장 큰 괴로움은 우리 친구들이 자포자기에 빠져 되는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선풍기 하나 없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것, 친구가 작업장에서 일하다 다친 것을 보는 것, 휴식 없이 장시간 일을 해야 하는 것, 졸음을 물리칠 수 없는 것, 작업량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 것 들도 괴로움이지만, 가장 큰 괴로움은 우리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남보다 많이 배우지 못함, 세상인심의 야박함, 나보다 더 가난한 이웃, 기업주나 높은 사람편만 드는 경찰, 노동자를 위한다고 입으로만 떠드는 정치가와 지식인, 나날이 부자가 되는 종교인, 이들을 보는 것도 괴로움이지만, 더 큰 괴로움은 옳은 이야기를 했다고 빨갱이로 몰아부쳐 잡아가는 현실입니다.
친구가 서로 뭉치지 못하는 것, 가족이 노동조합 활동을 눈물로 말리는 것, 노동조합 분회장이 배신하는 것, 친구가 경찰에 구속되는 것, 구사대에게 얻어맞는 것들도 괴로움이지만, 더 큰 괴로움은 힘들여 결성한 노조가 내분으로 깨지는 것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
여러분, 괴로움의 원인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가장 큰 괴로움언 배고픔의 원인을 그동안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속설처럼, 마치 운명론적인 것으로 생각해 왔읍니다. 그러나, 사실 배고픔의 원인은 우리가 스스로 일한 만큼 그 댓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읍니다. 우리는 그동안 일부 가진 자들의 집착에 의해 우리의 몫을 빼앗겨 왔으며, 그들은 이것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선전하였습니다.
또한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겪는 우리의 괴로움에는 물론 향수라는 감정적인것도 있겠지만, 더 큰 원인은 우리로 하여금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회구조에도 있읍니다. 우리 자신과 부모님들은 수출 위주의 공업 경제에 밀려 농촌을 등진 채 삶을 찾아 도시로 와야 했으며, 그 도시에서 조차 재개발이라는 명목에 밀려 산동네를 전전해야만 했습니다.
친구와 헤어지거나 자포자기하는 것을 보는 괴로움은 우리 자신이 먼저 객관적인 환경을 핑계로 무기력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나는 배우지 못했으니까’, ‘가난은 운명이니까’, ‘돈만 벌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으니까’ 하는 마음이 우리 스스로를 이기적으로 또한 자포자기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괴로움을 갖게 하는 원인입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괴로움, 옳은 이야기를 해도 무시당하는 괴로움, 또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겪는 괴로움의 원인은 결코 개인의 환경이나 성격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자신의 노력 여부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공장의 환경과 기업주의 의식에 더욱 중요한 원인이 있으며, 더 크게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가진 자만을 옹호하는 그릇된 의식으로 가득 차 있음에 그 원인이 있읍니다.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
여러분,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란 무엇입니까.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아는것, 그것이 바로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입니다. 괴로움을 겪는 사람이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면 괴로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는 의사가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 그 병을 고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병을 알고 병의 원인을 안다면, 이제는 그것을 고치는 처방만이 남아있읍니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의사의 의지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의사가 아무리 훌륭한 처방을 내렸다고 해도 환자가 그 야을 먹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듯이, 중요한 것은 우리 노동자 스스로가 지금의 괴로움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주체적인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체적인 의지를 갖도록 수행하는 방법이 바로 괴로움을 벗어나는 진리입니다.

괴로움을 벗어나는 진리
여러분 어떤 것이 바른 소견입니까. 그것은 고통을 고통으로, 고통의 원인을 고통의 원인으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고통이 사라지는 것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곧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로보는 것입니다.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행동이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또한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집작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졌을 때 바르게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바른 생활이란,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괴로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다만 올바른 관찰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삶을 말합니다.
올바른 방편은 쉼이 없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한결같이 꾸준히 힘써 바른 삶을 구하고, 오로지 힘차게 나아가 이를 결코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며, 마침내는 자신의 마음까지도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바른 뜻은 스스로의 의지입니다. 올바른 관찰을 통하여 바른 뜻을 갖고, 바르지 않는 뜻은 과감히 버리며, 나만의 좁은 뜻이 아닌 두루 동료를 생각하는 뜻을 갖는 것입니다.
바른 정(定)은 자신이 관찰한 바른 삶이나 뜻을 어지럽히지 않고 흩어지지 않게 거두어 잡아 일관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노동자에게 있어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 즉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이는 타인이 나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 자기 일에 충실하고 정당한 댓가를 받는 것, 친구끼리 단결하여 권리를 찾는 것,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어떤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삶의 주체로서 자부심을 갖고 단결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서로를 돕고 이해하며,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은 필요합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바로 우리에게 있어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진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씀하셨읍니다.

이제 이 네 가지 진리의 법,
이것을 여실히 알지 못하면
억압과 굴종 속에서 바퀴돌면서
끝내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만일 이제 이 네 가지 진리를
밝게 깨달아 환히 알면
자유와 평등의 세상에서
다시는 고통받지 않으리

삶과 언어
이 글은 중아함경 제 7권 분별성제경을 어느 노동자의 수기를 들으면서 재구성해 본 것이다. 일생을 방편과 비유를 통해 중생을 교화하신 부처님처럼, 오늘날 노동자에 대한 진정한 포교는 노동자의 삶과 언어 속에서 그들에게 깨달음을 찾아 주는 것이라고 본다.
사성제가 부처님이 설하신, 진리에 이르는 말씀이긴 하지만, 그것이 오늘을 사는 중생의 언어와 삶에 동떨어져 있다면 결코 깨달음을 찾아줄 수 없다.
현존하는 중생의 이야기를 통해 부처님 말씀을 이웃에게 전달할 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며, 훌륭한 공동운명체를 형성해서, 바로 이 땅 위에 불국정토를 구하려는 우리의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