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 무슨 일로 웃지도 못하게 하고 숨도 제대로 크게 못 쉬게 합니까. 또 저리 많이 드나드는 사람들의 무거운 발걸음은 웬 까닭입니까. 대감마님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기라도 했는지요.”
“아니 쟤가? 어디 함부로 입놀림을 하느냐. 공(公)이 나쁜 병에 걸려 온 집안이 수심에 싸였는데, 언행을 삼가함은 특히 아랫것들의 도리이거늘 무슨 말이 그리많으냐.”
“그렇게 쉬쉬 하려고만 하니 더한 게지요. 높고 귀한 양반들에게 오히려 더 흉물스런 종기가 나서 짓무르기 마련이거늘, 그 썩은 살 드러내서 도려낼 생각은 않고 그저 감추고 다독거리고 앉아 그런 더러운 병은 아닙네 한다고 뭐가 될 줄 압니까.”
“아니! 누가 들을라. 마님이 종기로 앓는다는 걸 네가 어찌 알았느냐. 큰 일 낼 아이구나.”
“걱정마시고 어머니, 대감마님께 사뢰어나 주소. 제가 당장 낫게 해 드린다구요.”
“무슨 계책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혹여 허튼 소리로 우리 모자(母子) 목숨부지도 못 하는 건 아닌지…”
마침내 천진공(天眞公)에게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우조(憂助)의 어머니.
“그래 내 병을 낫게만 해준다면야 오죽 좋으랴마는. 그대 아들에게 무슨 큰 재주라도 있단 말인가. 그 애 나이가 몇살이던가.”
“예. 올해 일곱살이온데 평소 특별히 이상한 일은 없사옵니다만 다만 마님의 병세를 스스로 꿰뚫어 알기에 행여나 해서…”
“음, 좋아 한 번 믿어 보지. 허나 만약 거짓임이 밝혀진다면 엄한 벌을 면치 못 할 것이니라. 웃사람을 희롱하는 것도 큰 죄가 아니더냐.”
그리하여 천진공은 우조를 불러오게 한다. 그러자 우조는 공의 침상 아래 조용히 앉아 가만히 있다.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어, 사원하게 종기가 터졌구먼. 그래 네가 내 병을 낫게 해준다더니 한 일이 무엇이냐.”
“……”
“넌 그저 앉아만 있었지 않았는가? 그런데 내 어찌 병의 완쾌를 네 공(功)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내 병이 나은 것은 기쁜 일. 네 공이 아니라 해서 벌 주고 싶지는 않으니 그만 물러가거라.”
2
우조는 자라자 천진공을 위하여 매를 길렀다. 공은 그매를 아끼고 사랑했다. 공의 아우가 벼슬을 얻어 지방으로 부임하게 되어서 공이 그 매를 선물했는데, 어느 날은
‘내일 아침엔 우조를 보내서 매를 좀 데리고 오도록 해야겠구나. 아우가 잘 키우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그런 다음 날 새벽.
“공이시여, 여기 매를 가져 왔나이다.”
“아니, 어떻게 그대가 내 속마음을 그리 잘 안단 말인까.”
“특별히 알려고 애쓰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리 마음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으니 제 눈에 보이는 것일 뿐.”
“허허… 나는 지극한 성인이 내 집에 와 있는 것을 알지못하고 미친 말과 예의에 벗어난 짓으로 욕을 보였으니 그 죄를 어찌 다 씻는단 말인가.”
“귀족이든 백성이든, 벼슬을 하든 남의 집에서 품을 팔고 있든 간에 사람은 모두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티끌세상에 내려와서 함께 하는 빛이 있을 수 있음을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 지난 허물을 참회한다면 그대가 가지고 있는 아만과 집착을 버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원컨대, 이제부터는 부디 밝은 길을 인도하는 도사(導師)가 되어 주소서.
빛은 어두운 곳에 있을 때 비로소 그 본래의 의미를 띠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와의 인연도 다한 모양입니다.”
3
“여보게, 자네 서라벌 최고의 큰스님이 누군지 아나?”
“그야 원효스님이시지. 수많은 경론을 지었을 뿐 아니라, 천혼만락(千村萬落)을 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도록 했다지 않은가.”
“아닐세. 그건 자네들이 모르는 소리야. 도인은 숨어있어야 하는 법이네. 그런 면에서 혜공(惠空)스님이 더욱 큰스님이라네.”
“혜공스님이라니. 처음 듣는 스님인데.”
“혜공스님은 항상 조그만 절에 살면서 매양 미친 듯이 크게 술에 취해 삼태기를 짊어지고 길거리를 노래하고 춤추며 다니면서, 티끌 속에 빠져 지내는 무지랭이 중생들과 함께 하는 분이라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부궤(負蕢)화상이라고 한다네.”
“그거야 원효스님께서도 그러셨잖나.”
“물론 그렇긴 하네만, 혜공스님은 원래 천진공의 집에서 품팔이하던 노파의 아들이었다네. 거기서 천진공의 아만을 꺾어주었다고 하네.”
“허나 원효스님의 경우에는 많은 저술도 있지 않나. 배움과 실천, 두 방면 모두를 갖추었으니 더 훌륭하지 않겠나.”
“그것도 기실 그렇지 않다고 들었네. 원효스님도 불경의 소(疏)를 지을 땐 혜공스님에게 가서 묻고 의논도 했다네. 또 한때는 「조론(肇論)」을 보고 스스로 승조(僧肇)법사의 후신(後身)임을 증언하셨다네.”
“그렇다면 우리 서라벌에는 참 훌륭한 스님도 많으이그려, 원효, 대안, 혜공스님 등등.”
“그렇지, 그 모든 스님들이 모두 귀족적이던 불교를 서민 대중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 티끌 속에 내려와서 빛을 감추고 계셨다는 것이 더욱 고마운 일일 게야.”
“출가라는 것도 ‘티끌’을 부정하고 떠나서 ‘빛’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티끌’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 모습을 그 분들 스님은 보여주신 게지.”
4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어디 불이 났나.”
“불을 꺼라. 물을 날라라.”
“부처님, 부처님을 모셔라.”
서라벌 영묘사(靈廟寺)에는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다. 온 사중(寺中)의 스님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불길을 잡으려고 외친다. 선덕여왕 4년(635)에 지은 절로, 양지(良志)스님이 석장을 날려 시주를 걷었고 온 백성들이 서로 앞다투어 흙과 돌을 날라 세운 곳이다. 그런데, 왕인 선덕여왕이 종종 들러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곤 하던 이영묘사에 난데없는 불길이 치솟은 것이다. 왕은 불길과 연기에 놀라 신하를 보낸다.
“어서 가서, 왜 불이 났는지 알아보고 불길을 잡도록 하라.”
헌데, 기이하다.
그 거세었던 불더미 속에서도 법당과 좌우 경루(經樓), 남문쪽의 회랑만은 어디 불이 났더냐는 듯이 조금도 그을림 없이 말짱하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이럴 수가? 그 거친 불길 속에서 여기만 이렇게 불에 타지 않다니? 연기 자국도 없이.”
“그래, 맞아. 역시 혜공스님은 도인이셔. 지귀(志鬼)의 심화(心火)가 절을 불태울 줄 미리 알고, 사흘 전에 들르셔서 그 방비를 하셨던 게야.”
“아니 그 무슨 얘기인가.”
“글쎄 스님께서 사흘 전에 풀로 꼰 새끼줄을 가지고 오시더니 금당과 좌우 경루, 남문의 회랑을 둘러매어 놓으시고는 ‘사흘 뒤에 이 새끼줄을 풀도록 하라’고 하셨던 게야.”
“그런 일이 있었더란 말인가.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