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하나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사랑 클래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판순이의 큰 목소리도 이 노래를 부를 땐 저절로 가라앉고 작아졌다. 고아원에서 바라보이는 넓은 바다 저쪽 수평선은 판순이의 남자애 같은 거친 마음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판순이는 강 설자 선생님이 좋았다. 선생님이 부르는 노랫소리와 웃는 모습이 천사님처럼 아름다왔다.
그런데 강 선생님은 창덕이와 점득이를 더 가까이 보살펴 주었다.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축하 잔치를 앞두고 점득이와 창덕이의 이중창을 특별히 지도해 주었을 때, 판순이는 무척 섭섭했다.
점득이와 창덕이의 ‘그 어리신 예수’ 의 이중창은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강 선생님이 말했다.
“점득아, 넌 정말 노래를 잘 부르는구나.”
“……”
점득이는 부끄럽게 얼굴을 붉혔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성악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
강 선생님은 두 손으로 점득이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그런데 천사의 집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축하 위문 공연을 가까운 미군 부대로 갔을 때였다. 점득이와 창덕이의 이중창을 들은 미군 대위 한 사람이 두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가자고 제의했다. 음악 공부를 시키자는 것이었다.
강 설자 선생님이 그 말을 전해 듣고 다음날 점득이와 창덕이, 그리고 점례를 따로 불렀다.
“점례야, 아주 반가운 소식이야. 미군 부대 리챠드 대위님이 너희들을 미국으로 데려가겠다는구나.”
“미국으로요?”
점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점득이와 창덕이를 음악 공부 시키자는 거야. 얼마나 큰행운이니?”
강 선생님은 자기 일처럼 들떠 있었다.
“저도 함께 가게 되나요?”
점례는 기쁜지 어떤지 그냥 갑작스러워 건성으로 다시 물었다.
“점득이의 누나라고 하면 너도 같이 가게 될 거야. 내가 잘 되도록 얘기할께.”
“……”
“미국가면 고생도 안 할거야. 너희들은 거기서 좋은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해.”
“……”
“미국에 일부러 돈을 들여 유학을 가고 싶어도 어려운데, 너희들은 그냥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으냐!”
강 선생님은 아이들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계속 혼자서만 다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점득이는 다소곳이 듣고 있었다. 기쁜 빛도 슬픈 빛도 나타내지 않았다. 창덕이 역시 말없이 듣고 있었다.
강 선생님은 다시 말했다.
“아마 일월 초에는 떠나게 된다니까 너희들은 준비하고 기다려라.”
그때, 점득이가 보이지 않는 눈을 들고 강 선생님을 향해 힘없이 말했다.
“선생님, 저는 미국 가고 싶지 않아요.”
강 선생님은 너무 뜻밖이어서 점득이가 무어라 말했는지못 알아 들었다.
“점득아, 지금 뭐랬니?”
“전 미국 가지 않는다고 했어요.”
“미국에 왜 안 간다는 거야?”
“가기 싫어요.”
강 선생님은 얼굴빛이 못 마땅해졌다. 그러나 까닭을 물었다.
“왜 안 간다는 거니?”
“그냥 가기 싫어요.”
“그럼, 창덕이는 어쩔 테니?”
“……”
창덕이는 대답없이 가만히 있었다.
“창덕이도 가기 싫으니?”
강 선생님이 다시 다그쳐 물었다.
창덕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가겠다는 말이니?”
“예.”
창덕이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담 창덕이 혼자서라도 가야지. 너희들은 가족이 없으니 누가 돌보아줄 사람이 없잖니. 이 고아원에서 지금은 먹고 자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른단다. 그러니까 점득이도 다시 생각해 보아라. 아마 갑자기 들은 말이기 때문에 대답하기 힘들어서 그러는 것 같으니 내일 다시 얘기하자.”
이만큼 말하고 강 선생님은 아이들을 내보냈다.
점득이는 지난번 기만이한테 석탄가루로 놀림을 받았을 때보다 어쩌면 더 서러웠다.
층계가 있는 모퉁이까지 와서 점례가 물었다.
“점득아, 왜 미국에 가기 싫으니?”
“그냥 가기가 싫어.”
“창덕이하고 같이 가서 음악 공부해서 너도 강 선생님처럼 되고 싶지 않니?”
“……”
“오늘 밤에 잘 생각해 보고 내일 선생님께 간다고 해.”
그러고 나서 점례는 점득이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너 노래를 잘 불러서 뽑힌 거야.”
“……”
점득이는 점례의 얼굴을 떠다밀었다.
이날 밤, 점득이는 곁에 누워 있는 창덕이 손을 잡고 말했다.
“창덕아, 너는 미국가서 공부하고 와.”
창덕이는 점득이 손을 마주 꼭 쥐었다.
“점득이는 왜 가기 싫으니?”
“난 전쟁이 끝나면 외가집에 가서 승기랑 승숙이 누나 기다려야 해.”
“그러니? 그래서 가지 않겠다는 거니?”
“그래, 그러니까 너 혼자만이라도 가도록 해.”
“……”
창덕이는 살며시 돌아 누웠다.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정말 나를 버리고 간 걸까? 아니면 쫓겨가느라 내가 뒤처진 걸까?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는 살아계시는 걸까? 돌아가신 걸까?)
창덕이의 흐느끼는 소리에 점득이도 따라 눈물이 나왔다.
(창덕아, 나도 너하고 같이 미국갔으면 좋겠지만 그건 안돼. 난 미국이 싫단다.)
어느새 고아원 안에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이튿날 아침, 핀순이가 점례한테 큰소리로 물었다.
“점례야, 정말이니?”
“뭐 말이니?”
“너하고 점득이하고 미국간다는 것.”
“아니야.”
점례는 머리를 저었다.
“흥, 누가 모를까봐서.”
판순이는 새침해졌다.
“정말은 창덕이하고 점득이를 미국에 음악공부하러 보낸다고 하셨어. 강 선생님이.”
점례가 바른대로 가르쳐 줬다.
“어머나! 음악 공부하러?”
“그래.”
“그럼. 넌 가지 않는구나.”
“나도 안 가고 점득이도 안 가.”
“점득이는 왜 안 가니?”
“가기 싫단다.”
점례는 점득이가 왜 안 간다는지를 몰라서 찜찜하게 말했다.
“점득인 바보구나. 미국가면 호강하면서 산다는데 왜 가기 싫을까?”
판순이도 고개를 갸웃했다.
“몰라. 아마도 낯선 곳에 가는 것이어서 싫은 거겠지.”
그러나, 점득이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득이는 모과나무골의 폭격을 절대 잊어 버리지 않고 있었다.
결국 창덕이 혼자서 리챠드 대위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갔다. 점득이 대신인지 아니면 미리부터 그런 약속이 되어 있었는지 창덕이와 함께 강 설자 선생님이 따라갔다.
떠나기 전날, 창덕이는 점득이한테 언제나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점득아, 나 혼자 가서 미안해.”
“아니야, 내가 같이 안 가서 되려 미안해.”
“그런데 말이지…”
창덕이는 머뭇거렸다.
“뭐 말이니?”
“나 말이지, 정말은 어디 멀리 멀리 가고 싶었단다. 아주 조그만할 때부터 나 혼자서 가서 살면 엄마 아버지 걱정 안 끼치고 좋을 테니까…”
“……”
“내가 미국가면 우리 엄마 아버지는 마음놓을 거야. 병신 자식 없어졌으니 이웃사람들에게 흉보이지 않아도 되고…
“……”
“점득아, 난 왜 태어났지? 부모님께 걱정만 끼치는 아들이었는 걸. 난 정말 불효자야. 나 같은 것 때문에 전쟁 잘 일어냈지.”
창덕이는 그 동안 품어왔던 말을 마음놓고 털어내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dia전하고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창덕이는 너무도 어른스러웠다.
“점득아, 넌 얼굴이 어떻게 생겼니?”
갑자기 창덕이가 엉뚱한 걸 물었다.
“어떻게 생기긴, 눈 코 입 똑같이 그렇게 생겼지.”
“아니야, 점득이는 아주 잘 생겼을 것 같어.”
“우리 같은 장님이 잘 생겼으면 어떻고 못 생겼으면 어떻니?”
“그건 그렇지만, 난 점득이 얼굴 잘 생긴 것 알아. 난 그동안 점득이 얼굴을 짐작으로 머리 속에 그려놓았단다. 그러니까 멀리 헤어져도 잊지 않을 거야. 오래 오래 잊지 않을거야.”
“……”
점득이는 목이 메었다.
이제야 창덕이 마음 깊은 곳까지 알 수 있었다. 창덕이가 미국 가는 것은 정말 가고 싶어 가는 것이 아니었다. 창덕이는 벌써 옛날부터 어떤 어려움도 나타내지 않고 마음 속으로만 삭이며 살아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불쌍한 창덕이…)
점득이는 그날 밤, 아니 그 전날 밤도, 또 그 전날 밤도 따뜻하게 담요자락을 거두어 덮어주던 창덕이 손길을 잊지 못했다.
그런 창덕이 얼굴 모습을 점득이도 머리 속에 그림처럼 그렸다. 아기 예수님처럼 아니면 천사처럼 예쁜 창덕이 얼굴이 헤어지고 난 뒤에는 더욱 또렷이 점득이 머리 속에 새겨졌다.
창덕이가 떠나가고 난 다음, 창덕이 자리에 천수가 왔다. 간질병을 가지고 있는 이북 아이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다 싫어하는 것을 점득이가 스스로 나서서 오라고 한 것이다.
(나도 창덕이만큼 착한 아이가 될 수 있을까?)
점득이는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지만 그건 점득이 마음이지 천수의 마음은 아니었다.
“천수야, 추울 테니까 우리 담요 두 장으로 함께 덮고 자자, 응?”
점득이는 더듬거리며 어제 밤까지 창덕이가 그랬던 것처럼 두 장의 담요를 포개어 천수와 함께 덮으려 했다. 손을 더듬더듬 담요자락을 천수쪽으호 훨씬 넓게 끌어다 주는데 갑자기 점득이 얼굴에 모난 뼈다귀가 찌르듯이 부딪혔다.
“아얏!”
점득이는 실수로 천수의 팔꿈치에 얼굴이 닿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천수 팔꿈치의 뼈다귀보다도 더 아프게 쏘아불이는 것이었다.
“누가 너하고 함께 자는 걸 좋아한댔니? 난 간질병을 앓아도 눈봉사하고 같이 자는 건 싫단 말이다!”
천수는 제 담요 하나만을 핵 잡아다가 똘똘 말아 휘감고는 돌아 누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