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에 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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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정진홍
1988년 08월 78호
소란스러움과 번거로움은 일탈한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려는 흔히 이러한 것이 삶을 마구 훼손하는 듯하다고 여기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삶이란 본디 꿈틀거립입니다. 그것이 어찌해서 그런지는 그 까닭이야 알 도리가 없읍니다만 삶이 꿈틀거림이라고 하는 사실만은 이주 분명합니다.
그래서 삶은 한 군데 고즈너기 머물지를 못합니다. 이리 가고 저리 가며, 이리로 돌아오고 저리로 다가갑니다. 그런가하면 삶의 색깔이란 것도 결코 한 가지 색으로 채색되어 있지 못합니다. 노량인가 하면 파랑이고, 파랑인가 하고 보면 검정이고, 그런가하면 그 색깔들이 온통 뒤섞여 현란하기도 합니다. 삶의 결도 그러합니다. 고운 결이 일정하게 펼쳐지는가 하면 어떤 때는 그 고르기란 찾아볼 수 없게 엉망일 때도 있읍니다.
삶이란 이렇습니다. 그러니 삶이 소용돌이임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읍니다. 온통 난리스러운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것은 삶다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소란스러움, 번거로움, 꿈틀거림을 그저 본디의 모습으로만 여기지를 않고, 어쩌면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겁을 내면서 아주 의도적으로 그 소란스러움과 번거로움과 꿈틀거림을 더욱 그렇게 되도록 채근을 하기도 합니다. 문화라고 하는 것, 사람들이 사람다움의 알맹이를 드러내 꾸민 삶의 틀이라고 일컫는 바로 그 문화라고 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삶의 소란스러움과 번거로움과 꿈틀거림의 극치를 일컫는 것이 아닐까 하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삶을 소란스러움이라든가 번거로움이라든가 꿈틀거림이라든가 하는 약간 부정적인 뜻을 지닌 말로 묘사를 했읍니다만, 좋게 표현한다면 삶이란 약동하는 것이고 생산적인 것이며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힘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좋은 표현들을 두고 구태여 별로 달갑지 않은 소란이나 번거로움 등의 말로 표현한 데는 또 다른 까닭이 없지 않습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좋게 여길 수도 있는 삶의 뒷면에는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이 어려 있기도 한 까닭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삶의 모습은 확실히 항구여일하지를 못합니다. 삶은 그 대단한 약동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쇠잔해집니다. 삶의 적극적이고도 창조적인 힘이 저절로 그런 꿈틀거림을 계속하는데도 시들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삶의 온갖 모습이,그 꿈틀거림이 오히려 소란과 번거로움으로 여겨지면서 귀찮아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고 이재까지 전혀 하지 않았던 다를 것이 하고 싶어집니다. 쉬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경험하고 있읍니다. 갑자기 피곤해질 때가 있는 거죠. 물론 몸이 불편해 그럴 때도 있읍니다. 지쳐버려 더 이상 몸의 기력이 지탱하지 못할 때도 있읍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이 더는 어쩔 수 없이 맥이 빠져 버리는 경우도 있읍니다. 따지고 보면 마음과 몸이 그리 따로 있는 것은 아닌 듯 싶습니다. 아뭏든 지치고 피곤해져 삶의 활력이 오히려 소란스럽고 번거롭게 여겨지게 되면 우리는 쉬고 싶어집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은 거죠. 깨어 있지 않고 잠을 자고 싶은 겁니다. 또 사람들과 만나거나 일에 파묻혀지 않고, 홀로 떠나 아무 일 없이 지내고 싶은 거죠. 어떤 허허로움 속에 푹 파묻혀 버렸으면 좋을 듯 싶은 생각에 드는 것입니다.
아무 소리도 없으면 더 좋은 것입니다. 아무 색깔도 없으면 더더욱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으면, 네가 없고 그도 없고 마침내 나마저 없으면, 그 쉼은 더더욱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삶은 꿈틀거리며 이리 닫고 저리 닫는 것이 그 본디의 모습이거늘, 그 삶은 언제나 쉼에의 동경을 지닌 채 삽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삶의 그 힘찬 꿈틀거림은 삶을 몰아갑니다. 그래서 사람틀은 실제로 쉽니다. 휴가를 가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기도 하고, 딴 짓을 하기도 하며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고요한 정적과 홀로 있는 그윽한 고독과 아무 일도 없는 적막함 속으로 나를 던져 버리는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쉼을 꿈틀거림보다 더 좋아합니다. 오죽해야 쉬기 위해 일을 하겠읍니까? 그것도 아주 짧고 이쉬운 쉼을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삶을 일하고 꿈지럭거리는 창조적 힘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고요와 정적, 고독과 무위의 쉼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이 더 적절할런지도 모르겠읍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더 좋아해서 그 상태에 이르기 위해 사는 듯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삶은 쉼을 바라지만, 그래서 쉼에서 비로소 사람다움을 찾았다고 만족해 하기도 하지만, 쉼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쉼에서 얻은 새로운 힘으로 또 다시 꿈틀거리는 몸짓을 더욱 열심히 더욱 부지런하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고 보면 쉼이란 그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꿈틀거림을 더 활발하게 하기 위한 수단적인 가치만을 지닌 것이라고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쳇바퀴 돌 듯이 삶을 살아갑니다. 움직이기 위해 쉬고, 쉬기 위해 움직이고, 그렇게 빙글거리며 세월을 삽니다.
하기야 그런 것이 삶이거니 하고 살면 그뿐이기도 합니다. 산다는 것이 별것 있겠읍니까? 그렇게 흘러가는 거지요.
하지만 꿈틀거림과 쉼의 그런 쳇바퀴를 돌기라도 한다면 그 삶은 그래도 복받은 삶임이 틀림없읍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꿈틀거리려 해도 그리 되지 않는 삶이 있는가 하면, 또한 아무리 쉬려 해도 그리 되지 않는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을 살며 갖게 되는 우리의 진실한 물음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뭐 삶이 꿈틀거림이냐 아니면 쉼이냐 하는 따위의 생각은 실은 한가롭고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사색의 유희일 뿐입니다. 삶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아마도 그런 물음을 절실하게 하는 분도 없으시지야 않겠죠. 하지만 우리네 산다는 것이 어디 그런 사색이나 하고 앉아 있을 만큼 여유스럽기나 합니까? 그러니 쉬려 해도 쉬어지지 않고, 꿈틀거리며 온갖 활개짓을 다하고 살려 해도 그리도 되지 않는 이 삶이야말로 괴로움 그 자체일 수밖에 없읍니다. 눈뜨고 잠들 때까지 괴롭지 않은 것이 없고 잠들어 다시 눈을 뜰 때까지도 시달리지 않음이 없읍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러 지치고 시달리다 보면 우리는 삶을 꿈틀거림과 쉼으로 나누어 이를 번갈아 오가며 사는 지혜를 갖고 싶어하기보다는 아예 삶에서 훌훌 벗어나 삶 아닌 곳에 이르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아예 쉼이라든가 꿈틀거림이 없는 그런 어떤 경지를 바라는 것이지요. 하기는 이 경지에 이르러야 그것이 진정한 쉼일런지도 모르겠읍니다. 삶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쉼이란 사실은 꿈틀거림의 수그러짐이지 그것이 꿈틀거림이 아님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쉼이라면 삶 그것에서부터 훌쩍 벗어난 것이어야죠. 사실 쉼의 그 참된 모습은 꿈틀거림과 상대적인 입장에 놓여있는 그런 대칭개념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스스로 있는 어떤 경지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것은 삶이 아니어야합니다. 삶 속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삶속에 쉼이 있으리라 여겨 때로 그 쉼을 느끼며 즐기는 경우가 있다해도, 그것은 온통 속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착각하고 있는 셈입니다. 삶 속에는 처음부터 쉼이란 없는 법입니다. 쉼은 삶하고는 상관없는 곳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은 만약 그처럼 쉼이란 것이 삶과 상관없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이 삶속에서 쉼을 꿈꿀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까닭이 없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면, 우리가 삶에서 쉼을 바라고 있는 것은 쉼의 어떤 낌새가 그래도 우리 삶 속에 있기 때문이 아니겠읍니까?
그리고 보면 우리는 다시 앞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생각할 수밖에 없읍니다. 아무리 우리가 속고 있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도, 역시 번거로움과 소란스러움을 피해 고요하고 안온한 어떤 시간이나 장소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범연한 일이 아님에는 틀림없읍니다. 그러니 쉬기 어렵고 꿈틀거리기도 어려운 괴로운 역설 속에서도 여전히 쉬거나 꿈틀거리기를 바라는 꿈이 있고, 또한 때로는 그 작은 조각이나마 경험할 수 있음은 여간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미망 속의 단편적인 경험을 통해서 마침내 그 어리석음을 깨뜨려 커다란 터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삶 속의 자그만 쉼은 드디어 진정한 쉼이 어떤 것인지를 터득케 하는 귀하기 이를 데 없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삶의 꿈틀거림뿐만 아니라 삶의 쉼의 계기를 꾸준히 찾고 희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한 그 계기들이 현실적으로 경험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해탈이라든가 열반이라든가 하는 그 깊고 깊은 진실들을 감히 짐작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 귀한 진실들은 결코 삶의 현실과 단절된 채 저 하늘 끝에서 펄럭이는 것일 수가 없읍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삶과 연결해서 경험하는 작은 것들을 통해 우리는 그 진실의 깊이에 가 닿는 것이지, 그런 모든 현실의 경험을 다 단절하고 껑충 뛰어올라 어떤 경지에서 노니는 것이 터득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해탈을 원하고 열반을 원한다면, 그래서 터득한 사람이 되길 진정으로 원한다면 아무리 바빠도 쉼을 틈내어 그 쉼이 함축하는 그윽함을 통해 그 해탈과 열반을 꿈꿀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삶은 꿈틀거림만도 아니고 쉼만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참된 쉼 속에 자리할 때 그 자유로움을 통하여 지금의 삶이 완성되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기를 바라야하고, 쉴줄을 알아야 하며 또한 쉬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