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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분절의 현대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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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서중석 1988년 08월 78호
우란분절은 불교 집안에서 불탄절, 성도절, 열반절과 함께 사대 명절에 속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란분절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이를 전파하는 데의 미숙함으로 인하여, 봉건시대 때 추수 전에 행해졌던 전통 명절로 이해되거나, 불교 자체의 의례로서 조상의 천도를 비는 구복적 신앙과의 결합 형태로 기념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우리는 불교 집안의 명절을 준비하고, 치르고, 평가함에 있어서 명절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본다. 올바른 과정을 숙지하고 나서 실천을 했을 때, 그 결과가 목적에 부합될 수 있으며 현실의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 이에 먼저 우란분절을 바라보는 관점을 세우고, 우리들이 실천할 수 있는 가능한 형태를 살피며, 우란분절의 현대적의의 속에서 앞으로의 과제와 방향을 설정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의의이다.

1 . 우란분절의 올바른 관점 (그 현대적 의의)
우란분절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그 유래를 살펴보겠다.
“옛날 왕사성에 나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복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신 뒤, 가신을 불리기 위해 먼 곳으로 장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 나복은 길을 떠나며 집안의 재산을 셋으로 나누어, 하나로는 집안을 보전케 하고 다른 하나로는 삼보를 공양하고 매일 백승재(스님을 모셔 음식을 공양하는 것)를 지내도록 어머니께 드린 뒤 나머지를 갖고서 장사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나복의 어머니는 나복이 집안을 떠나 있는 삼년 동안 스님들을 구박하고 온갖 짐승의 피와 고기로 집안을 더럽히는 동 갖은 악덕을 일삼았다. 하여 나복의 어머니는 나복이 돌아온 지 이레 만에 중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그뒤 삼년간의 복상을 마친 나복은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목련이란 승명을 얻은 나복은 수행을 열심히 하여 신통을 얻은 뒤 저승 세계를 살펴 보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화락천궁에서 복락을 누리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아비대지옥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나복은 너무도 괴로와 몸부림치며 어머니의 죄를 대신 받고자 하였으나 인과의 법칙은 너무도 엄격한 것이라 신통 자재한 목련으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목련은 부처님께 어머니 천도의 방법을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목련의 정성을 가상히 여겨 방도를 일러주셨다. 목련은 그에 따라 안거가 해제되는 칠월 보름에 공양을 베풀고 천도발원을 하여 어머니를 천상에 태어나게 하였다.”
이 글의 특정은, 우란분절이 조상님과 부모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날〔 천도제〕로서 소극적인 개인 구원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어 불교의 세계 구도적 의미와는 다르게 적극적인 세계 구원의 방향성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란분절은 좀더 보편적인 의미, 또한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민중지향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란분절은 개인적인 조상제례자 아니라 민중 원혼 천도재일로 치뤄져야한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 곧 부도덕한 권력적 지배 계급과 부정의한 파쇼 체제의 억압과 사슬을 끊으려고 싸우다가 끝내 이땅 한반도가 민중 해방•민족 해방의 새나라로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임당하여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닐 우리 선열 열사들의 영혼을 천도하고 그 뜻을 지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상님들의, 선열 열사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어떻게 풀어줄 수 있겠는가. 작년 7월, 최루탄으로 죽어간 고 이 한열 열사, 올해 민족의 통일과 민중 민주주의의 실현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유서를 온 국민앞에 던쳐 놓고 명동성당에서 산화한 고조 성만 열사, 또 나와 같이 분신자살하는 인간이 다시는 없도록 통일 단결된 민중•민족 전선을 형성 일치단결하여 치열하게 투쟁하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린 숭실대학생 박래전 열사, 또 세상의 억압체제 속에서 좀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공부하며 일하다가 수은 중독이라는 산업병으로 사망한 l5세 소년 송면이. 이 소년의 죽음은, 명백히 사업장 속에서의 인간의 인간에 대한 책임 방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노동자는 자본가의 노예가 아니며 동등한 생명체임을 송면이의 죽음을 통해서 더욱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80년 광주의 이천여 죽음도 민중•민족 해방의 날을 앞당기는 불꽃이었음을 알고 있다.
이처럼 절절히 가슴마다 맺힌 한을 풀어주는 것은 바로 이땅, 고통의 세상에 살고 있는 칠천만 민중이라고 본다.
이땅에 해방된 조국을 보여주던가, 아니면 그러한 해방의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민중들의 해방 의지를 보여주어야만 그 원혼을 위로할 수 있다. 아직 조국의 해방이라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지금까지의 투쟁의 결실을 모두와 공유하고 현실 해방의지를 결집하여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한 다짐과 확인을 원혼께 드려야만 진정으로 원혼을 천도하여 한풀이가 되리라 본다.
둘째로 우란분절은 노동해방절로서 다시 살아나는 민족명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음력 칠월 보름은 농경사회에서 농사꾼과 머슴들이 일에서 해방되어 맘껏 휴식을 취하고 놀던 명절이기도하다. 봄에서 여름까지의 고된 논농사를 마치고 추석의 대풍을 기리며 쉬는 축제일이다. 이 명절의 성격은 봉건제 농경사회 속에서 소작민과 머슴들에 대한 지주의 개량적 시혜이며, 생산대중의 응어리진 한을 용해시키려는 일시적인 무마책이다. 이러한 성격의 명절이기에, 이 백중 민속을 현대에 되살릴 때는, 생산 대중의 자체 스트레스 해소라는 비주체적인 성격과 한풀이라는 지주들의 계산된 책략의 두 가지 측면을 극복하여, 주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근본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주체 조직인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절과 해방절을 설정하여, 그 축제 속에서 노동의 참의미와 노동의 기쁨을 나누고, 민중 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의 결실을 공유하는 한편, 그 의지를 다지는 날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축제와 다짐의 계기를 통해서 우리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갈때, 해방된 조국을 실제로 선열•열사들의 눈앞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2. 실천적 방법론 및 실천방향
이처럼 두 가지로 그 현대적인 의미를 부여했을 때, 우리들이 실천할 수 있는 가능한 형태는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전통 사찰에서의 기원 법회, 기도제의 제사형식, 개인적 축원 형식이 있었다. 그러나 우란분절이 불교적 중생제도라는 취지에서 행해지는 불교 집안의 행사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위의 두가지 관점 속에서 전중생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역사적인 보편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방법론의 하나는 불자 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천도제의 형식 속에 마당놀이나 살아 있는 자들의 생동감과 투쟁력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공동 실천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있겠으며, 또 하나는 각단위 지역 노동사업장과 지역을 중심으로 자체 행사를 창조적으로 시도하는 방법이 있겠다.
첫번째의 공동 실천 마당의 실현은, 전불자적 차원의 민중•민주열사 추모제나 민중불교 운동 연합이 85년부터 시도하고 있는 민족•민중 열사 천도재 그리고 생명 해방제의 연례 행사화 등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으며, 두번째 방법은, 우란분절 공동 행사 실무진의 내적인 연대를 통하여 각 노동 사업장 포교당과 연대-순회 공연 및 활동 경험 전승-하고 각 사찰과 포교당의 주체적인 노력이 결합될때 실현될 수 있다. 그래야 우리들의 민중을 지향하는 실천이 일관성과 안정성과 주체성을 갖추어 통일될 것이다.
앞으로의 실천 방향은, 먼저 일반적인 관점을 세우고 구체적으로 행사를 실현하도록 연구를 하는 것이며, 사부대중의 의식이 성장하고 또한 결집되도록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열악한 사부대중의 고통 속에서, 불교는 민중적 토대가 취약하고 예속성과 비민주성이라는 커다란 굴레를 안고 있지만, 조그만 노력들이 모아져 큰 힘을 낼 때, 해맑은 민중의 나라 곧 정토의 생명 해방의 날은 오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우란분절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립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