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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통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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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88년 07월 77호
통일 운동의 제기
지난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발표했다. 85년부터 꾸춘히 준비해 온것으로 알려진 이 선언은 민족 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본 원칙으로서①자주 ②평화 ③사상, 이념, 제도를 초월한민족 대단결을 주장하며, 통일 논의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보장 •휴전협정의 평화 협정으로의 전환 및 불가침 조약 체결 •평화와 안정의 국제적 보장이 이루어진 후 주한미군 철수 •핵무기 철수 등의 태도를 천명했다.
이 선언이 발표된 뒤 나라안의 보수 교단 쪽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같은 항목을 문제삼아 비판하고 나섰으나, 사회 전체에서는 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이보다 꼭 한달 뒤인 3월 29일 학생들에 의해 좀더 과감한 제안이 나왔는데, 처음에는 그 제안이 장차로 그토록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이 제안의 내용은 서울대학교 88학년도 총학생회장, 부회장에 입후보한 김 중기, 유 재석이 첫째 ‘민족 화해를 위한, 남북한 청년학생 국토종단순례 대행진’을 ①88년 8월 1일에서 14일까지 북한 청년 학생은 백두에서 판문점으로, 남한 청년학생은 한라에서 판문점으로 순례 대행진하고, ②8월 15일에 판문점에서 서로 만나 한판 대동제를 할 것, 둘째 ‘민족 대단결을 위한 남북한 청년학생 체육 대회’를 ①88년 9월 15일에서 17일 사이에 ②서울대와 김일성대학 중 한 곳에서 개최할 것, 셋째 실무회담은 6월 10일 민주화투쟁 1주년 기념일에 판문점이나 제 3국(제네바)에서 만나 추진할 것 등이었다.
이 제안이 발표되자 남한에서는 열개 남짓한 대학의 학생들이 곧바로 이를 지지하고 나섰으며, 4월 4일 북한의 김일성대학 학생 위원회에서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환영을 표시하며 회담장소는 판문점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물론 이 답신은, 처음의 제안이 서울대학교 안의 대자보와 유세를 통해 이루어졌듯이, 대한적십자사의 답신거부와 함께 일간신문의 짤막한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어서 4월 l6일 연세대학교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국민대토론회’가 열렸고, 서울지역 총학생회 연합(서총연건설준비위원회, 고 김 세진•이 재호 열사 추모사업회 준비위원회,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한국 가톨릭 대학생 연합(KSCF) 동의 이름으로 공동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 단체들은 그 뒤 공동 올림픽 개최와 통일 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게 된다.
4월 25일부터 29일 사이에 인천에서는, WCC 관계자를 비롯한 나라 안팎의 교계 지도자 사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기독교한반도평화협의회’를 열어 두달전에 발표된 KNCC선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채택, 발표하였다.

확산되는 통일 열기
간헐적이며 서서히 전개되던 공동 올림픽 개최 주장 및 통일 운동은, 5월 11일, 함 석헌, 문 익환을 비롯한 재야의원로 서른다섯명이 ‘노 태우 대한민국 대통령, 김일성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주석에게 드리는 편지’를 공개함으로써 마침내 재야와 국민에게 널리 확산되는 계기를 맞았다. 또, 같은 달 14일, 고려대학에서 전국의 칠십여개 대학교의 학생 이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610 남북 청년학생 실무 회담 성사 및 공동올림픽 개최를 위한 범시민학생 결의 대회’ 가 전국 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 주최로 열렸다. 이 대회는 통일운동에 대한 학생들의 열기를 안팎에 확인시켰으며, 또한 서울 대학교 학생들의 1차 2차 서한에 이어 3차 서한을 전대협 명의로 보냄으로써 3월 29일의 제안을 이제는 전국 대학생의 문제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5월 15일 명동성당문화관 옥상에서 서울대학생 조 성만 군이 조국 통일, 미제 축출, 공동올림픽 개최 등을 주장하며 할복, 투신한 일을 계기로, 통일 운동은 급속히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제민주 세력의 요구 사항이 되었다. 광주학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투쟁과 함께 전면에 등장한 조국 통일 촉진 투쟁은 이때를 고비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5월 28일 전국의 예순여섯개 민주 사회 단체에서는 “남북 공동올림픽과 6.10 남북학생 회담의 성사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조국 통일의 대업을 앞당기기 위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 때부터 정국은 6.10 학생 회담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매스컴은 연일 6.10을 앞둔 정부 여당의 대응, 국회의 움직임, 학생 및 재야의 동향, 국민 여론등을 보도했다.
현정권은 여론에 밀려 통일 논의는 개방한다 하였으되, 창구가 단일화되어야 하며 공동올림픽 개최는 IOC헌장에 위배되는 것으로 비현실적이라며 명백히 거부하는 태도를 천명하였고, 이에 따라 6.10 남북 학생 회담도 강력히 저지하였다. 야당은 약간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6월 8일, 3김 총재 회담을 통해,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애국 충정은 이해하나 6.10 회담은 연기해 줄 것을, 정부 당국에는 물리력으로 저지하지 말고 학생들과 만나 남북 교류 실시 방향을 합의할 것 등을 촉구했다. 그리고 통일 논의의 개방화와 모든 문제의 정치권 수렴화의 태도 속에서 국회에 ‘통일정책 상설 위원회’를 두고 그 부설 기관으로 가칭 ‘통일 정책 연구소’를 설치키로 했다.
결국 천 몇백명이 연행되고 백여명이 부상을 입은 가운데 6.10 학생 회담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6.10 회담을 둘러싸고 전 국민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폭넓어지고 깊어졌으며, 통일 논의의 개방화와 북한 정보의 공개화 약속은 큰 성과였다. 한 핏줄, 한 겨레가 분단된 지 사십여년이 넘어 이산가족의 수만도 일천만에 이르나 아직까지 서로 생사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고 주장했던 국회의원이 구속되는 것과 같은 난리를 폈던 일을 되씹어 보면, 통일 논의의 보장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시대는 바야흐로 국민 대중의 역동적인 힘으로 이른바 성역을 하냐씩, 둘씩 깨뜨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불교계의 통일 운동
6.10 학생 회담의 공방전이 끝난 지 이틀밖에 안 된 12일, 개운사에서는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공동올림픽 기원 법회’가 민족 화합 공동올림픽 추진 불교 본부(이하 불교 본부) 주최로 열렸다. 불교 본부 고문으로 있는 월운(봉선사 주지)스님의 법문과 용 태영 변호사의 참석이 눈에 두드러진 가운데 삼백여명의 사부대중은 시종 진지하게 법회를 진행하였다.
불교 본부는 이날 ‘조선 불교도 연맹에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 ①현 시기의 가장 절박한 과제인 공동 올림픽 개최를 성사시키는 데 남북 불자의 모든 역량 결집, ②남북 불자간의 자주적인 교류, ③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남북 불자 공동 기원 법회를 ‘조선 불교도 연맹’과 ‘불교 본부’가 주최가 되어 8월 15일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보현사와 조계사에서 각각 법회를 열 것 등을 제안했다. 불교계의 제의는 학생 회담 제의에 이은 두번째 것으로서, 14일 불교본부 대표가 대한적십자사를 방문, 정식으로 이 서한을 북한측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이날 불교본부는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염원하는 애국불교도 선언’을 발표하고, ●제 24회 올림픽의 남북공동 개최 ●자주적 교류와 통일 운동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철폐 ●통일 논의의 보장과 각계 각층의 자주적인 교류 보장 ●공동 올림픽성사를 방해하는 일체의 긴장조성 행위 중단 ●모든 애국 민주 단체의 공동 올림픽 범국민 추진 본부 결성과 천만인 서명 운동 동참 촉구 등을 주장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불교계의 최근 통일 운동은 매우 속도가 빠른 것이며, 가히 선도적이라 해도 지나친 평가는 아니다. 불교본부의 결성이 지난 5월 19일에 있었으니, 학생 단체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조직을 결성함으로써 투쟁의 주체를 꾸린 것이다. 그리고 이번 불교 본부에는 대한불청 서울 지구, 서울불교 청년회, 조계사 청년회, 대한 밀교 청년회 등 청년대중 단체가 대거 동참한 것이 큰 특색이다. 이것은 불교운동도 서서히 청년 대중이 운동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 보인다.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불교 본부는 창립 선언문을 통해 “우리 애국 불자들은 민족 종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앞세워 민족 통일의 그날을 앞당기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을 결의하며 이를 위해 ‘민족화합공동올림픽추진 불교 본부’를 결성하는 바”라고 창립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보다 앞서 5월 13일 ‘불교본부준비위’는 ‘제 24차 국제 올림픽에 대한 애국 불교도의 입장’이라는 제하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으며, 불교 본부는 가입되어 있지
는 않았지만 대숭 불교 승가회도 불탄일을 맞아 ‘조국 통일을 위한 대승보살의 다짐과 선언’이라는 제하의 성명을 통해 불교 본부와 맥락을 같이하는 태도를 천명했다. 또 정토 구현 전국 승가회는 일백이십삼명의 스님 연명으로 ‘민족 화합 공동 올림픽개최에 관한 애국 승가의 입장’을 발표했다.

민족 종교로서 자리 찾으려는 불교
불교계의 통일 운동은 그동안 재야 운동에 끌려 가던 불교 운동의 위치가 이제는 주도하는 위치로 전환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번 통일 운동에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존 ‘민중 불교 운동권의 일부(?)’가 매우 확산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지난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불교공동위원회’가 거의 와해되어 모두 개별 행동을 하던 중에 투쟁을 통해 새롭게 방법을 모색하여 결집된 불교 본부는 높이 평가받을 만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불교계가 튼튼한 대중적 토대가 미약한 실정이며 영향력과 파급력이 다른 종교에 비해 매우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실정에서도 열개 단체가 모여 조직을 결성하고 통일 운동에 모범을 보인 것은, 민족 종교로서의 자부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족 통일 운동만큼은 뒤질 수 없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 전체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은 지난 6월 16일 종무 회의를 통해 ‘통일문제특별위원회’ 또는 ‘불교통일연구원’을 종단 안의 상설 기구로 운영하기로 기본 방침을 정했다는 소식이다. 이보다 앞선 6월 15일자(352호) 불교 신문은 사설을 통해 “통일 논의의 시각은 다양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 통일 정책 실현의 창구는 정부 채널 하나여야 한다”고 현정부의 입장에 동조하고 “민중불교를 표방하는 일부 단체들에 의해 제시될 수 있는 통일 논의가 불교를 대표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종단의 통일에 대한 태도가 불교 본부를 비롯한 재야 불교와 다름을 시사했다.
친정부적 성향의 종단으로서는 이러한 태도가 당연한 것이리라 싶으니, 시대적 조류에 조용하고 교계 움직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앞으로 불교계의 통일 운동은 학생, 사회 단체, 정당 등과 통일 운동 연대 기구 발족을 모색하고 8.15 남북 불자공동 기원 법회에 촛점을 맞추면서 통일학교(6월 28일부터 7월 8일까지) 개설, 청년단체들 간의 통일 기원 탑돌이, 북한 불교 실태 조사 연구발표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1947년 불교 혁신 동맹 등 일곱개 단체가 모여 결성된 ‘불교혁신총연맹’ 등이 남북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불교계가 이러한 일을 계기로 어떠한 결실을 맺을 것인지 불교인의 기대는 매우 크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