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공학의 근본 사상은 스피드
현대인들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있는 대안을 제시한 유전자 공학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갖고서 환영하였다. 그러나 과연 유전자 공학이 인류에게 희망찬 미
래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이야 한다.
유전자 공학을 뒷받침하는 사상은 스피드이다. 새로운 시대에 경제 성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생물을 자연의 템포보다 매우 빠르게 성장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유전자 공학에 의하여 우리들은 생물자원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좀더 스피드하게 산업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생물의 성장 능률을 최대로 하고 단기간에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장래의 생태계 그 자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보통 쥐에서 성장 호르몬 유전자를 추출하여, 보통 쥐보다 작은 실험용 생쥐의 태아에 주입시켰다. 보통 쥐의 호르몬 유전자를 지니게 된 생쥐는 곧 보통 쥐의 두 배만한 크기로 태어났다. 더구나 보통 쥐의 유전자를 갖게된 이 큰 생쥐의 형질은 그 뒤에도 생식세포에 의하여 자손에게 계승되었던 것이다.
이 실험결과에 의하여 하나의 종 (種)에서 다른 종으로 유전형질을 전이 (轉移)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실험 결과에 의해 유전자 공학은 코끼리만한 소나, 불과 이삼년 만에 완전하게 성장하는 나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미 일부 농업 분야나 하등 동물의 경우에는 유전자조작 실험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슈퍼 콘(SuperCorn 초대형 옥수수)을 유전자 조작으로 개발하여 대풍작을 올린 경험이 있다. 이때 인류는 유전자 공학으로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성급히 설레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슈퍼 콘은 새로운 질병이 유행하자 그에 대한 적응력이 전혀 없어서 이 년도 채 지나기 전에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예에 비추어 보아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인류가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서 비롯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단기간에 성장하며 고기의 질과 영양이 높은 소를 유전자 조작으로 대량 번식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현대의 유전자 공학 수준으로 보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소를 유전 공학에 의해 새로운 유전형질을 갖게 하여 대량으로 번식했을 때, 만약 특수한 질병이 돌게 되면 그 소는 전멸해 버릴 것이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유전형질을 만들 때 이미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나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예상하여 조작한다고 하지만, 아직 인간의 능력은 자연 생태계의 수없는 변화에 일일이 대응할 수 있을 만큼 크지 못하다.
이것은 암이라는 질병의 정복을 눈앞에 둔 현대의 의학문명이 새로 나타난 AIDS라는 질병에 속수무책인 것을 보아도 알수가 있다.
따라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유전자 공학은, 각각의 종이 특유하게 갖고 있는 유전자 집합체에 손을 대어 종의 차이를 무시하고 유전자 구조를 변경시킴으로써, 지구 생태계에 커다란 위협을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 경계의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에는 불성(佛性)이 있다
유전자 공학의 이러한 위협적 측면은, 모든 생명에는 불성이 있다는 진리를 외면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모든 생명에 불성이 있다는 것은, 아무리 하찮은 생명이라도 그것이 생명으로서 존중되어야 하고 스스로 존엄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모든 종(種)에는 살아갈 권리,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미래는 대의명분만을 앞세워 존엄한 생명을 지닌 유전자 집합체에 다른 유전물질을 혼합시키는 것은, 그종의 자율성을 침범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그 종이 멸종되어 결국 생태계의 파멸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독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과 미묘한 균형 관계를 가지고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유전형질의 구조 변경으로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고, 그럼으로써 이미 균형을 가지고 존재하는 기존의 종이라고 하는 벽을 전면적으로 붕괴시키게 되면, 생태계는 파멸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경의 오염 문제는 그 원인이 되는 폐수, 배기가스, 오염물 동을 정화함으로써 어느 정도 회복시킬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 공학에 의해 새로운 형질을 갖게 된 생물체가 오염되었을 경우에는 그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공상과학 소설에서 나오듯이 방사능의 유출로 새로운 형질을 갖게 된 곤충들이 인류를 공격하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으며, 이때에는 곤충을 모아 고립된 지역으로 보내지 않는 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유전 공학은 결국 에너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러나 이때 생긴 에너지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주에 있는 물질과 에너지의 총화는 일정하며, 이러한 물질과 에너지는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변화한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에 지배받는 에너지이다.
따라서 유전 공학도 엔트로피 법칙과 생태계의 법칙을 무시하면 반드시 파멸적인 결과가 찾아올 것이다. 사용 가능한 자원 기반의 붕괴, 방대한 생물 공해의 퇴적, 종(種)의 유전자 집합체의 오염, 지구의 섬세한 생태계의 파괴, 그리고 유전자의 다양성이 격감하고 있는 것 등, 모든 것이 파국의 도래를 시사해 주고 있다.
불생불멸과 엔트로피
반야심경에 보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느는 것도 아니고 주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또 화엄경에는 ‘일체 만법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즉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세상 만물은 그 전체가 나고 죽음을 거듭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체 만법이 불생불멸이라고 함은 단순한 언어의 장난이나 관념적인 선문답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엔트로피의 법칙에서도 증명되었듯이, 현대과학은 자연계가 불생불멸의 원칙 위에 구성되어 있음을 밝혔다. 에너지의 보존 법칙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세간의 나고 없어짐은 피상적인 모습이고, 참모습은 불생불멸이라는 불교의 진리에 있음이 현대과학에 의해 증명된 셈이다.
그런데 현대문명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일정한 총량을 가진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는 방향으로만 소비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탐•진•치 삼독에 의해 생사의 번뇌에서 헤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생사의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삼독을 제거해야한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현대문명에 있어서 인류는 지혜로움을 발휘하여,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 전체에 이익을 가져오게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 자기의 미래의 안정을 희생하는 결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현대세계의 모습, 즉 불교에서 말하는 예토의 세계는 위기를 우리 인류에게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그것을 위기라고 하지 않고 진보라고 표현해 왔다. 따라서 오늘날 인류는 진보라는 이름하에 개발된 핵무기 등의 위협에 스스로 족쇄를 채워버린 꼴이 되었다.
이러한 위기가 대안으로 제시된 유전공학과 같은 첨단과학으로 해결될 수 없음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다.그러므로 인류의 미래는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라’는 붓다 최후의 유언대로 오로지 우리 자신의 균형감각에 의존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참고 자료
「엔트로피 ( I ), ( II)」 제래미리프킨 저 김용정 역 원음사「자기를 바로 봅시다」 성철스님 법어집 해인사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