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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거사와 공굉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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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엮은 삼국유사 - 김호성 1988년 07월 77호
이번 호에서는 삼국유사 권 5, 피은(避隱)편 ‘신충봉관 (信忠掛冠)’ 조(條)를 소개한다

“직장(直長), 그대는 평소 불법(佛法)에 대한 믿음이 돈독하다고 들었소. 그래 주로 어떠한 경을 읽고 있소?”
“황공하옵니다. 유마경(維摩經)을 즐겨 읽사옵니다.”
“유마경이라…”
“유마는 처자식을 거느려 속세에 살면서도 출가한 제자들보다도 오히려 그도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오, 그렇지. 진흥왕 대의 솔거 (率居)는 유마거사를 그린 적도 있었지. 나도 보았소만 참으로 신화(神畵)였지.”
“예. 저도 알고 있읍니다. 너무나 뛰어난 그림이지요. 나중에 제가 절을 지어 대왕을 위해 기도를 올릴 때 유마상을 모시고자 하나이다. 허락하옵소서.”
“그거야 좋소. 그런데 유마거사를 사모하는 그대가 그러면 거사의 생활을 버리고 출가라도 하겠다는 거요?”
“그러히옵니다. 나이 오십에 이르면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자 하는 것이 명소의 소원이었사옵니다. 중생이 아프기에 보살 또한 아파하면서 그 고뇌를 대신하고자하는 유마거사의 삶이 바람직하겠사오나 아직 제 근기가 뛰어나지 못하와 출가하고자 하나이다. 하오나 유마의 ‘둘이 아닌 진리’ 를 그대로 실천한다면 재가. 출가가 무슨 다름이 있겠나이까?”
“그대의 뜻은 알겠으나 인연이 있을 때까지는 짐을 잘 보필해 주오.”
경덕왕(景德王)과 직장 (直長) 벼슬을 지내던 이 순(李純) 사이의 대화이다.

2

유마거사를 사모하던 재가 신자 이 순이 어느덧 지명(知命)의 나이가 된다.
“여보게, 정녕 떠나겠는가. 더 생각해 보게나.”
“가겠네. 나는 유마거사도 아니고…이제 떠날 때가 된 걸세.”
“대체 이유가 무엇인가. 또 명분은 무엇인가. 자네를 알 수가 없네. 지금의 임금 또한 자네를 퍽 총애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허나 왕의 총애는 사사로운 감정일 뿐, 그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긴 대나마(大奈麻)의 십관등에 육두품 (六頭品)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걸세. 우리 같은 사람이야 초야에 묻혀 학문이나 닦고 인재를 키우며 때론 비판도 하네마는, 그래도 참여를 통한 개혁 또한 중요한 일 아니겠나. 그런 일이라면 자네보다 더한 적임자가 없을 것이네.”
“다 옳으이. 하지만 벌써 내 나이 쉰이네. 참여 속의 개혁이야말로 그에 맞는 자리가 주어져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지. 직장(直長)이란 벼슬이 임금을 가까이서 모실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의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왕을 둘러싼 무리와 귀족들이 이전투구하는 틈바구니에서. 이런 무력함은 차라리 치욕만을 더할 뿐이네. 치욕스런 참여는 나라와 백성에게 더욱 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자네를 이해하겠네. 어디에 처해있든지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염(念)을 버리지 말게. 그래 어디로 갈 작정인가.
“남악(南岳지리산)에 조연소사(槽淵小寺)라는 작은 절이 있다네. 연전에 가 본적이 있는데, 거기 가서 살 생각이네.”
경덕왕 칠년(748년) 의 일로 절 이름을 단속사(斷俗寺)라고 고쳤다.

3

“이 순, 스님 계시오?”
“뉘시온지요? 저희 큰스님을 찾으시는지요?”
“글쎄 세속 이름이 이 순인데 지금 법명이 … 나와는 죽마고우였는데.”
“아, 예 그러하옵니까. 큰스님 함자는 공(孔)자, 굉(宏)자이옵니다. 공굉장로라고 하옵지요.”
“공굉장로라, 그래 안내를 좀 해 주게”

이 순 거사가 출가한 지 십오 년이 지난 어느날 지리산 단속사를 찾아온 한 친구가 있었던 것이니.
“아니, 이게 뉘시오? 참 오랜만이오.”
“그래 공굉장로께서는 유마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을 터득하였소?”
“유마의 불이법문은 침묵이었소만 그대의 불이법문은 여하(如何)하오?”
“대답을 피하시기는. 나의 불이법문이야 물론 침묵 아닌 언설(言說)일 수밖에요. 그것이 오늘날 서라벌 육두품의 숙명인 것을.”
“충담스님께서 백성을 평안케 하는 도리를 임금께 일러주었다고 들었소. 헌데, 아직도 임금은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며 백성 또한 백성답지 못하단 말이오?”
“임금이 태양 같은 존재인 이상, 모든 빛과 그늘의 근본은 임금에게 있는 것아니겠소? 충담스님의 말씀도 한쪽 귀로 들어가 다른쪽 귀로 흘러갔는가 보오. 날이 갈수록 어둠의 그늘이 짙어요.”
“안타까운 일이군요. 태양을 가리는 검은 구름도 문제지요. 아마도 임금을 싸고도는 간신모리배들이 나랏일을 그르치는가 보오.”
“도무지 충직한 신하의 간언이라곤 들으려고도 않는다오. 인연에도 없는 아들을 굳이 낳겠다는 끈덕진 집착하며… 아뭏든 빛은 태양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요.”
“음…”
“또 요즈음 꼴들이 어떤지 아오? 비록 작은 나라이나 우리는 당나라 대군을 쫓아내고 통일대업을 완수하지 않았소. 우리는 당당히 우리여야 하고 우리다움을 흐트리지 않아야 하오. 헌데, 어찌된 셈인지 당나라를 닮아가지 못해서, 당나라에 빌붙지 못해서 안달이 났단 말이오. 당나라 없이는 못 사는 줄로만 알아요. 이런데도 스님은 침묵만이 도라고 생각하시오?”
(생각에 잠긴 공굉장로)
“흠. 말이 화근은 화근이오. 지난 병신(756년)년에는 김 사인(金思仁) 같은 현명한 상대등(上大等)이 상소하여 정치의 잘잘못을 따지다 쫓겨났으니 말이오.”
“그런 일이 있었소? 후임은 누구요?”
“전 왕(李成王) 때 집사부의 중시(中侍)를 지낸 신 충(信忠)이란 자이지요. 알다시피 왕의 측근에서 아첨이나 하고 지낸 인물 아니오.”
“두 임금의 총애를 연이어 받는 것만 보더라도 그가 백성보다는 임금을 더 생각하는 정치를 할 것으로 생각되는군.”
“이제 우련 작은 당나라가 될 거요. 서라벌 구주(九州)와 지방 군현(郡縣)의 이름을 모두 당나라 식으로 고치고, 중앙 관청의 이름까지 모두 그렇게 고쳤지요. 게다가 임금은 거의 날마다 풍악이나 잡히고 주색(酒色)에 빠져있으니, 어찌 나라 꼴이 되겠는가?”
“백성들이 이 아픔을 어찌 외면할 수있겠는가. 나라도 서라벌로 가서 임금께 한번 간해 보겠네.”
“고마우이. 참으로 고마우이. 실은 내가 여기에 온 것도 바로 그 까닭이오.”
마침내 공굉장로를 반가이 맞는 경덕왕
“큰스님이 되었으니 오늘은 짐을 위해서 좋은 법문을 들려 주시오.”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아프다’고 했읍니다. 오늘날 백성들이 날로 도탄에 빠져가고 있사오니 몇 말씀 여쭙겠읍니다. 듣건데, 옛날 걸(桀), 주(紂)가 주색에 빠져 음탕한 풍악을 그치지 않았다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정사가 쇠퇴하여 나라가 패멸하였다 합니다. 엎어진 바퀴가 앞에 있으니 뒷수레는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잘못을 고쳐 스스로 새로와지시어 나라의 수명을 길게 하옵소서.”
“음. 그대의 뜻인가. 하늘의 뜻인가. 백성의 뜻이던가.”
“아울러 세속의 관리 아닌 출세간의 승려이므로 감히 한 말씀 드리겠나이다. 아무 사심(私心) 없사오니 살피소서.”
“그게 무엇이오?”
“상대등 신 충 이하 인사를 새로이 하셔야 될 줄 생각합니다.”
“충직한 신하로 내 사랑하는 바 깊으나 민심이라니 할 수 없지. 내 그리하리라.”
4
“대왕이시여, 이번에 상대등에서 면직된 신 충이 이런 해괴한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불였사옵니다.”
무릇 잣(栢)이
‘너를 어찌 잊어’ 라고 말씀하신
달그림자가 옛 못에
모습을 바라오나
가을에 아니 이울(萎)어 떨어짐에
우러르던 낯이 계시온데
가(行)는 물결을 원망하듯
세상도 싫어지는구나
“아, 그래 다 안다. 옛날에 궁정의 잣나무 아래서 바둑을 둘 때 ‘뒷날 만약 그대를 잊는다면 잣나무 같음이 있으리라’ 고 언약한 일이 있었지. 하지만, 민심을 따르는 것이 왕의 도리이니 어찌할 수가 없질 않은가. 나중에 그를 위해 절이나 하나 지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