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불교계에서도 언론매체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여러 종류의 신문 잡지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선적 수행을 위주로 한 한국불교가 수행의 한 방편으로 내세우는 ‘불입문자(不立文字)’를 잘못 인식하여 언론과 잡지 등을 무조건 쓸데없는 망상과 희론으로 배격하는 풍토가 짙었다. 현대의 정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살펴볼 때 너무 늦은 감도 있지만, 이제라도 언론문화의 중요성을 자각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쇄매체를 통한 포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관계가 언어를 떠나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문화 가운데에서도 인쇄매체를 통한 활자만큼 인간을 역사적으로 사회화시키는 것은 없을 것이다. 큰스님들이 아무리 좋은 내용의 설법을 한다고 해도 활자화된 언어만큼 널리 오랜 세월 동안 전파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인간이 성취한 문화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가지만 들라고 하면 그것은 언어의 문자화일 것이다. 또 그 중에서도 신문은 언론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보시대인 오늘날에 있어서, 신문은 사회의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또한 현대사회에 있어서 신문과 잡지는 그 내용들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어져 있던 간에, 우리들의 거울인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계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잡지는 바로 한국 불교계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러 사찰과 신행단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각종 신문•회보•잡지류들은 그 단체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며, 전불교도인 나아가 전국민의 것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행된 불교 계통의 신문•잡지류들을 보면 누구를 위하여 발행하는지 그 발행 목적이 뚜렷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다시말해서 자기 고유의 색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펀집인과 기자들의 주관론적인 내용과 구태의연한 편집디자인, 내용 등 거의가 바슷비슷하다는 것이 독자들의 평이다. 일부 편집인과 필자들의 기호에 맞게 제작
한다면 그렇게 많은 예산과 인력을 낭비하면서까지 발행해야 할 필요성이 과연있는 것인가.
또한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한문투의 문장을 고집하는 데 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불일회보」나「해인지」를 비롯한 몇개의 출판물에서는 한글전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얼마전 범불교적 치원의 성격을 띠고 창간된 모신문마저도 종래의 불교계 출판물의 틀에서 별로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불교계에서 발행되고 있는 신문과 잡지류들이 아직까지 일반인이 쉽게 접하기에는 너무나 특수성에 치우쳐 있다고 한다. 언론매체가 본래 그 사회의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보다 널리 보급시키고자 하는 것에 목적을 둔것이라면, 이러한 점은 빨리 사정해야 될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과 진리를 전달하는 포교지라고 해서 어려운 단어나 화려한 수식어를 나열해야만 깨달음의 세계로 더빨리 이끄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면 그 가치가 과연 떨어지는 것일까. 딱딱하고 어려운 내용의 종교지를 구독하는 독자층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며, 신문 또한 기왕의 신문과 조금도 다를 바없는 새로운 신문이 창간되었다고해서 신문 독자층이 보다 널리 확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교의 색채를 잃지 않으면서 좀더 다양하게 변모하여, 불교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이 아니라 대사회적인 신문으로 과감히 방향을 돌려, 독자층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현대사회를 흔히 개성의 시대라고 한다. 또한 현대사회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이고 평이한 내용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고 한다.
신문•잡지도 자기의 개성을 짙게 표현할 수 있는 색이 있어야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것은 인쇄매체를 지속시킬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 될 것이다.
불교 언론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좀더 쉽고 알찬 내용으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해야 할 것이며, 사회와 정치인을 향하여 정견과 정어를 서슴치 않는 짙은 색을 지녀야 할 것이다.
불교계의 신문과 잡지에 종사하는 분들은 독자들의 소리없는 비평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역사의 심판대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