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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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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8년 07월 77호
바닷가 고아원은 겨울이 길었다.
아이들은 두툼한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그 긴 겨울을 났다. 바닷빛이 맑아지고 양지쪽에 앉아 있으면 어깨가 따뜻해지는 봄이 오도록 아이들의 겨울은 내처 떠나지 않는 것 같았다.
판순이는 고아원 꼬마들의 여자대장이었다. 같은 또래의 머슴애들도 판순이한테는 어깨가 숙어들었다.
서너 살씩 위로 언니 오빠들은 그런 판순이를 귀여워했기 때문에 판순이는 기가 살아서 더욱 우쭐대었다. 미국에서 보내왔다는 구호물자에서 좀 헐렁한 자켓저고리를 소매를 두번씩이나 걷어올려 입고 있었다. 자켓의 길이가 엉덩이 밑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저고리인지 외투인지 흡사 장타령을 부르는 각설이 아저씨 같았다.
“판순아, 소매를 잘라내고 옷자락도 걷어올려 꿰매줄까?”
점례가 판순이 옷을 보고 몇번 그렇게 권했다.
“괜찮어, 뭐 이런 거지같은 옷 줄이고 자른다고 모양이 나겠니?”
판순이는 아무렇지 않게 되는 대로 입고 뛰어다녔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종일 그 누렇게 빛바래인 두꺼운 어른용 자켓은 판순이의 깡마른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모과나무골에서 트럭에 실려 눈보라와 찬바람에 떨며 내려온 항구도시 부산에서 벌써 석 달이 지나고 있었다.
그 수많은 피난민들이 보퉁이를 둥에 지고 걸어서 내려온 길을 점득이네는 단지 일주일 만에 와버린 것이다. 미군들이 특별히 자기네 비행기 폭격에 죽어간 사람들의 자식들을 조금이나마 보살펴 준다는 것과 예배당 장 대성 목사님의 덕이 컸던 것이다.
거기다가 점득이는 눈을 다쳤다.
고아원 ‘천사의집’에 한꺼번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 세가지 이유가 가장 컸다. 마흔 살이 조금 넘은 윤 세원 원장님은 교회 장로님이기도 했으며 부인과 4남매 아이들이 있었다.
점득이는 고아원에 들어오고부터 점례 누나와 떨어져 갔다. 군인들의 막사처럼 함석으로 지은 마룻방은 구멍마다 찬바람이 그대로 불어들어왔다. 식구가 늘어나면 늘어나는만큼 빈터를 다져 막사 하나를 또 지었다.
마룻방엔 미국사람이 쓰는 침대요(매트리스)가 깔린 곳도 있고 그냥 마룻바닥에 담요 한장으로 지내기도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는 점득이말고 또 한 아이가 있었다. 창덕이었다.
판순이가 그 애 창덕이한테 물었다.
“너도 비행기 폭탄에 맞았니?”
“……”
창덕이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그렴, 왜 앞이 안 보이니?”
“오래 오래 아프고 나서 보이지 않았어.”
“언제?”
“다섯 살 때.”
“그럼, 아버지랑 어머니는?”
“버리고 갔어. 길바닥에.”
창덕이는 더 이상 가르쳐 주지 않았다.
지금 열두 살, 점득이보다 한 살이 적다. 그러나 몸집은 그보다 훨씬 작고 어렸다.
다만 한가지, 창덕이는 점득이보다 몸을 더 잘 움직였다. 방에서 문밖으로, 그리고 판자쪽으로 지어진 변소까지 혼자서 다녔다.
함께 모이는 식당에도 잘 찾아가고 매일 앉는 제 자리를 쪽집개처럼 찾아내어 앉았다.
점례는 점득이 손을 잡고 창덕이 곁에 앉혀 주면서 말했다.
“창덕아, 점득이하고 같이 앉게 해 줘, 이 애도 앞이 안보인단다.”
창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가지에서 떨어져 있는 언덕받이 빈터에는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바람부는 그 언덕에는 미국에서 실어 온 군수품 궤짝이 빈 채로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아이들은 낮동안 그 궤짝들에 박힌 못을 뽑고 판자쪽이나 각목을 차곡차곡 간추렸다. 간추려진 헌 판자쪽은 한 주일마다 장사꾼이 와서 트럭으로 사갔다.
대신 팔려간 만큼의 궤짝이 또다시 들어오고, 그래서 아이들은 한 주일 동안 내내 바빴다.
판순이는 남자아이들처럼 궤짝을 우지끈 부수기도 하고 노루발 장도리로 못을 뽑기도 했다. 뽑아 놓은 못은 작은 아이들이 땅바닥을 살피며 주워서 부대기에 담았다.
피난민들로 가득찬 도시에서 사람들은 구부러진 헌 못을 싼값으로 사갔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빈터가 있으면 어디에나 판자집을 지었다.
일요일엔 그동안 헤어져 지내 온 장 대성 목사님이 찾아와 아이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렸다. 아이들은 모두 백오십 명이 넘었다.
폐병으로 병원에 간 아이가 셋이었고 이북에서 온 천수는 간질을 앓았다. 게다가 천수는 잃어 버린 식구들을 잊지 못해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백오십 명의 아이들 모두가 전쟁으로 식구들을 잃었기 때문에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무서워하고 의섬이 많고 눈치를 자주 살폈다.

식당 안의 의자와 나무 식탁을 한쪽으로 멀어낸 마룻바닥에 줄지어 앉아 아이들은 찬송가를 불렀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네

장 목사님은 예배를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줄곧 울음섞인 목소리였다.
“하나님, 이 어린 양들을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시옵소서…”

목사님은 돌아가질 때 특별히 점득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이것 저것 물으셨다.
“점득아, 요샌 밥 잘먹고 아프지 않니?”
“아프지 않아요.”
“잠은 잘 자니?”
“예.”
“저어…”
목사님은 머뭇거리다가 물으셨다.
“…눈은 조금도 보이지 않니?”
“……”
점득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목사님은 아이들이 뜰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을 역시 손을 흔들어 대답하며 고아원 비탈길을 내려갔다.
“목사님, 안녕히 가셔요!”
마지막으로 판순이의 커다란 목소리가 바다 멀리까지 퍼져나가듯이 울리고 나면 아이들은 흩어져서 각기 제가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줄지어 변소에 가고 그것이 끝나는 대로 마당에 모여 윤 세원 원장님을 따라 체조를 했다.
체조가 끝나면 청소를 하고 수도가에 줄을 서서 세수를 했다.
“여러분들, 원수 공산도배가 일으킨 전쟁으로 여러분들같은 가엾은 천사들이 길거리에서 헤매고 있읍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고마운 유엔군 아저씨들 덕택에 이런 곳에 모여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잘 곳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급되는 식량이 많이 모자라서 여러분들에게 가벼운 일을 시키고 있는데, 좀더 열심히 해서 앞으로 여러분들이 공부할 수 있는 교실도 만들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공부한다는 말이 어쩐지 신기하게 들렸다. 윤세원 원장님의 아이들이 시내 학교로 가기 위해 아침마다 책가방을 들고 가는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그건 남의 나라 일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큰누나 미선이는 고둥학교 이학년, 바로 밑에 남동생 성길이는 고등학교 일학년, 그리고 미영이와 수길이는 중학교 일학년과 국민학교 오학년이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온 구호물자가 아닌 시장에서 사온 옷을 입고 있었다.
깨끗한 운동화에 양말도 갖춰 산고 얼굴빛도 좋았다.
부모님 밑에서 자라기 때문에 그처럼 행복할 수 있다는것은 마땅한 이치다. 그러나 점례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로 생각했다. 지난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도 역시 가난하고 어렵기만 했기 때문이다.
점례는 판순이한테 말했다.
“우리도 앞으로 공부하게 된다니 좋지?”
“싫어!”
판순이는 뜻밖에도 화를 냈다.
“왜 싫으니?”
“난 공부 안 해도 세상 다 알아.”
“어떻게 아니?”
“탄실이 언니도 배우지 못 해도 훌륭했잖니?”
“탄실이 언니는 혼자서 공부했단다. 그래서 주일학교에서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배워줬잖니?”
점례는 딱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나도 혼자서 공부할 테야.”
판순이는 어깨를 번갈아 추켜올렸다.
윤 원장님은 아이들이 일하는 곳을 먼 데서 지켜보고 있었다. 되도록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이 가까이 못 가도록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게으름 피우는 것도 용서하지 않았다.
남자 아이들은 커다란 상자의 굵은 못을 뽑는 힘든 일을 했다. 두세 사람씩 매달려 상자를 쓰러뜨리고 판자쪽이 다치지 않도록 뜯어내는 일은 힘겨운 노동이었다.
열일곱 살이라는 동진이는 어깨가 딱 벌어져 어른티가 났다. 동진이는 보기처럼 힘도 세고 생각하는 것이 어른처럼 지혜로웠다.
되도록이면 힘든 일을 앞장서서 했고 동생들을 아껴 주었다.
동진이는 앞 못 보는 창덕이와 점득이를 양지쪽 언덕에 데려다 앉혀 놓고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어떤 남자가 평생 소원이 힘센 장사가 되는 것이어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 백일기도를 했단다. ‘산신령님 제소원을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저는 아주 힘센 장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면서 밤낮으로 빌었대. 드디어 백일이 지나서 남자는 산을 내려오는데, 보니까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있거든. 남자는 그 바위덩이를 시험삼아 들어올리니 쌀가마니처럼 번쩍 높이 들려올라가더래. 남자는 산신령님이 자기 기도를 들어줬다고 얼씨구 춤을 추며 산을 내려와서 마을 사람을 불러 모았단다. ‘여러분들 나는 이제 장사가 되었읍니다. 저기 있는 고목나무를 한번 뽑아보이겠읍니다.’ 남자는 동네 어귀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힘껏 뽑아올렸지만 끄떡도 안하더래, 끄떡하기는 커녕 힘이 쑥 빠져서 헐레헐레 주저앉고 말았대.”
“왜 그리 된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창덕이가 물었다.
“그건 그 남자가 신령님께 기도할 때 소원을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했기 때문에 딱 한 번 밖에 힘을 못 쓴거야.”
“해해해 …”
“까르르르…”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주 어우러져 싸웠다. 특히 작은 아이들은 조그만 일 가지고도 꼬집고 때리고 했다.
이쪽에서 왕! 하고 울음을 터뜨리면 저쪽에서 또 울기 일쑤였다.
싸우는 아이들은 마당 가운데 벌을 세우기도 하고 힘든 일을 시키기도 했다.
점득이가 기만이와 싸운 것은 정말 슬픈 일이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점득이가 기만이를 때려서 다치게까지 했다.
아이들이 점득이를 놀려주었던 것이다.
그날도 창덕이와 같이 앉아서 흩어져 있는 못을 손으로 더듬으며 줍고 있었다. 거기다가 기만이가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석탄가루를 쏟아 놓은 것이다. 점득이는 그것도 모르고 손을 더듬으며 열심히 못을 주웠다.
창덕이와 점득이는 손과 얼굴과 입고 있는 옷이 온통 검정투성이가 되었다.
“와아! 점득이 깜둥이다.”
아이들이 큰소리로 웃었다.
“누가 저기다 석탄가루 흩어놓았니?”
“내가 그랬지롱!”
점례가 묻는 말에 얼른 대답한 건 기만이였다.
점득이는 모든 걸 얼른 깨닫자 어느새 주워들었는지 날카로운 돌맹이를 ‘내가 그랬지롱! ‘ 하고 말한 기만이쪽으로 홱 던졌다. 신기하게도 돌맹이는 정통으로 기만이의 이마를 맞힌 것이다.
기만이는 넘어지며 뚫어진 이마에서 피를 쏟았다.
“점득아!”
점례가 놀라 점득이 손을 잡았지만 때는 늦었다. 기만이는 병원으로 업혀갔고 점득이는 벌로 그날 저녁끼니를 굶었다.
밥을 주었어도 점득이는 먹지 못했을 것이다.
점득이는 밤새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승호 형 생각이 나고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