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안의 의자와 나무 식탁을 한쪽으로 멀어낸 마룻바닥에 줄지어 앉아 아이들은 찬송가를 불렀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네
장 목사님은 예배를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줄곧 울음섞인 목소리였다.
“하나님, 이 어린 양들을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시옵소서…”
목사님은 돌아가질 때 특별히 점득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이것 저것 물으셨다.
“점득아, 요샌 밥 잘먹고 아프지 않니?”
“아프지 않아요.”
“잠은 잘 자니?”
“예.”
“저어…”
목사님은 머뭇거리다가 물으셨다.
“…눈은 조금도 보이지 않니?”
“……”
점득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목사님은 아이들이 뜰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을 역시 손을 흔들어 대답하며 고아원 비탈길을 내려갔다.
“목사님, 안녕히 가셔요!”
마지막으로 판순이의 커다란 목소리가 바다 멀리까지 퍼져나가듯이 울리고 나면 아이들은 흩어져서 각기 제가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줄지어 변소에 가고 그것이 끝나는 대로 마당에 모여 윤 세원 원장님을 따라 체조를 했다.
체조가 끝나면 청소를 하고 수도가에 줄을 서서 세수를 했다.
“여러분들, 원수 공산도배가 일으킨 전쟁으로 여러분들같은 가엾은 천사들이 길거리에서 헤매고 있읍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고마운 유엔군 아저씨들 덕택에 이런 곳에 모여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잘 곳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급되는 식량이 많이 모자라서 여러분들에게 가벼운 일을 시키고 있는데, 좀더 열심히 해서 앞으로 여러분들이 공부할 수 있는 교실도 만들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공부한다는 말이 어쩐지 신기하게 들렸다. 윤세원 원장님의 아이들이 시내 학교로 가기 위해 아침마다 책가방을 들고 가는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그건 남의 나라 일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큰누나 미선이는 고둥학교 이학년, 바로 밑에 남동생 성길이는 고등학교 일학년, 그리고 미영이와 수길이는 중학교 일학년과 국민학교 오학년이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온 구호물자가 아닌 시장에서 사온 옷을 입고 있었다.
깨끗한 운동화에 양말도 갖춰 산고 얼굴빛도 좋았다.
부모님 밑에서 자라기 때문에 그처럼 행복할 수 있다는것은 마땅한 이치다. 그러나 점례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로 생각했다. 지난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도 역시 가난하고 어렵기만 했기 때문이다.
점례는 판순이한테 말했다.
“우리도 앞으로 공부하게 된다니 좋지?”
“싫어!”
판순이는 뜻밖에도 화를 냈다.
“왜 싫으니?”
“난 공부 안 해도 세상 다 알아.”
“어떻게 아니?”
“탄실이 언니도 배우지 못 해도 훌륭했잖니?”
“탄실이 언니는 혼자서 공부했단다. 그래서 주일학교에서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배워줬잖니?”
점례는 딱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나도 혼자서 공부할 테야.”
판순이는 어깨를 번갈아 추켜올렸다.
윤 원장님은 아이들이 일하는 곳을 먼 데서 지켜보고 있었다. 되도록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이 가까이 못 가도록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게으름 피우는 것도 용서하지 않았다.
남자 아이들은 커다란 상자의 굵은 못을 뽑는 힘든 일을 했다. 두세 사람씩 매달려 상자를 쓰러뜨리고 판자쪽이 다치지 않도록 뜯어내는 일은 힘겨운 노동이었다.
열일곱 살이라는 동진이는 어깨가 딱 벌어져 어른티가 났다. 동진이는 보기처럼 힘도 세고 생각하는 것이 어른처럼 지혜로웠다.
되도록이면 힘든 일을 앞장서서 했고 동생들을 아껴 주었다.
동진이는 앞 못 보는 창덕이와 점득이를 양지쪽 언덕에 데려다 앉혀 놓고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어떤 남자가 평생 소원이 힘센 장사가 되는 것이어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 백일기도를 했단다. ‘산신령님 제소원을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저는 아주 힘센 장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면서 밤낮으로 빌었대. 드디어 백일이 지나서 남자는 산을 내려오는데, 보니까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있거든. 남자는 그 바위덩이를 시험삼아 들어올리니 쌀가마니처럼 번쩍 높이 들려올라가더래. 남자는 산신령님이 자기 기도를 들어줬다고 얼씨구 춤을 추며 산을 내려와서 마을 사람을 불러 모았단다. ‘여러분들 나는 이제 장사가 되었읍니다. 저기 있는 고목나무를 한번 뽑아보이겠읍니다.’ 남자는 동네 어귀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힘껏 뽑아올렸지만 끄떡도 안하더래, 끄떡하기는 커녕 힘이 쑥 빠져서 헐레헐레 주저앉고 말았대.”
“왜 그리 된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창덕이가 물었다.
“그건 그 남자가 신령님께 기도할 때 소원을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했기 때문에 딱 한 번 밖에 힘을 못 쓴거야.”
“해해해 …”
“까르르르…”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주 어우러져 싸웠다. 특히 작은 아이들은 조그만 일 가지고도 꼬집고 때리고 했다.
이쪽에서 왕! 하고 울음을 터뜨리면 저쪽에서 또 울기 일쑤였다.
싸우는 아이들은 마당 가운데 벌을 세우기도 하고 힘든 일을 시키기도 했다.
점득이가 기만이와 싸운 것은 정말 슬픈 일이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점득이가 기만이를 때려서 다치게까지 했다.
아이들이 점득이를 놀려주었던 것이다.
그날도 창덕이와 같이 앉아서 흩어져 있는 못을 손으로 더듬으며 줍고 있었다. 거기다가 기만이가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석탄가루를 쏟아 놓은 것이다. 점득이는 그것도 모르고 손을 더듬으며 열심히 못을 주웠다.
창덕이와 점득이는 손과 얼굴과 입고 있는 옷이 온통 검정투성이가 되었다.
“와아! 점득이 깜둥이다.”
아이들이 큰소리로 웃었다.
“누가 저기다 석탄가루 흩어놓았니?”
“내가 그랬지롱!”
점례가 묻는 말에 얼른 대답한 건 기만이였다.
점득이는 모든 걸 얼른 깨닫자 어느새 주워들었는지 날카로운 돌맹이를 ‘내가 그랬지롱! ‘ 하고 말한 기만이쪽으로 홱 던졌다. 신기하게도 돌맹이는 정통으로 기만이의 이마를 맞힌 것이다.
기만이는 넘어지며 뚫어진 이마에서 피를 쏟았다.
“점득아!”
점례가 놀라 점득이 손을 잡았지만 때는 늦었다. 기만이는 병원으로 업혀갔고 점득이는 벌로 그날 저녁끼니를 굶었다.
밥을 주었어도 점득이는 먹지 못했을 것이다.
점득이는 밤새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승호 형 생각이 나고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