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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부’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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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박용길 1988년 07월 77호
호랑나비와 개
우리 집 담장 밑에는 아직도 알량한 내 솜씨로 얼기설기 쌓아올린 개집이 남아 있다. 물론 그 집 주인은 이미 없기에 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함께 기르던 닭이랑 오리랑 해서 개값만 받고-개값만 계산해서, 그것도 두달 전의 강아지값으로 쳐서-’고마운’ 마음으로 이웃에 떠안겨 주었다. ‘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실로 먹이에만 급급해하는 가금류와의 이별은, 그런 대로 시원섭섭했지만, 영 멍청한것-각기 그 소원대로 영계, 삼계, 백숙이란 이름을 가진 세 마리 닭에게 그 먹이를 몽땅 털리는 것은 예사고, 이건 주인인지 손님인지도 못 알아보고 온몸으로 안겨들지를 않나, 치부를드러낸 채 발랑눔지를 않나, 참 ‘걱정스럽기’ 짝이 없던 도사 잡종(잡종 도사가 더 듣기 좋을지도 모른다) -이 과연 개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던 ‘몽몽’이와의 석별은, 그 씨대로 큼직한 덩지만큼이나 지랄같았다.
몽몽(夢夢) ! 개 이름 치고는 처음 듣는 사람을 좀 멍멍하게 만드는 그 이름 몽몽.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또 다시 꿈이로다”라고 읊는 옛노래 가사대로, 아니 호랑나비 꿈에서 깨어난 장자의 말대로, 나와 그개도 정말 그런 형국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붙인 이름 몽몽. 개랑 친하려면 개가 되려고, 짐짓 서툰 ‘개소리’로 부르는 그 이름 몽몽.
하지만 지금은 꿈 깬 뒤처럼 그저 텅 빈 저 집만 남아있다.

복날을 눈앞에 두고 웬 아슬아슬한-미각 중추가 발달된 이들에게나 수긍이 가는 말이겠지만-개 이야기냐고-그것도 자비문중의 유수한 지면을 통하여-의아해 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아가, 그것이 “상좌부의 이모저모”라는 이글의 주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적지않을 것이다. 나의 의도는, 사람이든 짐숭이든 또는 사회단체이든, 그 이름은 결코 무심하게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음미해 보고자 해서였다. 이름을 통해서 모든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미로 다가온다. 상좌부라는 이름을 가진, 현존하는 단 하나의 소승부파도 결코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져 내려온 것이 아니다. 그 명명(命名)의 배경은 곧 그 역사와 이념에로 직결된다

상좌야! 하고 부르신 뜻은
상좌부(上座部 ; 범어로는 Sthavira, 팔리어로는 Therava-da)는 이른바, 소승 십팔부파(小乘十八部派) 가운데의 한 부파이다. 그 취지는 대중부(大衆部 ; Mahasymshika)와의 대립 구조로부터 간단히 파악된다. (똑같이 상좌부로 표기되는 Sthavira와 Theravada는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다. 이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지난 호에서 ‘남방불교’라는 용어의 대안으로 제안한 바 있는 ‘상좌부 불교(Theravada Buddhism)’ 라는 용어는 나름대로 좀 생소한 감도 없지 않으나, 이는 소승 십팔부파의 ‘상좌부’에 대한 이 글을 통하여 거의 말끔히 해소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상좌(上座)’라는 말은 우리 귀에 많이 익어온 말이다.
조선시대는 실로 불교의 암혹기였다. 이러한 사실은, 물론, 중기 이후로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온 고려 불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일이겠지만, 개국 이래 가속적으로 불교의 목을 조여 오는, 이 태조의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은 설상가상으로 불교회생(佛敎回生)의 희망에 결정적인 쐐기 노릇을 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유자(儒者)들은 으례 산좋고 물좋은 절에 올라 주연을 곁들인 시회(詩會)를 즐기곤 하였다. 그들의 시퍼런 서슬에 주지승도 감히 입을 떼지 못하는 판국인데, 그밖의 승려들은 말해서 무엇하랴. 그들은 젊고 곱상한 승려들-대개 20세 미만의 사미승에서부터 20대 초반의 비구승들-을 보기만 하면, 마치 종처럼 이들을 부려먹었다. 당시 그들의 입에 붙은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좌야!’ 또는 ‘상좌놈’이었다. (오죽 못났으면 그렇게 당했겠느냐는 자조 섞인 비난도 물론 있겠지만, 치국책인 유학을 쫓는 무리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는 거의가 이와 같이 일관되었다.)
상좌(Sthavira)라는 말은 본디 장로(長老), 존숙(尊宿), 대덕(大德), 존자(尊者), 나한(羅漢), 수좌(首座)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물론 이들은 인격명사 가운데의 보통명사에 속하며, 대명사로도 쓰인다. 문자 그대로 상석(上度)이라는 추상명사 또는 보통명사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비니모경(毘尼母經) 6」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분류해 놓고 있다. 곧, 비구계를 받고 나서 일년에서 구년까지에 이른 사람은 하좌(下座), 십년에서 십구년까지 이른 사람은 중좌(中座), 이십년에서 사십구년까지 이른 사람은 상좌(上座), 그리고 오십년 이상 되거나 국왕 또는 장자로서 출가한 이는 기구장숙(耆舊長宿)이라 한다.
이와는 달리, 그냥 나이가 많은 이는 생년상좌(生年上座), 권력과 재산과 지위를 누리는 이는 세속상좌(世俗上座), 그리고 불법의 지혜로 해탈을 얻은 아라한은 법성상좌(法性上座)라고 하는 분류도 있다.
중국의 총림 같은 경우에는 연장자 가운데에서 승중(僧衆)을 감독하며 살림을 도맡아하는 이를 승방상좌(僧房上座), 선원(禪院)의 각 요사(寮舍)의 수화(首座) 되는 이는 별방상좌(別房上座), 그리고 각기 대중이 모인 지리에서 상석에 앉는 이는 주가상좌(住家上座)라고 하였다.
한국 불교계에서는 그와 또 다른 ‘상좌’가 존재하고 있다. 이른바 은장좌(恩土座) -이와 동류의 용어로 법상좌(法t座)가 있는데 이 둘의 명명(命名) 배경은 서로 다르다-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불교 교단의 가부장적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이 용어에서 ‘상좌’라는 말은, 마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처럼, 일체의 법랍과 지위와 능력을 뛰어넘어 가부장적인 위계를 수립하려는, 지극히 배타적인 사제(師第) 관계에 그 의미가 닿아 있는 말이다. 늙어 죽어서도 그는 누구누구의 상좌인 것이다. 스승보다 먼저 깨쳐도-이렇게 되면 스승이 제자의 법상좌로 들어갈 수도 있으련만-, 그보다 지위가 높아도, 상좌는 여전히 상좌인 것이다. (이는 동양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사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지금이야 그 형편이 옛날같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것은 도리(道理)에 대한 동양인들의 화적 같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일는지도 모른다. 나아가 그것은 대승불교권에서 생각해 온, 대승불교에 대한 소승불교의 통시적(通時的)인 위상(位相)일는지도 모른다.)

두 개의 상좌부
불교(佛敎)의 내용은, 사실, 석가모니 부처 당대에만 그 가르침의 순수성-석가모내라는 역사적인 한 인간의 총체적인 메시지라는 의미에서의-이 보전되며, 그 뒤로는, 엄밀히 말해서, 불교란 없다.
그 뒤의 불교란 모두 ‘불교’의 부연이며 주석(註粎척)일 뿐이다. ‘신의 종교’임을 표방하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출발 당시부터 ‘인간의 종교’임을 표방해 온 불교는 그래서 다른 어느 종교보다도 그 교주(敎主)의 카리스마적인 권위가 강하다. 따라서 석가모니 교주의 사후에 뒤따른 불교 교단의 동요는 필연적으로 더욱 크게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교주의 죽음을 보고 쾌재를 부르는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심지어는 교단의 실질적인 주도권을 노리는 이들까지도 생겨났다. 이는 결국 일부 승려들의 전통적인 계율에 대한 불만에서 빚어진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크고 작은 몇 차례의 대집회를 통하여 거듭 다진 지계(持戒)에의 서원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교단이 이리저리 분열된 것은 사뭇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인도불교 최초의 상좌부(Sthaviras) -뒤에 다시 출현한 상좌부(Theravada)와 구별지어 본상좌부(本上座部) 또는 성상좌부(聖上座部)라고도 한다-는 ‘계율집회’라고도 불리는 일차집회로부터 한 백삼십년쯤 뒤에 있었던 두 번째의 이차집회 뒤에야 비로소 출현하였다 당시 파딸리뿌뜨라(Pataliputra)에서 열렸던 이 집회를 통하여, 인도불교 역사에서 최초의 실질적인 교단 분열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로써 교단은 이윽고 상좌부(Sthaviras)와 대중부(大衆部 ; Ma-hasumshikas)로 양립되었다.

집회 개최의 동기는 첫번째 이차집회 때와 달리 좀 심각했다. 이른바 ‘대천(大天 ; Mahadeva)의 오사(五事)’로 불리는 다섯 조목을 들어 마하데바(Mahadeva)라는 실로 담이 큰 한 승려가 ‘아라한’을 비방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 ‘오사’란 다음과 같다.

I. 아라한도 본능적인 충동은 어쩔 수 없다. (특히 몽정 따위)
2. 아라한도 모르는 것은 모른다.
3. 아라한에게도 여천허 의심덩어리가 있다.
4. 아라한도 혼자서는 자신의 해탈 여부를 자각하지 못한다
5. 아라한도 수행생활의 고통을 탄식하며 깨달음에 이른다.

그것은 정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대담하고 의미심장한 ‘도전’이었다. 그것은, 또, 어쩔 수 있는 대세이기도 했다.
이윽고 집회 참가자 전원의 표결을 통하여 승리를 거둔 마하데바의 다수파는 서둘러 ‘위대한’ 승리에 걸맞는 자신들의 이름을 명명하였다. 대중부(大衆部)가 막 탄생하는, 실로 역사적인 순간인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중’은, 대중이라는 말에 대해 좀더 포괄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오늘날의 사회학적 시각과는 좀 다른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오직 자신들의 주장에 동의를 표한 이들이 다수였다는 사실에서 그저 무심히-하기야 진짜 큰일(一大事)이 어디 사람 머리 속에서 통째로 나온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대중부야말로 대승불교에로 그 눈이 막 트인 ‘첫씨앗’이었던 것이다-내건 간판이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것은 자신들의 비정통성을 다소 희석시키기 위해 교단내외에 은근한 회유의 기류를 조성하여 더 많은 자파의 지지세력을 끌어모으려는, 중지(衆智)의 결정체였는지도 모른다.)
소수파의 처지는 자연히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계율 적용에 얼마간 융통성을 가진 대중부의 대두는 실로 위협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분열 이전의 교단에서 각기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이 노장들이었던 소수파의 긍지는 오로지 계율의 준수에만 있을 따름이었다. 이들은 대중부에 맞서 정법(正法 ; Dharma)을 고수하기로 선언하고, 자신들을 상좌부(Sthaviras)라고 명명하였다. 대중부보다 상석에 자리하는 정법의 친위대요, 경륜과 지혜에서 대중부의 애숭이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명실상부한 장로(長老)들의 모임이라는 뜻에서 그들은 기꺼이 부파 이름을 그렇게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 뒤, 기원전 250년 무렵에 또 다른 불교집회가 있기까지, 그것은 다시 독자부(讀子部),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그리고 설가부(說假部)로 분열된다. 다시 일백여년이 지나는 동안 위의 설가부로부터 다시, 화지부(化地部)와 함께, 마침내 오늘날의 상좌부(Theravada)가 탄생하게 된다.

디음 호에는 “상좌부 가르침”이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