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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만 원짜리 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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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현진 1999년 04월 206호
나는 껌을 무척 좋아한다. 그것도 출가한 수행자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게 와그작 와그작 소리 내어 씹기를 좋아한다. 껌을 씹다가 어른 스님께 혼나기도 하였고. 엉겁결에 삼킨 껌만 셈해도 한 통은 족히 넘을 정도다. 특히 자동차를 몰 때는 줄담배 피우듯 껌을 씹어대는 버릇이 있는데, 이 껌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일이 있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여름 안거를 보내고 찾아온 도반이 짐을 두고 와서 그 곳을 하룻길로 다녀오던 때 일이다.
상원사에서 볼 일을 마치고 우리는 스님들이 잠드는 시각인 삼경 무렵에 산문을 나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빔이었다. 무리한 일정 탓인지 길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졸음이 스멀스멀 몰려왔다.그 때 껌을 사고는 했었는데 마침 다 떨어지고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가게를 찾아서 바로 껌을 사고는 했는데, 그 날은 어쩐 일인지 가게를 자꾸 지나치고 있었다. 비가 와서 자동차에서 내리기도 싫었고, 국도변이라 그런지 썩 마음에 드는 가게도 없던 탓이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졸려서 도저히 더 이상 운전을 못할 것 같았다.
다음에 가게가 보이면 무조건 껌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껌을 씹으면 잠을 어느 정도 다스릴 것 같아서 였다.
그 때부터 가게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뒤에야 가게가 눈에 들어왔는데 길 양쪽에 두 곳이 미주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쪽 가게 앞에 차를 세우는 순간, 문을 닫으려고 불을 꺼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반대쪽으로 차를 회전하여 다른 가게 앞에 멈춰 섰는데, 그 시간의 절묘함이라니,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가게도 불을 끄고 문을 내리는 게 아닌가. 장고 끝에 악수 둔 꼴이었다.
괜시리 성질이 나서 반대 차선으로 핸들을 급하게 돌린 것이 실수였다. 아차 하는 순간에 마주 오던 트럭을 보지 못해 충돌 사고가 일어났고, 경찰까지 출동하였다. 인명 피해는 없어 다행이었지만, 사고의 원인은 참으로 사소하고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날, 나는 견인차 안에서 크게 웃고 말았는데 바로 도반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사고를 수습하고 속상한 기분으로 견인차에 실려 가고 있을 때, 도반이 내 앞에 뭔가를 불쑥 내밀면서 말했다.
“스님! 껌 한 통 샀습니다. 하나 씹어 보세요.”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들짝 웃고 말았다. 경황이 없는 그 순간에도 껌을 살수 있는 도반의 여유가 부럽기도 했지만, 껌 사는 일을 끝까지 잊지 않은 도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 우리는 참으로 값비싼 껌 한 통을 씹은 셈이었다. 사고 수습 비용으로 삼백만 원쯤 나갔으니까 껌 한 통이 비싸도 너무 비샀다.
그 날 견인차에서 씹은 껌 맛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그 뒤 도반은 껌 한 상자를 우편으로 보내 왔다.
껌을 씹을 때마다 그 도반이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