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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의식의 본질과 그 역사적 전개는 오늘날 새롭게 조명되고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불교사의 올바른 서술뿐만 아니라 오늘날 불교와 대중의 결합에도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불교계의 관심은 주로 교리사나 종단사에 치우침으로써, 불교의 총체적인 면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편향성을 보여 주고 있다.
흔히 창시자, 교리, 교단의 세 요소가 갖추어져 있으면 종교로 인정되고 있으나, 이는 종교를 종교 내적으로만 바라보는 단견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는 그 역사적, 사회적 측면을 무시하거나 배제하고는 결코 옳게 서술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치 권력과의 관계’와 ‘민중의 신앙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첫째로 종교와 정치 권력과의 관계를 규명함으로써 창시 이후로 변혁적 기풍을 상실하고 제도화된 종교, 특히 종단이 어떻게 존속될 수 있었는지를 밝힐 수 있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중세 봉건시대에 있어 지배 집단과의 밀착 속에서 물적 토대를 확보하며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한 중세 종교 특히 종단의 반민중성을 규명해내는 일이며, 동시에 오늘날의 종교와 종단에 대해서도 면밀하고 냉철하게 따지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이는 이미 중세기의 종교사 연구에서 상당 정도 규명되어 있다.
둘째로 민중의 신앙 형태에 대한 분석은 종교의 진정한 사회적 영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교리가 아무리 뛰어나고 세련된 종교라도 민중이 지닌 현실적인 관심사와 만나지 못하면, 단지 고립적 관념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한 분석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분석의 틀은 한국 불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도에서 불교가 민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며 그 신앙의 형태가 어떠한지에 대하여 정밀하게 연구한 성과는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그저 단순히 기복불교라고 매도하거나, 아니면 대승불교 이래의 다양한 의타적 불보살 신앙을 경전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분석은, 실제 사회의 주요 재화를 모두 생산해내면서도 그 온당한 노동의 몫을 취하지 못한 채 착취와 굴종의 삶을 이어왔으며 그러면서도 노동 주체로서의 긍지와 생산노동자로서의 공동체 의식 그리고 계급 의식을 다져온 민중의 역동성과 활력과 전투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분석이다.
물론 불교 내적 자료에는 민중의 불교 수용과 실천을 민중의 언어로 기술한 것이 거의 전무한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리면, 광활한 민중 언어의 바다속에 녹아 있는 불교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전설과 민담을 포함한 각종 설화에서, 속담에서, 탈춤의 대사에서, 판소리에서, 그리고 민요에서 너무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교리와 선수행과 종단에 얽매여서 무시하고 평가절하해 왔던 ‘불교 의식’에서도 민중의 불교관과 불교 수용 형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불교가 대중과 결합되기 위하여 기나긴 세월 동안 갈고 닦아온 불교 내적인 노력의 결정물이며 민중의 한과 소망을 받아내온 탁월한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교리와 선수행만을 중시하는 스님들은 이 불교 의식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종종의 계율에 의거해 이를 금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만해스님도 재공양의 번잡성과 민중오도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며 자기 수행을 위주로 하는 의례의 간소화를 역설했다. 그러나 종교는 관념체계(legomenon)로만 존재할 수 없으며, 행위 체계(drome-non)와의 결합이 없을 때는 대중과 만나는 중요한 통로를 잃게 된다. 만해스님의 불교의례 비판은 마땅히 정권이나 국가 권력과의 결탁하에 민중을 우민화하는 국가 의례로 그화살이 돌려져야 한다. 그럴 경우에는 일제하에 있었던 ‘천황폐하천추만세’를 위한 영산법회나 오늘날의 ‘나라와 국가 원수를 위한 기원법회’ 등이 그 대표적인 표적이 될 것이다.
불교 의식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와 변호는 물론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지배 집단의 영속과 안녕을 비는 국가 의례는 차치하더라도 한국 불교는 그 장례 불교적 특성과 내세주의적 신앙이 두드러지며, 이는 만해스님이 갈파했듯이 민중을 오도하는 기능을 해왔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이는 지배 권력 내지 종교 엘리트들의 시각이며, 민중적 신앙 실천의 건강성을 무시한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 주변의 대사찰에서 치루어진 거대한 불교 의식만이 불교 의식의 전부는 아니다. 앞에서 얘기한 인왕산 기슭 자그마한 사찰에서의 진산식도 매우 중요한 불교 의식이다. 오히려 더욱 민중과 탁월하게 결합된 불교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1985년의 그 진산식은 지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민중 불교의 한 편린이었으나, 한 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그것은 반도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마을 뒷산 절마당에서, 마을을 굽이도는 강가에서 그것은 야외 법회의 형태로 진행되던 일상사였던 것이다. 또한 그 절들은 대개 봉건적 질곡을 부수기 위해 변혁을 꿈꾸는 자들의 은신처였으며, 사당패 •탈춤패 •마을풍물패 들이 즐겨 연회를 하거나 머물던 마당이며 터전이었던 것이다.
불교 의식은 그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비난 그리고 비민중적 종교 엘리트의 시각을 넘어 다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며, 오늘날의 대중과 결합하기 위한 포교 전선에서 뜨겁게 부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