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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경(淸淨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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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해설 - 무관 1988년 07월 77호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흔히 삶이란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창조에는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행복이 있다고 한다. 영국의 수상 디즈레일리는 “인간은 창조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했다. 우리는 창조력이 뛰어난 사람을 천재라고, 위인이라고 하거나 또는 거장(巨匠), 개척자라고 하기도 한다. 창조의 행동에 의하여 우리의 생활은 향상하고 사회는 발전하며 문명은 진보한다. 그러am로 창조는 발전과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노력과 인내가 따라야 한다. 또한 고뇌와 눈물과 땀과 피를 쏟아야만이 능력이 개발되고 정신이 확립되는 것이다.
삶이란 먹고 마시고 놀고 춤추는 향락의 놀이터가 아니다. 삶은 가치있는 일을 성공시키며 보람과 업적을 쌓는 장소이다. 우리는 저마다 이 일터에서 자기의 생존 가치를 최고로 표현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생의 진정한 만족과 깊은 행복은 새사람이 되겠다는 자각과 결의가 뒷받침 되어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밭을 매일 새롭게 갈아 나가는 것은 창조적인 삶 가운데 가장 의의있는 일이다. 아무리 보람된 창조의 것이라도 옳은 정신에 의해 바로 쓰이지 않을 때 인류는 파멸의 길로 접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은 바르고 행하는 것은 옳은 것을 부지런히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 사람은 높은 산 봉우리에 올라가서 영봉들이 즐비한 웅장함을 보고 그 숭고한 광경에 자신의 존재를 잊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망각의 상태는 진정한 즐거움이 되지 못한다.

부처님은 이 법 가운데서 몸소 스스로 증명을 얻었다. 이른바 사념처(四念處)•사신통•사의단(四意斷)•사전(四輝)•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의(七覺意)•현성 팔도(八道)가 그것이다. 너희들은 다 함께 화합하여 서로 다툼질하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동일한 물과 젖이다. 여래의정법에 있어서 마땅히 자기 동불로 유쾌히 안락을 얻어야하고 안력을 얻어 내쳐야 한다.

삶에는 여러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하나뿐인 존귀하고 존엄한 생명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진지한 것이고 산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이므로 고귀한 것이다.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엄숙한 도전이다. 그러므로 인생관과 가치관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어지고 만다”고 시인 괴테는 말했다. “마지막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 이것은 대문호 섹스피어의 말이다. “처음도 선하게 중간도 선하게 마지막도 선하게”, 이 말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이다. 세속에서는 처음과 마지막의 중요성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처음도 중요하고 마지막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게으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 사람이 태어난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한다. 그러나 그 시작부터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이고 업력의 소산이다. 이것이 잘못된 줄 안다면 중간부터라도 고칠 것이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으면 풀어서 다시 맞추어 끼워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야만 자신감과 보람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정신과 어떤 태도로 인생을 바로 보며 바로 살고,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둘 것인가? 우리는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누구나 보람있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아무 보람 없이 보낸 하루처럼 의미 없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내 생활의 의미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선택하여 결정한 일에 대해서 항상 알찬 보람을 가질 일이다. 그러한 정신과 태도로 일하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 가짐을 갖는 것이야말로 바로 행복의 핵심을 사는 길이다. 이러한 정신을 부처님은 이렇게 표현하셨다.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고오타마는 꾸짖는가? 하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라.
오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서 사람의 탐착하는 바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눈은 빛을 본다.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혀는 맛을 알고 몸은 촉감을 안다. 이 다섯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서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여러분이여, 오욕의 인연은 즐거움을 낸다. 이것이 여래 •지진 • 등정각의 꾸짓는 것이다.

사람은 몸에 다섯의 감각 기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감각 기관을 오근이라 하며 여기에 생각하는 것을 합하여 육근이라 부른다. 이러한 감각 기관이 각기 대상인 육경을 가지고 식별하는 육식을 형성시켜 가며 삶의 현장이라 판단한다. 그러한 육근과 육경과 육식은 허망한 것으로서 즐길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일상 생활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다섯 가지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므로 자주성이 없다. 느끼고 선택하는 일이 외부의 영향으로 하는 것이므로 진실되지 못하다. 또한 결정한 일에 대해서 항상 보람과 희망을 갖지 못하는 것은 사명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주성을 확립하고. 진실의 밭을 일구어 사명감의 나무를 심고 가꿀 일이다.
어떻게 자주성을 확립할 것인가? 저마다 새 사람이 되겠다는 새로운 자각과 굳은 결의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 바탕에 새로운 보람과 인생의 의미, 그리고 무한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는 일이다. 내가 입는 옷 한벌. 이것은 추위와 더위와 모기 등을 막아내기에 넉넉하고 몸뚱이를 가리기에 넉넉하다. 사치와 낭비를 없애고 허황되게 즐기기 위함이 아님을 새김질하는 것이다. 행복의 핵심은 밖에 있는 겉치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생각하고 느끼며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맛에 팔려 맛을 위하여 먹는 것이 아니다. 몸이 괴로워 여러 가지 병이 부딪쳐 와서 죽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몸을 가지고 진실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음식을 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족한 줄 알면 그만인 것이다. 주처(住處)도 만찬가지다. 집은 추위 더위와 바람 비와 모기 등을 막는 것에 족하며 한적하고 피곤할 때 쉴 곳이다. 이러한 의•식•주의 세 가지는 항상 고르게 넘침이 없어야한다. 너무나 탐착하여 법도를 벗어나고 사치하매 호화롭게 꾸미는 것은 자주성이 부족하여 진실한 삶이 못되는 것이다.
어떻게 진실성을 확립할 것인가? 거짓을 버리고 밝은 햇빛 아래 서는 것이다. 거짓된 마음을 가진 채 진실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행복과 보람을 찾을 수 없다. 어두운 밤에는 사물을 바로 보고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광명정대한 대낮에는 밝은 햇볕에 의해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남이 주지 않는 물건을 바늘 하나 풀 한줄기라도 스스로 취하여 가지지 말며, 범행〔淸淨行〕을 가지고 거짓말을 일부러 하지 말고 마음대로 방탕하지 말고 바른 행을 지켜나가라고 하신 것이다. 자주성이 강한 사람은 자신을 믿는 것이지만 진실한 생각과 바른 가치관이 부족하면 인류와 사회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과 명예만을 위하여 넘쳐나기 쉽다. 그러므로 올바른 선택을 하여 진실한 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건전한 사명감을 갖는 것이 요구된다.
어떤 것이 사명감을 확립하는 것인가? 내 능력으로 내 운명과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있어 자주성을 가지고 진실되게 부지런히 노력하지만 즐거움만 있고 보람되지 못하다면 바른 삶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번뇌가 다한 아라한으로서 해야 할 일은 이미 다하고 번뇌의 무거운 짐을 버리고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버려서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는 것이다. 해탈이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간음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성스러운 도를 버리지 않고, 욕심을 따르지 않으며, 성냄을 따르지 않고, 두려움을 따르지 않으며, 어리석음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과거 세상의 일이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하여 즐거워할 것이 못되고 이익될 것이 없으면 기억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때에 맞는 말〔時語〕•실다운 말〔實語〕•진리에 맞는 바른 말〔義語〕•이익이 되는말〔利語〕•사물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말〔法語〕•그리고 앞뒤가 뒤바뀌지 않는 말〔律語〕로써 허망함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

우리의 마음 밭에 자주 정신의 바탕을 고르고 진실의 종자를 뿌릴 일이다. 거기에서 자란 나무에 사명의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비록 인연이 엇갈린 길목이었다 해도 자주의 정신으로 진실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이 떨어지듯 할 것이며, 스스로 해묵은 가지를 뻗어 나가게 할 것이고, 이별의 시기에도 포근한 가랑잎이 대지를 덮게 할 것이다. 저 아슬한 벼랑의 꼭대기에서도 별처럼 꽃은 피어나고, 웃고 섰던 꽃잎도 된서리 맞을 열매를 위해 자리를 미련없이 버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 아닌가.
“튿어진 솔기미 미어진 끝동은 솜씨내어 깁지만 마음은 바늘과 실로써 기워낼 재간이 없다”고 한다. 미음이 미어지고 갈라진 틈 사이를 기울 바늘과 실은, 오관을 통하여 받아들인 삿된 견해를 버릴 때의 굳은 자주심, 바로 그것이다. 이제 살생하지 않고 욕심과 성냄을 이기는 해탈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어 주는 튼튼한 실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허망한 몸도 헛된 목숨도 아니다. 탐욕과 수면과 성냄과 삿된 것을 벗어나 안온한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다한 깨달음의 관(觀)을 닦아 네 가지 선정에 머물러야만 우리의 참 주인, 진짜 주인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연히 이 땅에 내어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아무렇게나 태어난 목숨도 아니다. 자주의 용기와 진실의 힘으로 사명감을 가졌다. 우리는 역사의 현장에서 방청꾼이 아니다.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운전석에서 새로운 보람을 창조해 나갈 주인공이다. 굳은 의지의 정신 지표로 마음 밭을 일구고, 진실의 나무를 키워서 보람의 열매인 사명을 거두어야 한다.
내가 믿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 내가 운명의 주인이요 역사의 주인이다. 역사의 한 모퉁이에 나의 땀과 피의 흔적을 남기도록 최선을 다함으로써 보람과 긍지를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