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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豪厘)가 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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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중배 1988년 07월 77호
1 . 어렵고도 두려운 말
일찍이 한비자(韓非子)는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를 어렵게 여긴다”고 털어놓았읍니다. 대체의 요점만을 뭉뚱그려 간략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남의 감정을 건드릴 뿐이라는 핀잔을 듣게 됩니다. 옛말을 인용하고 사례를 들어 말하면, 말이 들떠 있을 뿐 소용이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말이 세속적인 악을 멀리 초월하면, 사람다운 맛이 없고 허황하다는 질타가 떨어집니다. 말이 민첩하고 말재주가 넘치면, 사관(史官)처럼 말 많은 무리라는 비아냥거림이 날아듭니다. 수식(修飾)이나 학문을 버리고 질박한 본성만을 말하면, 곧 천하다고 매도해 버립니다. 때로는 시와 서를 들추어 옛날의 법을 말하면, 곧 그 사람은 옛일을 외고 있을 뿐이라고 나무랍니다.
그 한비자의 난언(難言)타령은 오늘에도 적절합니다. 다만 현대라는 시간이 난언의 빛깔을 조금은 다르게 드러내고 있을 따름입니다. 분배의 정의를 강조하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항의를 비호하면 좌경급진이 아니냐고 대듭니다. 분단 극복을 위한 젊은 이들의 열정만을 높이 사야한다고 말하면, 대뜸 “공산통일도 좋다는 말이냐”는 매카시즘McCarthyism의 화살이 날아듭니다.
권력이나 자본가는 이제 탐욕을 버리고 정의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면, 현실을 모르는 백면서생의 푸념이라는 손가락질이 빌려듭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내각의 구성이 구태의연하다거나 양심수를 서둘러 사면해야 한다고 말하면, 국가 원수의 고유한 권한을 침해하는 주제넘은 소리라고 눈알을 부라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의 이 땅은 한비자의 시대보다 훨씬 말하기가 어려운 시대인 것도 같습니다. 때문에 나는 말 한마디 뇌까리고 글 한줄 적어냈다가 좌-우 양켠에서 엄
습하는 찬-반의 소용돌이에 부딪칠 때마다 한비자의 ‘난언편’을 다시 읽어보곤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난언편’의 일리에 동조하면서도 끝내 동의할 수 없는 한가닥 물음을 가슴속에 품으면서 말과 글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하기가 어렵다”는 고백에 대한 동조이면서 또한 “말하기가 두렵지가 않다”는 오만에 쏠리는 거부감입니다. 물론 한마디 말을 흠잡아 달겨드는 지탄의 소리들이 두렵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비자도 그런 뜻에서 “말하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고 단언했을 법합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말하기가 어려울뿐 아니라, 말하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그 두려움은 분명코 밖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두려움은 나의 내면에서 엄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앎과 깨달음이 모자라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정작 나의 말과 글은 한치의 어긋남도 없었던 것인가? 그 물음에 마주칠 때마다, 모골(毛骨)이 일어서는 소리를 듣습니다. 물론 말과 글을 토해낼 때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다지고 또 다지는 작업을 되풀이 합니다만, 내뱉고 나면 역시 두려움이 닥쳐들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겸허 이전의 문제입니다. 겸허 이전에 나는 진실과 진리와 법의 한 모서리마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실감을 뿌리칠 길이 없읍니다. 그 어둠 속에서도 다만 일상의 ‘글장이’ 라는 구실 때문에 시점(時点)마다에 새겨지는 나의 어두운 확신을 그대로 피력하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2. 십자로의 ‘ 한 생각’ 과 거리
“호리(毫厘)의 차이가 천리(千里)의 차이”라는 문장을 읽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읍니다. 잡동사니 지식에도 목마른 나는 언젠가 풍수(風水)의 이치를 말하는 책과 만났던 적이 있읍니다. 몇 줄을 읽어 가자, 만리장성의 성채에 이마빡을 들이박는 듯 싶은, 벽력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졌읍니다. 그것은 당(唐)나라 현종(玄宗)시대의 풍수학을 적은 일행(一行)스님의 기록이었읍니다.
현종이 아직 동궁이었던 무렵, 하루는 백운(白雲) 선생과 함께 사냥에 나섰읍니다. 말을 달리기 20여리, 작은 산속에 접어들었을 때, 그들의 앞길을 새 무덤 하나가 가로막았읍니다. 풍수에 조예가 깊은 백운 선생은 그 무덤을 보고 “이 묘혈(墓穴)은 법도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읍니다. “이건 용의 머리에서 내려와 용의 뿔을 베개 삼은 모습이므로, 삼년이 지나지않아 시신이 저절로 쇠락하게 될 형상”이라는 뜻이었읍니다.
현종은 당초에는 어진 임금이었습니다. 흉한 무덤으로 말미암아 그 자손인 백성에게 화가 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는 물어 물어 무덤 속에 묻힌 최손(崔巽)의 아들을 찾아갔읍니다. 물론 그 아들은 현종을 알아볼 턱이 없었읍니다. 그러나 현종은 그 무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는 까닭을 일러주고 이장(移葬)을 권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손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거역할 수 없다”면서 이장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최손의 유언은 “이장법(裵法)은 용의 머리를 떠나 용의 뿌리를 베개 삼은 것이다. 이 법대로 하면 반드시 삼년 후에 만승의 천자(天子)가 무덤 앞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손의 예언대로 삼년만에 천자는 그 무덤 앞에 나타났읍니다. 현종은 어리둥절하여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읍니다. 풍수의 대가라는 백운 선생의 놀라움은 더욱 컸읍니다. 백운은 이렇게 한탄했읍니다.

“신의 학문은 아직도 정밀치 못합니다. 경에 이르기를 호리의 차이가 화와 복을 천리로 가른다고 말했읍니다. 바로 이 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읍니까〔臣學未精經日毫厘之差 禍福千里〕.”
백운 같은 풍수의 대가도 한 무덤의 길흉(吉凶)을 바로 내다보지는 못했습니다. 삼년 만에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까지는 알았으나, 그 순간에 천자가 나타나리라는 것까지는 알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앎의 차이는 애당초에는 호리에 지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길흉의 차이는 천리 이상의 거리로 멀어졌던 것입니다.
‘한 생각’의 거리는 그렇게도 엄청납니다. 십자로(十字路)에서 갈라지는 한 걸음과도 같습니다. 십자로에 선 사람이 동쪽으로 가느냐, 서쪽으로 가느냐는 그야말로 한 발자욱의 차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내디딘 그 한 걸음은 거듭될 수록 천리의 거리로 벌어질 수밖에 없읍니다.
말과 글은 바로 그 ‘한 생각’의 표현입니다. 그 ‘한 생각’이 어긋날 때 펼쳐지는 생각은 천리, 만리로 벌어집니다. 천리, 만리로 벌어졌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면, 얼마만한 도로(徒勞)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까? 또한 원점으로 돌아오기가 수월하다고 할지라도, 그 돌아온 원점은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의 원점일 수 있읍니까? 때문에 나는 그 ‘한 생각’ 이 갖는 호리의 차이가 어렵고 두려운 것입니다. 어렵고 두려운 그 두 가지 가운데서 하나만을 고르라면, 두려움을 고백할 수밖에 없읍니다.
당연히 그 두려움은 폭력 앞에 위축되는 공포가 아닙니다. 비난을 견디지 못하는 불안일 수도 없읍니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는 겸허만도 아닙니다. 호리의 차이가 천리라는 것은 이미 하나의 진실입니다. 전율입니다. 겸허는 그 두려움이 안겨다주는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3. 과학의 한계와 어머니의 눈물
더구나 호리의 차이가 천리로 벌어지는 것은 반드시 방향지(方向知)의 착오에서 빚어지는 비극일 수만은 없읍니다. 회남자(淮南子)가 말하듯이, 어진 사람이 동쪽으로 달라는 것과 미친 사람이 동쪽으로 달리는 것은 전혀 같은 뜻일 수 없읍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물에 뛰어드는 것과, 물에 빠져죽고자 뛰어드는 현상을 같다고 말할 수는 없읍니다. 현상이 같을 뿐, 뜻은 천리만큼이나 다른 것입니다.
한쪽의 앎은 다른 한쪽의 무명을 예비합니다. 가령 영국의 물리학자 패러디는 오히려 종교인과도 같은 경건함으로 한쪽에 기우는 과학의 무명을 설파합니다. 그는, 어느 날, 제자들에게 시험관에 든 액체를 내밀었읍니다. “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교수의 물음에 과학도들은 부랴부랴 분석에 나섰읍니다. 분석 결과는 물으나마나였을 것입니다. 수분과 약간의 염분이 과학도들의 인식에 잡힌 액체의 정체였읍니다. 그때 패러디가 남긴 한 마디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액체는 어떤 학생의 어머니가 남기고 간 눈물이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다가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어머니의 눈물에는 수분과 약간의 염분이외에 과학으로는 도저히 분석해낼 수없는, 존엄하고도 깊은 모정(母情)이 들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진여(眞如)를 더듬는 넉두리를 주재넘게 늘어놓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과학의 한계를 말하고, 이제는 그 과학을 넘어서는 종교와 마음의 세대가 열려야한다는, 제법 거창한 푸념에도 끼어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이 마당에서 고백하고자 하는 말은 역시 무명의 도저한 인식과, 그에 거슬리는 ‘아는 척의 두려움’만 따를 뿐입니다.
더구나 산스크리트 말의 ‘카라’는 영원의 이름이면서 또한 순간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시간의 뜻이라고 요약될 수 있겠읍니다만, 그러나 순간 속에 영원이 있고 영원 속에 순간이 있다는 ‘카라’의 함축은 나로 하여금 더욱 깊은 두려움과 맞서게 합니다. 순간의 말과 글, 그리고 그것을 떠받치는 생각이 영원에도 정견(正見)일 수 있는가? 영원히 살아갈 정견의 말과 글을, 순간 순간마다 울려낼 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대답은 명백합니다. 허허, 내어쉬는 허탈의 한숨이 나의 대답일 뿐입니다. 그러나 허탈은 절망의 철학에 지나지 않습니다. 끝내 삶이 추구해야 할, 희망의 철학일 수는 없읍니다. 절망은 절망의 현실을 조장할 따름입니다. 절망이 지배하는 현실과 철학은 종교를 거부합니다. 인간의 인간다운 마음을 믿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눈물도 비정한 화학적 정량분석에만 내맡겨 버립니다.
종교는 모두 절망을 거부하는 희망의 철학입니다. 설령 다다를 수 없는 피안(彼岸)이라고 할지라도 끝내 다다르고자 한없이 접근하는 정진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다운 소이인 것입니다. 종교의 종교다운 소이인 것입니다. 희망을 버리면 인간도 버려야 합니다. 종교도 버려야 합니다. 다만 그 희망의 전제는 현실과 삶의 절망적 실체를 깨닫는 개안(開眼)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바로 그 개안에 이르지 못하는 나의 눈이 두려운 것입니다. 호리가 천리라는 그 앎의 세계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그대로 두려워하며, 두려움을 두려움이 아닌 자리로 이끌어 올리고자 하는 정진의 겸허 속에서, 언제나 합장을 그칠 생각은 없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