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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면비 염불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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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엮은 삼국유사 - 김호성 1988년 06월 76호
이번호에서는 삼국유사 권5, 감통(感通)편의 ‘욱면비 염불서승(都面婢念佛西昇)’조(條)를 소개한다.

1
“귀진(貴珍), 자네도 우리와 뜻을 같이 하기로 하세. 통일된 지도 근 백년이 되고 세상도 안정되고 했으니 이제 좀더 의미있는 길을 찾아보세. 사나이 한 세상을 이리 무상하게 보내서야 되겠나?”
“자네들이 결사를 한다는 얘길 들었더니 그게 정말인가 보이.”
“그럼. 아미타불을 염(念)하는 미타사(彌陀寺)를 짓기로 했다네. 이 강주(剛州, 지금의 영주)는 의상대사가 법을 편 곳이고 인연도 있을 성싶네. 벌써 수십 명의 선남자들이 모여 있지.”
“그럼세. 나도 기꺼이 동참하겠네.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목숨을 마치고 삶을 마감하는 법, 서방에 극락세계가 있고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다… 우리 부지런히 염불을 하도록 하세.”
“고마우이. 이리 흔쾌히 동참해 줘서.”
“서라벌에 불법이 들어온 지 수백년이 되건만 사실 너무 어려워. 우리네처럼 글깨나 배웠다는 사람들도 이러한데 무지한 백성들이야 오죽이나 어렵겠나.”
“그건 그러이. 허나 이제 ‘나무아미타불’만 염하면 극락에 갈 수 있다니 좀 좋은가. 자칫, 무지한 백성들이 새로운 세상을 그리워하여 미륵이라든가 미력이라든가 하는 사설(邪說)에 현혹되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느니 해서도 안되지.
“이제 백성들도 많이 따르겠지. 나무아미타불만 외면 극락갈 수 있다니….”
“그래, 어쨌거나 큰 서원을 세우세. 만일(萬日)을 기약해서일세.”

2
“아간(阿干)님, 아간님.”
“게 누구더냐?”
“예, 계집종 욱면(都面)이옵니다. 드릴 말씀이 있사와 뵙고자 하나이다.”
“그래, 무엇이냐?”
“쉰네도 아간님의 미타사 염불결사베 참예하고자 하나이다. 허락하여 주옵소서.”
“계집종 주제에 염불은 무슨 염불이란 말인가. 더구나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으니 곧 범천왕이 될 수 없으며 제석, 마왕, 전륜성왕이 되지 못하고 부처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하물며 미천한 종의 신분으로 어찌.”
“그러한 다섯 장애의 설이 설사 있다 하더라도 자비스런 부처님의 본의(本意)가 그랬다고는 믿지 못하겠읍니다.”
“말이 많구나. 더 듣기 싫으니 썩 물러가도록 하라.”
“아간님, 옛적 통일을 이룰 무렵의 원효대사 같으신 분은 시골구석, 장터의 무지렁이 백성들에게도 나무아미타불을 가르쳤다고 들었사옵니다. 이를 보면 분명 정토에 가서 나는 데엔 남녀 귀천의 차별이 없을 터이옵니다. 쇤네도 아간님의 만일결사(萬日結社)에 참예할수 있도록 허락하옵소서. 자비스런 아간님.”
“어허 고얀지고. 모름지기 인간은 분수를 알아야하는 법. 가사(家事) 소임도 많은 아랫것이 또 어느 여가에 미타사까지 가서 염불을 한단 말이냐?”
“일이 많사오나 그걸 끝내고 난 밤에만 가서 염불을 하겠나이다.”
“좋다. 그러면 매일같이 곡식 두 섬씩을 찧도록 하여라. 추호라도 네 맡은 일에 소홀함이 있을 시는 엄중히 다스리겠으니 명심하도록 하여라.”
“예 고맙습니다. 꼭마음에 새기겠읍니다.”

3
“욱면아, 넌 어쩔 작정으로 아간님께 그런 청을 드렸니?”
“그러게 말야. 오히려 혹을 주렁주렁 더 붙인 격이지 뭐니? 무슨 재주로 두 섬씩이나 되는 곡식을 매일 찧는다는 거니?”
“그래도… 달리 길이 없지 않니?”
“그게 무슨 소리야? 길이 없다니?”
“으응. 사람은 다 똑같은데 왜 종은 개나 돼지 취급을 받으며 또 여자는 남자들 발 아래만 있어야 하니? 이리 살아 무슨 희망이 있겠니?”
“그건 그렇지만 염불을 한다고 별수가 있다던?”
“그래. 서쪽 저기 저 멀리에는 아무런 고통도 슬픔도 없는 오직 기쁨과 즐거움 넘치는 극락(極樂)이란 세계가 있는데 거기엔 아미타부처님이 계셔서, 누구든지 한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면 맞이하러 오신단다.”
“극락엔 아무런 고통이 없다고?”
“그래, 우리가 이 현실을 벗어나려면 그 길밖에 없질 않은가?”
“그렇지만 그로 인해 더욱 핍박받고 더욱 혹사당하고….”
“그럴수록 힘을 내고 오직 나무아미타불을 염해야 하는 거악 우리 같이 하자”
“아냐. 난 바쁜 일이 있어.극락도 좋지만 이승에서가 당장 더 고생이야.”
“나도 가봐야 돼. 아뭏든 몸조심해라, 욱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의 감응하심이라도 있는지 곡식을 찧는 욱면은 초저녁에 이미 일을 끝내고 미타사로 향한다. 오직 일념 염불 9년.
“욱면, 욱면을 데려오라. 이 고얀 것을 어서 데리고 오도록 하라.”
“예, 예 곧 대령시키겠나이다.”
“이 괘씸한 것을 어찌 벌하면 좋을꼬?”
“여기 욱면을 대령했나이다.”
“너 욱면 듣거라. 내 그동안 누누히 기회 닿을 때마다 타일렀거늘 어찌 그다지 아망이 센고? 이거 어디 망신스러워 고개를 들겠느냐? 계집종 하나 단속 못해서 결사 참예를 9년 동안이나 내보낸다는 빈정거림을 받질 않나, 온 고을에 ‘내일 바빠 주인집 방아 서둘러 찧는다’는 소문을 파다하게 내어 인심 사나운 사람으로 손가락질 당하게 만들지 않나. 네 이 발칙한 것을 그냥 두지 않으리라.”
“아간님, 쇤네는 오직 염불한 죄밖에 없사옵니다. 털끝만큼도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담지 않았사옵니다.”
“시끄럽다. 저 고얀 것을 뜰 좌우에 낀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끈으로 꿰어 각각 말뚝에다 달아 매도록 하라. 다시는 합장조차 못하게 할 것이니라.”

4
“욱면은 참 지독해. 그렇게 손에 끈을 꿰어 말뚝에 묶어뒀는데도 글쩨 태연스레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다니….”
그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울림소리가 들린다.
“아간 귀진은 욱면으로 하여금 미타사 법당에 가서 염불하게 하라. 아간 귀진은 욱면으로 하여금 미타사의 염불결사에 들도록 하라.”
이리하여 욱면은 마침내 미타사 법당에 들어가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게 된다.
“아간님, 아간님 큰일났습니다.”
“웬 소란이더냐? 무슨 일인지 소상히 아뢰어라.”
“예, 욱면이 법당에서 염불하고 있는데 갑자기 서쪽 하늘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면서 아미타부처님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와서 욱면을 맞아 갔읍니다요.”
“저도 보았사온데, 욱면은 몸을 솟구쳐 법당 대들보를 뚫고 올랐습니다. 그러더니 서쪽 교외에 이르러 부처의 몸으로 변하여 연화대에 앉아 큰 광명을 발하면서 서서히 사라져 가니 음악소리는 한참이나 하늘에서 그치지 않았읍니다.”
“아, 어찌하면 좋은고. 내가 눈이 어두워서 성인이 내 집에 기탁해 사는 줄모르고서 함부로하고 억압했으니…”
“지금이라도 참회하셔야죠.”
“그래, 나는 이 집을 절로 만들어 법왕사(法王寺)라 하리라. 우리 모두 다함께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도록 하자꾸나.”
“예, 성불하는 데는 남녀가 차별되지 아니하고, 종이라는 신분이 원래 있지 않았다는 욱면의 말이 옳습니다.”
“그래, 나를 용서해 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