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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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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8년 06월 76호
점례는 판순이와 둘이서 집에 남아 기다렸다.
날콩 가장이를 까고 우물에서 배추를 씻으면서, 점례는 줄곧 눈물을 짰다.
서쪽 강둑으로 날아온 비행기가 폭격을 퍼붓기 시작한 것은 처마 밑 그늘이 가장 짧았을 즈음이었다.
“어머나! 비행기가 사람죽인다.”
판순이는 가장자리 마당을 쓸던 빗자루를 내던졌다.
“왜 오늘은 싸이렌도 불지 않았을까?”
점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난 가봐야겠어.”
판순이가 골목길로 쫓아나갔다.
“판순아!”
뒤따라 점례도 깍지를 튀기고 뛰어나가는 콩알처럼 달려나갔다.
골목길을 나가 행길에는 벌써 동네 아이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햇볕이 쨍쨍 쬐는 한낮인데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폭탄은 시빨겋게 도깨비불처럼 내리쏟아졌다.
아이들은 엄마 아버지를 부르며 발을 굴렀다. 뛰어가다가 주저앉아 울부짖는 이이도 있었다.
느티나무정자가 있는 동네 어귀까지 달려나간 아이들은 뛰던 걸음을 멈추었다. 건너다 보이는 강둑엔 시커먼 연기와 먼지구름이 온통 뒤덮여 온세상을 집어삼킬 듯했기 때문이다.
번갈아 날아들며 곤두박질치는 비행기는 정확하게 강둑을 겨냥하고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판순이의 큰소리는 아이들이 울부짖는 시끄러운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비행기가 사라져 간 뒤에도 강둑은 먼지구름이 자욱했다.
“할머니!”
판순이의 그 커다란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듯, 아이들이 또다시 내닫기 시작했다. 건너다 보이는 강둑이지만 아이들의 뛰는 걸음으로는 한참이나 멀었다.
한시간쯤 뒤 강둑은 여기 저기서 모여든 아이들과 어른들로 뒤덮였다. 울고 불고, 부르고 소리치고, 눈물과 통곡으로 커다란 초상집 같았다.
판순이가 먼저 찾은 것은 할머니보다 종대 오빠였다.
“오빠!”
종대는 뒤로 넘어져 있고 가슴엔 피가 시빨겋게 젖어 있었다. 흙먼지를 쓴 얼굴은 지난 여름 모내기를 하다가 넘어졌을 때의 모습 같았다.
“오빠아! 오빠아!”
판순이가 넘어진 종대를 끌어일으키는데, 바로 밑에 옆으로 쓰러진 채 점득이가 깔려있었다.
“점득아!”
점례는 울음을 터뜨렸다. 와락 달려들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점득아! 점득아!”
점득이는 얼굴에 피가 덮였고 몸에는 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점례가 깜짝 놀란 것은 점득이가 말을 했기 때문이다.
피에 얼룩진 얼굴을 고이 안아들자 점득이의 입에서 분명히 소리가 난 것이다.
“아야, 아야…”
“점득아, 점득아…”
점례는 저고리 소매자락으로 얼굴의 피를 닦았다.
“누나, 아퍼, 엄마 엄마…
“점득아, 살았니? 점득아…”
점례는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점득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점득아, 눈좀 떠 봐.”
“아퍼?…아퍼…”
점득이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이마의 상처가 그다지 심하지는 않는데도 헐떡이며 괴로와했다.
“엄마는 어디 있었니?”
“나하고 같이… 같이…”
곁에서 판순이가 울고, 온통 식구들을 부르며 이리 저리 뒤얽혀 아우성치는 소리도 점례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같이 어쨌다는 거야? 판순네 할머니도 안 보여, 점득아…”
“몰라…아퍼…누나…엄마…”
점득이는 점례의 손을 잡고 부들부들 떨며 가슴을 헐떡거렸다.
“점득아, 여기 이렇게 기대고 있어. 엄마 찾아야 해.”
그러나 점득이는 점례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누나, 가지 마, 가지 마…”
이때부터 점득이는 누나 손에 이끌려 살아가는 고아가 되었다. 폭탄의 파편에 맞은 두 눈이 끝내 떠지지 않았던 것이다.
저녁놀이 물들도록 아이들은 울면서 강둑을 헤매었지만 가족을 찾지 못했다.
이날 살아남은 사람은 서른 명이 채 못되었다. 그것도 점득이처럼 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리가 잘려 나갔거나 팔이 떨어져 나갔거나 온몸이 이즈러져 겨우 숨만 붙은 사람들이 마을에 남아 있던 늙은이들에게 이끌려 돌아갔을 뿐이다.
판순이네 할머니와 점득이네 어머니는 시체조차 가려내지 못했다. 움푹 움푹 패인 구덩이 안에도 수북이 쌓인 흙더미 속에도 없었다.
점득이는 장터 마을 목사님의 천막교회에 옮겨졌다.
장대성 목사님은 주먹을 치며 온몸을 떨었다.
“모두가 악마들이야! 이 못된 사탄아!”
사모님은 점득이 이마의 상처를 정성껏 치료했다.
판순이는 하루종일 울었다. 밤이면 지쳐서 잠이 들고 이튿날이면 또 울었다.
강둑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체는 미군들이 불도저로 끌어 묻고 불에 태우기도 했다.
점득이는 점례 손을 불잡고 울먹거리며 말했다.
“미국비행기가 엄마 죽였어. 누나, 우린 이제 어떻게 살어.”
“점득아, 울지 말어. 울면 눈이 낫지 않는단다.”
“아퍼…누나…”
판순이는 강둑으로 할머니를 찾아 하루 한 번씩 나갔다.
텅빈 강둑엔 이상한 냄새가 나고 무언가 섬짓하게 찬바람이 이는 듯했다. 그런데도 판순이는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았다. 그냥 강둑에 앉아 큰소리로 할머니와 종대 오빠를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울다가 지치면 일어나서 점례네가 있는 교회 천막으로 돌아갔다. 멀찌감치 보이는 미군야전부대의 막사는 어쩌면 그처럼 고스란히 폭격을 피했는지, 판순이는 다만 운이 좋아 그랬던 것으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점득이의 눈은 한 달이 지나도 떠지지 않았다. 이마의 상처는 초그반 조가비 껍질만큼 흉터만 남고 깨끗이 나았는데도 점득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실눈처럼 억지로 떠보았지만 캄캄한 밤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점득이는 문득 문득 헛소리처럼 말했다.
“누나, 미국비행기가 엄마를 죽였어.”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비행기는 모르고 인민군이 모여있는 줄 알고 폭격을 했다는 거야.”
“아니야, 일부러 그랬어. 모두 죽이가 위해 강둑에 모이라고 한거야.”
“아니야 점득아, 모르고 그랬단다. 미국군인이 목사님께 잘못했다고 사과했단다.”
“아니야, 소련군인이 아버지를 쏘아죽인 것처럼 미국군인이 폭탄으로 엄마 죽였어.”
“점득아, 미국군인은 우리를 도우려고 왔단다. 이제 멀리 압록강까지만 올라가면 전쟁은 끝나고 평화가 온단다.”
점례는 동생을 달래느라 무진 애를 썼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점례 역시 비행기폭격은 미리부터 짜고 그렇게 한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았으면 왜 하필이면 하얀 옷을 입고 모이라 했을까?
압록강까지 올라가면 전쟁은 끝이 난다던 말이 한 달도 못되어 더욱 거센 비바람이 되어 온나라를 뒤덮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찾아왔다.
점례는 15살이 되고 점득이는 13살, 판순이는 14살이 되었다..
그해는 유달리 눈보라가 심했다. 꽁꽁 얼어붙은 냇물에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면 손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점례는 가없은 동생과 판순이 몫의 빨래까지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빨았다. 방망이로 빨래를 두들기는데, 그 방망이 소리보다 더 큰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쿵쿵 울렸다.
수십만의 중국군인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몰려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군인이 누구야?”
판순이는 궁금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얼른 알고 싶었다.
“공산오량캐란다.”
점례는 왜 올라갔던 인민군은 안오고 중공오랑캐가 내려오는지 섭섭했다. 인민군이 내려오면 외숙님과 승기랑 승숙이 언니도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장 목사님은 기도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팡질팡했다. 폭격으로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는 미국편을 들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공산당을 위해 기도할 수도 없었다. 전쟁은 그 어느 쪽이든 이기든지 지든지 해야만 끝이 나는데, 어느 쪽이 이겨도 져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전쟁이 계속되어도 안되고, 목사님은 두 손을 치면서 통곡을 했다.
그러나, 천막교회에서도 장 목사님의 기도는 그날 밤으로 끝이 났다. 미군트럭이 한 대 천막교회로 와서 목사님을 불렀다. 비행기 폭격으로 교회를 잃어 버린 탓인지 미군들은 장대성 목사님께 친절히 마음을 써주었다.
“목사님, 지금 곧 후퇴를 해야 한답니다. 어서 서둘러 주십시오.”
미군과 함께 온 한국군인이 정중하게 말했다.
“그럼, 다른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목사님이 걱정을 했다.
“차가 자라는 대로 태우고 갈 것입니다. 목사님은 위태로우니 속히 떠나는 것이 좋겠읍니다.”
그러고는 미군은 벌써 천막 안에 있는 아이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누나, 우리는 가지 말어.”
점득이가 점례 손을 불잡고 버티었다.
“안 가면 죽는단다.”
“아니야, 외숙부님이랑 승숙이 누나가 올 거야.”
“오기 전에 모두 폭격으로 죽는다.”
아이들은 끌려가듯이 트럭에 실렸다.
트럭은 행길을 빠져 나가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아이애들을 태웠다. 어느새 사람들은 보퉁이를 이고 지고 피난길을 나서고 있었다.
사람들은 트럭에 매달려 태워 달라고 빌었다. 트럭에는 더 이상 틈이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흐린 하늘에서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트럭은 그 많은 사람들을 매정하게 떼어 놓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 남은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안타깝게 부르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날이 저물고 캄캄한 밤이 되었다.
트럭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고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점득이는 점례 손을 잡은 채 추워서 떨었다. 솜을 넣고 무명으로 기운 모자를 귀가 덮이도록 쓰고 있었지만 코와 입과 뺨이 얼음처럼 식어갔다.
판순이는 점례의 어깨에다 얼굴을 기대며 꺽 꺽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사방은 어둡고, 그리고 어디로 달리는지 앞에 뿌옇게 비치는 자동차의 불빛에 하얀 눈보라만 이리 저리 바람에 휩쓸리며 쏟아질 뿐이었다.
“누나, 무서워, 여기가 어디야?”
점득이가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움직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누나도 모른단다. 목사님하고 같이 가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점례는 점득이 손을 꼭 꼭 불잡았다.
트럭의 끄트머리 쪽에서 누가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목사님의 사모님이 목이 쉰 듯한 목소리로 조용 조용 달래었다.
“여러분들,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예수님의 고통에 견준다면 참을 수 있을거에요. 우리를 무사히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시도록 모두 마음 속으로 기도하세요.”
흐느끼는 소리가 그치고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뿐이었다. 울음소리는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그것을 달래느라, 또 울고…
어느만큼 달렸는지 트럭은 어느 조그만 읍내 같은 도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까지 조용한 산길엔 보이지 않던 피난민들이, 불어치는 눈보라 속에 가득히 밀고 밀리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점례야, 모두 도망치고 있다. 오랑캐들이 벌써 쳐내려 왔나봐!”
판순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트럭에 탄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라도록 소리가 컸다.
“큰소리 내지 말어.”
점례가 판순이 어깨를 꽉 누르는데, 트럭은 줄곧 달리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