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로서의 당당함
교계의 한 신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49명의 불자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한다. 전체 국회의원 당선자의 종교별 분포는 무종교가 77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개선교가 74명, 천주교가 59명, 기타 2명 순으로 나타났다. 가장 신도수가 많은 불교임에도 불구하고 왜 민의의 광장이라고 하는 국회에 선량으로 들어가는 의원 숫자는 세 번째로 뒤쳐져 있는 것일까. 굳이 국회의원의 숫자를 갖고 교세를 가늠하자는 속 좁은 발상은 아니더라도 이번 선거나 그 동안의 선거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그냥 덮어두고 가기에는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현실은 수의 많고 적음에 따른 힘겨루기에 의해 판세가 결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 불교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이 위기는 막연한 피해의식의 발로라든지 아니면 과거처럼 일회적인 돌출사건에 의한 감정적 인식이 아니다. 위로는 국가권력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인사들과 이들에 의한 정책으로부터, 아래로는 개별 교회나 또는 광신적인 신자들로부터 오는 저돌적인 공격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퍼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최근 사 년 동안 불교계는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대규모 대중집회를 가졌는데 그 대부분은 정부의 종교 편향정책 둥의 잘못을 규탄하는 불교권의 보호의 성격을 갖고 있다. 지난 80년대 중 후반 당시의 시국과 관련하여 불교계도 시국 집회가 여러 번 열려 사회 민주화와 불교의 자주화 그리고 조국의 통일을 주장했으며 그런 성과로 군사독재를 종식케 하였는데 최근에는 그것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정부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군사 독재 시절보다 더욱 악화된 불교계의 반정부 여론이 전례를 찾기 힘들만큼 통일된 힘으로 비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대구지역에서는 노골적으로 불자후보를 적극 지지할 것을 공개 천명했고 또 어느 지역에서는 비록 불자 후보라도 그 후보가 신한국당 소속일 경우에는 찍지 말자는 결의까지 나왔다고 한다. 정치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것이 그 동안의 교계 움직임이었다는 점에서 최근의 동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한국 불교의 장기적 발전에 있어‘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적극적인 포교나 교육에 의한 인재 양성이 종단의 내적인 발전 방안이라면 정치권의 불자를 조직화하고 이들을 후원하여 교계의 권익을 옹호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교단을 외호할 외적 방편일 것이다. 그렇다면 후자에 속한 불자들어 불자로서의 당당함을 갖도록 조직화와 후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역할을 부여해야
우리는 쉽게 인재 양성을 종단 발전의 필수적인 정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종단의 중요한 기구로 교육원을 세웠고 곳곳에 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를 키우는 배움터를 건립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인재를 양성하려는 노력파 함께 사회의 다양한 공간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자들의 조직화와 그들이 불교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소리가 될 것이다. 또한 이왕에 불교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재들에 대한 후원도 필요하다.
이번 총선에서 다른 종교보다는 적은 수의 불자들이 선량이 되었으나 지난 국회보다는 그 수가 늘었다. 또한 이번 선거 과정에서 자신이 불자임을 당당하게 밝힌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다. 전에 없이 불교계가 이번 총선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결과라고 할 때 앞으로 이들 이 정치 활동을 하는데 있어 교계의 관심 여하에 따라 의정 활동을 통한교권의 확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4대 국회 내의 불자의원 모임인 국회 정각회의 회원 수는 33명이었다. 물론 의원 가운데에 불자이면서도 지역 조건이나 다른 종교를 감안하여 자신의 종교가 불자임을 적극 내세우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각회의 수적인 면이나 그 회원들이 교계에 어떻게 이바지했는지를 지적하면 썩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 저간의 사실이다. 교계가 당연한 현안 문제, 이를테면 제반 불교 관련법이나 정책 수립에 있어 다소 소극적이었다 해도 과연은 아니다. 물론 정각회원이라 해도 자신들이 속한 정당이 다르고 또 그에 따른 당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쉽사리 교계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 있으나 그래도 교계 문제에 접근하는 그들의 자세는 미덥지 못하다.
이제 새롭게 국회가 구성되고 정각회 구성도 새롭게 될 텐데 이들이 교계에 나름대로의 몫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쇄신하여야 할 것이다.
교계 한 신문사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선거 결과 광주와 전·남북 등 호남권에서 불자임을 밝힌 후보가 거의 없다시피 하여 이 지역에 대한 교세의 취약성을 반영한 것이다. 또 야당보다는 여당의 후보로 나선 사람들이 당선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불교인이 갖고 있는 성향은 야당보다는 여당을 선택하는 보수성을 보인 셈이다. 아무래도 이런 보수성이 국회 활동에도 반영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종교 편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사안마다 일회적인 대응으로는 미치지 못한다.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면 입법화로 재연되는 사태가 없도록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당선된 불자들의 의정 활동에 불교계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기대를 현실로 묶어내기 위해 당선자들이 교계 현안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후원회를 구성하는 등 다양한 지원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교계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한국 정치에 참으로 큰 일꾼이
되도록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