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석존의 평등 사상
그러면 부처님께서도 과연 남녀를 차별하셨던가? 부처님께서 당시 인도 사회에서 고질적이던 사성계급 제도를 철폐하고 평등을 주창하셨던 것은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이다. 사성평등의 근거는 업설(業說)이다.
바라문교에서는 바라문, 크샤트리아(왕족 및 무사계급), 바이샤(평민), 수드라(노예)의 네 계급은 태어날 때부터 종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이들 각 계급은 서로 엄격히 구별되어 상호간에 결혼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바라문 이외의 계급은 바라문을 받들어 모시고 봉사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귀천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떠한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어떤 업을 짓느냐에 따라 귀천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함을 주차하셨던 것이다. 부처님의 이러한 인간평등의 사상은 곧 남녀평등의 사상도 아울르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부처님의 평등사상은 한갖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교단 내에 평등을 구현하셨음을 볼 수 있다. 사성계급 누구라도 불교교단에 들어올 수 있으며, 모두가 부처님의 동등한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인도 사회에서 뿌리깊었던 철저한 남녀 차별의 풍조 속에서 다른 어떤 교단에서도 허락하지 않았던 여자의 출가를 오직 부처님께서만이 허용하셨다. 교단에 여성을 받아들여 만인의 귀의처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자도 그때에 최고의 수행과위인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득도한 출가 여성의 모습은 장로니게(Theri-gatha), 불설아라한구덕경, 증일아함 비구니품 등에 잘 나타나 있으며, 재가 여성 불자의 모습 또한 증일아함의 청신벼품에서 그 편린을 찾아볼 수 있다.
3. 불멸 후 여성관의 변천
부처님의 평등사상은 부파시대 말기에 이르러 그 빛을 잃게 된다. 부파교단이 직면한 여러 가지 위기 상황 속에서 정법오백년감소설(正法五百年減少說), 여인 오장설(女人五障說), 여인불성불설(女人不成佛說)이 팽배하였다. 이들은 비구니교단 설립에 관한 문헌의 말미에 부가되어 있다. 구담미래작비구니품에 의하면, 만약 여인들이 사물이 되지 않았더라면 외도, 범지, 거사들이 그들의 옷을 깔아 놓고 사물들로 하여금 그 위를 다니게 할 정도로 공경할 것이며 머리칼을 풀어서 그 위를 다니게 할 것이며 의복, 음식, 침상, 의약을 보시할 것이며 천하의 인민들이 사문 섬기기를 해와 달 섬기듯 할 것이며 부처님의 정법이 천년이나 흥성할 것인데, 여인들이 사문이 되었기 때문에 불법을 500년 동안 쇠약하게 하였다고 예언 형식으로 설하면서, 이는 여자는 범천왕, 제석천왕, 전륜성왕, 마왕 여래 등이 될 수 없는 오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구담미경, 구담미기과경 등에서는 정법오백년감소설과는 관계없이 여인오장을 말미에 첨부시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여인이 5가지가 될 수 없는지 그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불멸 후 500년 경은 부파교단에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 때이다. 이 시기는 마우리아 왕조 멸망 후 계속된 그리이스, 박트리아, 쿠샤나의 침입이 북인도를 괴롭혔다. 게다가 대승불교의 발흥이 부파교단을 위협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부파교단의 위기 상황으로 말미암아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는 따위의 사상이 다른 불타관의 변천과 아울러 생겨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는 바이다.
4. 대승불교의 여성관
부파 말기에 팽배된 차별 사상은 다시 부처님의 근본 뜻으로 되돌아가자는 자각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고 대승불교가 성립되었다.
대승불교는 보살사상, 일불승(一佛乘)사사을 표방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발보리심하여 보살이 될 수 있고, 자리 이타의 보살행을 행하여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일불승의 대승사상은 일체중생 실유불성 사상으로 이어졌다. 이는 바로 부처님의 평등사상으로 회귀한 것이었다.
대승불교사상은 대승경전을 통하여 천양되고 있다. 대승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각 경전이 담고 있는 대승사상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역으로 각 경전에서 보이는 여자의 모습을 통하여 그 경전이 주창하는 대승사상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맨 처음의 대승경전은 우선 부파의 여인불성불설을 깨뜨리기 위한 변성성불을 설하고 있다. 여자도 성불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폄에 있어서 변성남자(變成男子)의 방편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성불할 수 있으나 일단 남자 몸을 받은 뒤에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부파교단과의 격심한 항쟁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변성성불설은 반야경, 법화경 같은 초기의 대승경전에서도 수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법화경의 용녀성불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변성남자의 모습은 곧 자취를 감추게 된다.
유마경은 불이(不二) 법문을 설하는 경전으로 유명하다. 대승공사상에 의해 차별상이 무너진 것이다. 남여의 차별상도 성문사리불과 천녀의 대화를 통하여 철저히 깨뜨려짐을 볼 수 있다.
금강경에서는 선남자(善男子)만이 아니라 선여인(善女人)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켜 보살이 됨을 당연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여자도 성불할 수 있음을 설하고 있다.
법화경에서는 여자에게도 당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주고 있다. 성불하지 못할 중생은 아무도 없다는 자세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또 선남자, 선여인 모두에게 법화일승법을 설하는 법사(法師)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곧 선여인이 여래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사부대중을 위하여 법화경을 널리 설할 것을 부촉하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선재동자 53명의 선지식 중에서 20명이 여자로 등장하고 있다. 여자도 대보살 등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성취한 해탈문의 경계를 선재에게 설하고 있는 것이다.
중기 대승경전인 승만경에 보면, 승만부인이 당당히 일승법문을 설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경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승만경의 원명은 승만사자후일승대방평반광경인 것이다. 승만부인이 부처님으로부터 성불수기를 받고 부처님을 대신하여 법문을 설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여자라는 신분을 전혀 인식시키고 있지 않다. 당당히 불제자로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일승법문을 사자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대승경전에서는 남녀 차별의 잘못을 깨뜨리고, 부처님의 평등사상을 다시금 천명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성불하신 분이 여신(女身)의 모습으로 현신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바로 중생구제를 위해 몸을 나누신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이시다. 관세음보살은 우리 중생들에게 매우 친숙한 분으로서, 많은 대승경전에서 관세음보살을 설하고 있다.
반야심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오온이 다 공함을 보시고 일체고를 해결하신 분으로 되어 있다. 대승보살에 있어서 반야공의 터득은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경계로 이어지고, 반야바라밀의 실천은 중생구제의 이타행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법화경에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32가지 몸으로 화현하시는 32응신으로 설해지고 있다. 이 속에는 불신(佛身)도 있다. 관세음보살은 이미 일체고를 해결하시고 부처가 되었기 때문에 부처의 몸을 나투심이 가능한 것이라 하겠다.
화엄경에서는 선재가 찾아가는 53명의 선지식 가운데 관세음보실이 28번째의 선지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타락가산에 주처하시면서 대바행문(大悲行門)으로 중생을 평등하게 교화하시는 것이다.
또 정토 경전에서는 아미타불의 좌보처로서 정토왕생의 안내자로 등장하고 있다.
불교 경전에서 관세음보살과 아미타불은 동일한 분이니 정토에서는 미타의 몸, 예토에서는 관음의 몸을 나툰다고 한다.
이와 같이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부름에 응해서 여러 모습으로 화현하셔서 중생을 구제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세음보살이 우리에게 여신(女身)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관세음보살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그러나 여신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는 관세음보살의 대비심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부처님의 덕상 가운데 대자대비의 덕을 실천하시는 분이 관세음보살이다. 대비심은 여성 특유의 모성애가 확산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여신으로 비쳐지는 것이리라.
이는 바로 남녀 성(性)의 차이(差異)에서 오는 차별(差別)은 이미 끝났음을 가르치며, 나아가 성의 다름에서 가지는 특장(特長)을 살려 나가는 적극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5. 맺는 말
이상과 같이 불교의 여성관은 많은 변천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주된 것은 부처님의 평등사상이요 평등의 실현이다. 불교는 특정 계급, 특정 계층의 이권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인의 이익과 안락을 위한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전도 정신이며,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심각한 차별의 양상은 무엇인가? 남녀의 성 차별이 다시 자행되고 있고, 평등 실현의 과제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주요 요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부처님의 평등사상이 교단 내에서도 실천되지 못하는가? 깊이 되새겨 보아야할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평등의 구현이 그리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부처님의 근본 뜻이 왜곡되고 제대로 받들어지지 않을 때, 반드시 부처님의 근본 사상으로 되돌아가자는 새 불교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당시 그토록 철저한 차별의 전통 속에서 격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인간평등을, 남녀평등을 교단내에 구현하지 않으셨던가. 또한 그때의 여자들 못지 않게 오늘날의 여자들도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불자로서의 자각을 깊이 하고 있지 않은가. 방향은 이미 설정되어 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만 남아 있다.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려면 불자들이 힘을 합쳐야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 말씀 덧붙일 것이 있다. 업에는 별업(別業)과 공업(共業)이 있는데, 별업으로 볼 때, 여자는 자기가 처한 분상에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맡은 바 역할을 완수해 나가야 할 터이되, 공업으로 볼 때, 성차(性差)에 의한 차별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을 자각해야할 것이다. 차별적인 사회 제도, 계급 질서, 관습적인 성의 굴레는 우리 모두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당한 이익을 누려 왔던 남성들은 이제 그 이권을 내어 놓고 만인의 이익을 위해 동참해야 할 것이다. 만인이 모두 평등하고 행복한 불국정토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