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화합하는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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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해인사 개산 1,200년 - 성원
1996년 05월 171호
어제 아침 청소 때 해탈문 앞에 피어오른 목련을 보면서 때늦은 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오후에는 관음전 옆 두 그루의 목련도 세월의 흐름을 어찌 하지 못하고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봄기운을 느끼면서 도량을 거닐어 본다. 천 년의 세월을 머금은 채 말없이 서 있는 석탑과 무언의 대화라도 나누고 싶어진다. 임진란의 혼란 속에서도, 육이오의 포탄도 뒤로 한 채 오늘도 무심하게 지나가는 흰 구름을 어깨 지우며 서서 오늘을 지켜 온 무정의 탑은 1200년의 해인사 역사 가운데 어느 때를 가장 그리워할까.
무수한 전각들이 새로이 들어서고, 새 기와가 얹히고 풍성히 불단이 차리어진 그 때를 생각하고 있을까. 법의 향기를 냄새 맡고 천하의 눈 푸른 수좌들이 모여, 서로를 의지해 결의에 찬 미소를 나누던 그 때, 비질 할 시간도 다투어 정진하여 수북히 가을의 낙엽이 기단부를 기다리던 가난하지만 소리없는 시절을 그리워할 게다.
앞으로 육 년 뒤면 해인사는 1200년의 세월을 꽉 채운다. 개산 조사 이정, 순웅 큰스님의 천 년의 세월을 투시하는 능력에 정례를 올리고 싶다. 한국불교의 무수한 굴절 속에서도 늘 우뚝 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던 큰스님들의 덕화와 또 큰 법음을 머물게 한 묵묵히 수행하던 수행자들의 구도 열정에 귀의하고 싶다.
1,200년의 세월을 지키어온 불교의 발전을 생각할 때 먼저 시절의 변화를 생각할 수도 있겠고 또, 외부 활동으로도 방향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의 해인사는 참다운 정신적 귀의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모든 구도자들이 그리워하는 귀의처가 되고, 모든 불자들의 귀의할 터가 되며, 혼탁한 사회에 지친 모든 나라 안의 사람들의 정신적 귀의처가 되며, 나아가 세계의 정신적인 문화를 이끌어 가는 중심지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그러면 수행자들이 그리워하는 마음의 귀의처는 어떠한 곳일까.
첫째는 법의 위신력이 가득해야 할 것이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부하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북적댄다고 해도 법력이 충만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엇보다 대덕 스님들이 많이 모이고, 눈 푸른 납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모든 외부적 환경과 조건들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둘째는 함께 하는 스님들이 화합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삶을 그리워하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도의 길에 나서서 고독과 벗삼기 두려워하지 않는 스님들은 무엇보다도 내면적으로 자신을 풍요롭게 해 주며, 일상의 일로 수행의 분위기를 흐트리지 않는 수행처를 그리워할 것이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다 보면 처음에 추구하던 본질은 망각해 버리고 일상적 문제로 많은 충돌을 일으키곤 하는 것을 보아왔다.
2002년에는 해인사에서 가득 차고 넘치는 화합 승가의 힘찬 물결이 해인사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의 목을 축여주고, 나아가서 모든 불자들의 가슴에 넉넉한 호수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물질문명이 더 없이 풍부해질 2l세기에는 참다운 정신적 풍요가 머무르는 곳이 모든 사람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그러한 정신적 풍요는 함께 하는 스님들이 구도의 열정으로 화합하며 살아갈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아직 물질문명의 미래를 예시할 통찰력도 없다. 하지만 물질적인 부분이나 현상적인 모습의 발전 구상은 자칫 본질적인 면에서 멀어지게 할 우려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육 년 뒤 세상이 어찌 우리의 상상 위에서만 변하겠는가. 어떠한 변혁이 몰려오더라도 우리들이 그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구도적 수행 방향에 더욱 충실함으로서 가능하다고 본다.
셋째는 불자들이 동참할 수 있는 수행의 터전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불교가 참다운 대승의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2002년의 해인사에서는 스님들이 충분한 구도의 화합된 분위기를 창출하고 그러한 분위기 속으로 재가 불자들을 끌어 들어서 그들에게 참다운 불교의 본질을 이해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땅 속 깊숙이까지 충분한 자양분이 공급되어 있을 때만이 좋은 과실을 수확할 수 있듯이 불교 전체의 터전이 충분히 넓을 때만이 훌륭한 출가자들이 나올 것이고, 그러한 출가자들 가운데에서 삼계도사들이 능히 나올 것이다.
사실 이러한 바람들은 해인사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해인사가 21세기에 최고의 수행적 자리를 지켜 나가려면 미래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바로 알아 예지를 가지고 한 발 먼저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l,200년의 역사를 외형적 모습으로 표출하려 한다면 결국 우
리 모두가 세존의 근본 뜻과 멀어지게 될 것이며, 우리 스스로사회의 큰 변화에 휩쓸려 자신의 모습마저 앓게 될 것이다.
1,200년의 역사가 1,200년의 미래를 저 탑은 꿈꾸고 있는지 어두움 속에서 별빛을 향해 굳건히 버티고서 있다.
이제 나도 나의 오도서悟道星을 찾아 글을 놓고 돌아앉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