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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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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풍광과 진경 - 이호신 1996년 05월 171호
하루가 다르게 화신花信이 전해오는 시간이자 해빙解永의 물소리 들리는 춘삼월 그믐날에 오대산은 아직 겨울잠을 털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오대산인들 지연의 순환을 가두어두랴. 다만 지난 겨울의 흔적이 채 녹지 못한 흰옷을 입고 새날의 햇살을 등에 지고 있을 뿐. 국립공원에서 등피골을 지나자 젖은 앞가슴을 보여주는 설산雪山이 도리어 포근하게 느껴짐은 이제 눈밭의 댓잎과 묵은 가시덤불이 제 발목의 눈을 녹여 제 모습을 키워 가리란 상상이 빗나가지 않을 성싶어서이다. 묵은 솔잎이 삭아 새 솔을 키워내는 모습이 목도되기로 지면이면 순환이고, 인연을 따지자면 윤회의 생사가 이렇듯 한눈에 살펴지니 이미 가람의 길목에 성큼 들어선 기분이다. 하지만 실재하는 중대, 적멸보궁을 향한 걸음은 살얼음판을 기어올라야 하는 음지와 발목이 빠지는 진흙길의 양지로 하여 간단하지가 않았다.
월정사月精寺와 상원사上院寺는 다음으로 미루고 지나쳐서 오르는데 자연스럽고도 고맙게 통나무에 징을 박아놓은 길목이 이채롭다.
자연 공부의 배려로 나무 명찰이 돌아서는 길옆마다 눈에 띄는데 산사어 나무, 거제수나무, 난티나무, 박달나무 등 표피로서는 도저히 헷갈리는 터에 부게꽃나무, 함박꽃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왼쪽 산등성이를 끼고 오르는 오대산의 풍광은 이대로라면 필시 한겨울의 그림자일 법한데 갈색계열의 향나무 잎들이 바위 아래 채 썩지 못하고 뒹굴고 있다. 황갈, 밤갈, 다갈, 자갈, 적갈, 회갈, 혹갈, 팔갈이니 털배색이니 하여 이름 붙여 보아도 수고러움만 더할 뿐 산중의 이파리는 햇살에 바스락대며 뒤척여서 눈길이 마음결을 미쳐 따를 수 없다.
먼저 한숨을 돌러서내고 중대향각中臺香開에서 감로수로 가슴을 적셨다가 이내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오르는 길은 좀더 가파르고 좁아드는 느낌이다. 마치 둥근 나선형의 피랏미을 오르듯이.
주변 산세는 여전히 전나무와 소나무 숲의 설경으로 뚝 떨어진 세상에 온 기분인데 마침내 적멸보궁에 이르자 비로봉이 암자 뒤로 허공에 떠 있다. 신선한 바람마저 옷깃을 날려 산중보장山中寶藏에 들어선 감회가 솟구치는데 이 곳이 바로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보궁자리를 두고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고 했던가 조선 영조 때
박문수(암행어사)는 이 곳에 와서 보고 \"승도들이 왜 좋은 기와집에서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남의 공양만으로 편히 받아 먹고사는가 궁금했는데 이렇듯 제 조상의 묘가 훌륭한 명당이어서 그런가보다\"고 한 일화가 이 곳 적멸보궁의 터전을 말해 주는 단편이 될 법도 하다.

사진이 없던 시절 이 풍광을 그린 이가 있었는데 그가 김홍도로서 단원이 정조의 어명을 받들어 관동 지방의 진경을 그린 「금강사군첩鎬江四君帖」60폭 중의 그림으로 ‘월정사月精寺\', \'사고史庫\' ,‘상원上院\' , \'오대산중대 五臺山中臺\' 가 바로 오대산중의 가람을 그린 것이다. 그 중에서 오늘 올라본 중대에는 적멸보궁이 비로봉 능선 아래 독립된 산정에 지리잡고 있음이 단원의 그림으로 살펴진다.
정보가 부족한 시대에 사물과 대상에 대한 안목이 더 크고 우주와 자연관에 대한 이해가 깊었음을 새삼 일깨워 주는 그림이자, 형세와 형국을 한눈에 조망해 보는 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후학의 부끄러움으로 가다듬어야 할 화업의 길목을 암시해 주고 있음이다. 생각을 비워내며 길을 내려오는 시간 떡갈나무사이로 넘나드는 청설모와 정다운 새집이 보였다. 계곡에는 살얼음도 아닌 살얼음 위로 이미 풀린 물이 청록빛을 띠며 흐르는 새로운
물살을 보았으며, 개울의 조약돌과 어우러져 뚝뚝 떨어진 얼음바위도 만났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해빙의 물소리 살강이는 얼음사이로 물길을 만들어가는 자연의 아름다운 곡선과 여울의 반짝임을 오대산에서 비로소 만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