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밤은 깜깜하고, 서울에서 떠난 수안보 가는 길은 멀기도 하였다. 길가에 가로등도 하나 없는 시골길을 달려가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수안보에 닿으려고 저녁밥도 거르고 재촉하며 갔으나 이미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고등학교시절 문예반 동문들이 해마다 몇 차례 모임을 갖고 있는데, 이번에는 가족과 같이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단양팔경을 둘러보자는 것이다. 이십여 년 동안 이어 온 소중한 인연을 되뇌이며 처음으로 가 보는 길이지만, 이정표를 벗삼아서 여기까지 기꺼이 달려왔다.
이튿날, 고로쇠 물을 준다는 해장국집에서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충주호로 향하였다. 아직 이른 봄이라 텅 비어 있는 논밭을 바라보면서 한가로운 시골길을 여섯 대의 승용차가 줄을 지어 달린다. 자동차 안테나에 일행을 알아보기 위한 분홍색 끈을 휘날리며 달리니, 마치 무슨 중요한 임무를 수행중인 작전 차량의 행렬 같다.
우수, 경칩이 지난지도 벌써 한 달이 되었는데, 봄 기운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어야 봄이 아닌가. 긴 겨울잠에서 봄을 맞으려는 조급함 때문인지, 오고야 말 봄이지만, 나들이를 너무 서둘렀나 보다.
한참을 시원스레 내달려서 단양팔경을 에두르고 있는 충주호에 가 닿았다. 서로서로 사진을 찍느라고 부산을 떤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食後景이라더니, 요즈음은 밥 대신에 사진을 먼저 찍어야 다음 순서가 진행되나 보다.
구담봉을 배경으로 갖가지 모습으로 여러 번 사진을 찍고 나서야 우리는 충주호 유람선에 올랐다. 호수 위를 경쾌하게 달리는 유람선에서 맞는 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그래도 어딘가엔 봄바람도 더러 섞여 있을 텐데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 바람이 아직은 봄바람에게 제자리를 내어주기 싫은가 보다.
단양팔경이라더니 과연 호수를 둘러싼 바위는 그냥 단순하게 큰 돌이 아니었다. 저마다 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벌써 이름이 붙여진 것도 많았다. 거북바위, 초가집, 주먹바위, 고래 두 미·리, 김삿갓바위, 그리고 높은 봉우리 위에 놓여 있는 흔들바위 따위들이다. 마치 잘 다듬은 육면체를 쌓은 듯 계단을 이루고 있으며, 옛날에 선녀들이 걸어서 내려왔다는 강선암은 탄성은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충주호의 찬바람에 온몸을 내맡겨 보려고 선상에 올랐다. 새봄을 벌어 무언가 좀더 따뜻하고 희망찬 기대라도 걸어볼 양이었다. 거창한 화두는 없어도 또 구체적인 꿈은 아니어도, 생명력 넘치는 봄 기운과 더불어 마음에 충만된 힘이라도 느껴 보고 싶었다.
어느덧 이 곳은 푸르름으로 물들고 많은 꽃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지천으로 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문득 떠오르는 두보의 시 한수가 있다.
강물이 파라니 새 더욱 희고,
산이 푸르니 꽃이 불붙는 듯
올 봄도 보고 또 지 나가니
어느 해가 고향에 돌아갈 해 인가
江碧鳥兪白
山靑花慾然
今春看又過
何日是歸年
많은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추운 겨울을 보내고 저마다의 가슴에 간절한 소망을 가질 것이다. 기상청의 일기예보도 빗나가 겨울동안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아 더 황량한 겨울이었으니 따뜻한 봄소식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일정으로 운보의 집을 찾았다. 온 길을 두어 차례 되돌아오면서 어렵사리 당도하니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고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찻집에 들러서 김기창 화백의 그림을 보면서 위대한 예술혼을 잠시 느껴 보기도 하였다.
이 곳 입구에 오기까지 안내판을 구경하지 못하였다. 고장의 명소에 대해 지역 사회가 관심을 찾지 않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주변은 조경 공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그래도 주차장만은 세 곳에 여유 있게 갖추어 놓았다.
어스름이 내리는 청원의 들녘에서 서울길을 재촉하며 일정을 마무리 짓는다.
이번 모임은 올해 두 번째 봄맞이 행사였다. 내가 1971현에 졸업한 바로 그 초등학교에 얼마 전에 막내가 입학하였다. 그 ‘역사적인’ 입학식을 보러 간 것이 첫번째 봄맞이였다. ‘역사적’이라 함은 초등학교 입학식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생애의 첫 출발로서 소중한 자리가 아니겠나 싶어서이다.
충주호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올 한해의 소망을 가슴속에 가만가만 헤아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