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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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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효재 1988년 06월 76호
우리 사회의 풍토에서는 어떠한 종교이든지 쉽게 받아들여져 융성하는 것 같다. 특히 여성들의 종교적 성향이 그러한 풍토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모든 종교 단체의 신도 수에 있어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 이천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여러 외래 종교가 우리 사회에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 우리는 불교, 도교, 유교 및 기독교 등의 세계적인 종교를 받아들여 한국화하였다. 이러한 한국화의 기반이 된 것은 원시시대의 무속신앙인 조상숭배로서, 돌아가신 조상과 현세의 자손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가족 공동체임을 믿는 신앙이다. 그래서 조상의 행복은 곧 자손들의 행복이 되는 것이므로, 자손은 조상의 행복과 편안함을 위해 끊임없이 제사와 공물을 바쳐야 하며, 조상의 영혼은 향상 자손의 번영과 행복을 돕는다고 믿는다. 즉, 조상과 자손들은 서로 돕는 연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영원히 그 혈통으로 이어져 가야 함을 믿는 신앙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고유한 신앙이라기보다는, 모든 원시신앙이 우리의 종교에 있어서는 보편성으로 승화되지 않고 기본적 신앙으로 지속되면서, 이에 의해서 모든 외래 종교가 한국화되었음에 그 고유성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원시신앙의 기반 위에 불교가 가장 일찍 들어와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통해 우리의 심성과 사회문화에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원시적인 매장 풍습과 제사의식에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켰으나, 기본적인 조상숭배와 가족공동체적 신앙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유교는 이씨조선 정권이 고려를 대치하는 혁명 과정에서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으면서, 부계 조상 제사를 중심으로 한 가례(家禮)를 가족생활의 신앙과 의례로 더욱 강화시켰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역사가 짧은 기독교는 서구적 신학과 신앙 형태를 지니고 우리 문화에 침투해 왔다. 그런데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신도 수가 급증한 것은, 지금까지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현재 신도 수가 남한 인구의 사분의 일을 차지하며, 불교도의 비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이러한 급성장의 과정에서 한국의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타종교와의 혼합된 형태를 볼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부계 혈통 계승을 위한 가족 공동체적 신앙에 용해되어 버린 듯하다.
한국의 산사(山寺)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불교적 신앙의 대상과 함께 삼신각, 칠성각 등이 반드시 자리잡고 있다. 무신(巫神)을 섬기는 신당에서도 여러 종류의 신앙 대상 중에 부처님이 포함되어 있다. 유교의 조상제사의 의례도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에 대한 효의 행위로서 그 윤리성을 합리화시키지만, 실제로는 조상을 신으로 모시는 원시적 신앙이 기반이 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집안에서도 새해나 명절에 집안의 안녕을 보호하고 액운을 물리치게 하는 무속적 부적을 사용하는 일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더우기 신앙의 영성을 강조하는 부흥회나 병을 고치는 집회에서 표출되는 신앙과 의식에는 무속적 기복신앙과 굿거리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종교가 다양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신앙형태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공통된 것은 가족 이기주의를 못 벗어난 기복신앙이다. 특히 여성들의 종교생활의 중심은 가족의 안녕과 번성을 기원하는 것이다. 아들을 통해서 혈통을 계승하여, 가족을 존속시키고 번성시켜야 하기때문에 그 기원이 간절하다. 이러한 종교적 신앙과 우리의 가족제도는 여성에게 조상과 시집을 위해 아들을 낳아 바치며 그 집안의 존속을 책임질 것을 강요하였다. 이 의무를 못하는 경우에, 여성은 스스로 죄책감에 사로잡히며, 주위에서 당하는 핍박과 압력은 죄인으로서 당하는 바로 그 고통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선진조국의 창조와 민주화를 갈망하는 시대에 있으면서도, 현행 가족법을 통해 여성에게 족쇄를 여전히 씌우고 있다. 가계는 부계혈통의 계승으로 호주상속자인 아들을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법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깊은 의식과 생활 전반에 걸쳐 여자를 차별하고 학대하는 아들숭배의 신앙이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부모 양계를 통해 삼대째의 기독교인이다. 모태로부터 기독교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지내는 제사를 보지 못하고 자랐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 전통인 가례와 단절된 상태에서 친구들의 집안에서 지내는 제사를 궁금하게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부러워하였다. 기독교 신앙이 돈독한 부모님의 가르침은, 조상을 섬기며 제사상 앞에서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기독교의 계명이 유일신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나 물질을 숭배하고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단정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러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성인이 된 후, 스스로 여러 이치를 깨닫고 극복하기까지는 우리 제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필자의 어머니에게서도, 조상과 혈통계승을 위한 아들에 대한 한국적 신앙이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어머니들의 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 남편이 삼대 독자로 대를 이어오는 집안에서 딸 다섯을 낳으며 기르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책하게 되는 고통은 참으로 죄인된 고통이었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 아들을 못낳는 원인을 자신에게 돌려 조상 앞에 죄인이 되었다. 그래서 아들을 낳기 위해 하나님에게 간절히 빌었으며, 신앙생활에 모범이 되기 위해 철저한 기도생활을 하였다. 마흔 두 살에야 아들을 막내로 보았으며, 그 기쁨과 감사함은 바로 그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한 정성으로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늦게 본 아들이 혼인하여 미국에 가서 살면서 딸 넷을 낳은 것까지 보신 뒤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미국생활에서 딸 둘만으로도 벅찬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로서 압력을 계속 행사하셨다. 셋째도 딸, 넷째도 딸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더 시도해 보라는 부탁을 하셨지만, 두번씩이나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해산한 며느리의 몸은 미국 의사들에 의해 허락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드디어 체념하신 상태에서 돌아가셨다.
기독교의 신앙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볼 때, 혈연의 정과 가족을 초월한 것이다. “누가 나의 가족인가. 나를 믿고 따르는 자가 나의 가족이다.”라고 가르쳤다. 모든 남녀는 하나님의 형상을 타고난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 다 같이 평등한 존재이다. 하나님을 인간의 창조주로 믿는 기독교인들은 한 형제, 자매라고 하였다. 이로써 연간들 사이에서는 개인적, 가족적, 인종적 이기주의를 초월하고, 보편적 사랑에 입각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신앙과 힘이 솟아나는 것이다. 더우기 인간은 죽음과 더불어 속세의 혈연과 인연을 끊고 하늘나라의 하나님 가족에 속하는 것을 믿고 있다. 이러한 신앙이 있는 반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자손을 통한 혈통계승에 기반을 두고 있는 가족공동체의 영속을 믿음으로써 기복신앙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비기독교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한국 사학계의 원로학자인 변태섭 교수는 일찌기 한국고대의 조상숭배 신앙과 한국불교와의 관계를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였다(“한국고대의 속세사상과 조상숭배 신앙” 상․하「역사교육」 제 3집과 4집, 1958, 1959).
이 논문에서는, 불교의 신앙이 근본적으로 우리 고대인의 원시적 신앙과 대립되고 차이가 있음에도 민간신앙으로 받아들여져서 한국화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원시적 신앙은 개인의 삶과 혈연적 유대가 사후에도 현세와 마찬가지로 지속되고 연장되는 것으로 믿었다. 이로써 자손은 죽은 부모를 후장(庫舞)하고 공물과 제사를 바치는 것이 부모를 편안하게 모시는 효의 연장이며, 따라서 조상으로서 자손을 보호하고 축복하는 것으로 믿었다. 이에 비해서, 불교의 신앙은 현세에서의 개인의 삶과 행동의 선악과 공죄에 따라 정토왕생과 윤회가 결정된다고 믿으며, 개인의 죽음은 현세의 혈연과 인연을 단절하고, 더우기 자손의 불공이나 표시에 의하여 내세의 행복이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후의 육체는 영혼과 분리되는 것으로 믿어서, 시체를 중시하고 후장하는 원사신앙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유해를 매장하기보다는 다비하는 풍습을 나타내며 죽은 자에 대한 제사와 공물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특히 속세의 인연을 벗어나 모든 생물과 인간에게 자비와 사랑의 실천을 위해 수도하는 종교로서, 원시신앙에서 진보한 고등종교로서의 신앙인 것이다.

이러한 불교신앙이 고대사회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큰 시련을 겪지 않고 민간신앙에 널리 침투하게 된 이유를 변태섭 교수는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불교를 지배권력인 왕실이 정책적으로 수용하여 호국종교로 삼는 한편, 민간에서는 불교가 조상숭배 신앙에 적응하여 조상숭배의 방법을 마련함으로써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불교는 시체 매장 대신 화장이나 경장의 풍습을 실시하는 한편, 조상의 영혼 구제를 위한 공양과 포시의 방법을 실시함으로써, 조상숭배 신앙을 유지해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상에 대한 후장과 제사 대신에 자손들이 사원, 불탑, 불상, 불종을 건조하거나 토지나 현물을 시납하고 더우기 불공을 들임으로써, 그 공덕으로 불력에 의하여 조상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따라서 불교의 영향은 조상숭배 신앙을 약화하거나 소멸하기보다는, 이를 더욱 강화하여 지속시켜 왔다. 즉, 고대신앙은 조상을 신으로 믿고 직접 제사를 바치며 기원하였던 것을 불교에서는 부처님에게 기원함으로써, 불력에 의해 조상의 명복을 비는 신앙으로 변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상숭배에 기반을 두고 부계가족의 영속과 안녕을 비는 여성들의 종교적 신앙에서, 모든 종교가 한국화한 공통성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종교는, 이러한 가족주의적 기복신앙의 단계를 넘어서 인간 공동체를 위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신앙생활로 신도들이 거듭나지 않는 한, 종교의 진정한 발전과 완성을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우기, 이것은 여성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거듭나야 함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 사회와 민족은 원시시대부터 믿고 살아온 가부장제 가족주의의 편협한 혈연적 공동체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난하고 병든 이웃, 부모없는 어린이들을 우리의 자녀와 가족으로 삼을 수 있는 민족공동체로 마음과 생활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각 개인의 생명과 가족의 근원을 부계조상 한 사람으로 따져 올라가서, 그 혈통과 관계없는 인간관계는 불신하고 배타적으로 생각하는 혈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뿌리를 민족 공동체와의 연대성에서 찾아서,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우리 자신들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 조상과 시집을 위해 아들과 가족의 생존 및 복지를 비는 종교적 신앙과 삶을 한반도에서 생사의 운명을 같이 하며 살아가야 할 민족공동체의 생존과 복지를 위하는 신앙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모두가 다 함께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민주사회로의 발전을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의 종교적 신앙과 생활의 힘은 이러한 새 사회를 창조해 나가는 데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성의 종교적 힘은 버려진 어린이들과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미국신문에서는, 해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수천명의 고아 입양에 대한 보도를 하면서, 한국 사람의 후진성을 비판하고 있다. 분단된 민족으로 동족상쟁의 6.25전쟁을 치른 뒤, 수많은 고아들을 해외로 입양하기 시작한 것이 삼십여 년 전부터이다. 미국신문들은 한국의 전쟁고아가 없어진 지 오래된 지금에도 계속해서 고아들을 해외로 수출하는 사실에 대하여 비난하고 있다. 더우기 세계올림픽을 치룰 수 있을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에서, 자기들의 자녀를 돌보지 않고 해외로 내보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민족적 수치를 개인의 수치로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혈통적 가족주의는 다른 성을 가진 양자를 받아들어지 않는다. 우리의 현행법이 봉건시대의 이러한 관습을 그대로 지속시켜서, 호주상속자를 위한 입양에서 다른 성을 가진 양자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아들을 수양딸, 수양아들 정도로 받아들여 자기 집안의 종이나 일꾼으로 부리는 정도였다. 이러한 가족이기주의의 배타성으로 6.25 전쟁동안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우리 사회에서 버림받고 천대받는 존재로 살아 왔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배타주의는 인권과 정의를 갈망하는 민주화 시대에 있어서 청산되고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다. 먼저 우리에게 뿌리깊게 박혀있는 부계혈통주의의 관습과 자기의 핏줄만을 귀하게 생각하는 편협한 의식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현행 가족법을 개정하여 가족제도를 민주화시키는 한편, 다른 성을 가진 양자를 친자녀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된 의식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것은 모성 역할을 하는 여성들이 앞장서서 실천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고아들을 고아원에 수용해서 집단으로 키우기보다 개별 가정에서 자기의 친자식처럼 맞아들여 기를 수 있는 사회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가정의 민주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가정의 민주화는 먼저 부계혈통에 기반을 두는 가부장제 가족의 차별적이며 배타적인 것을 극복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남녀가 평등한 인격으로 서로 존중하며 부모의 책임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비혈연의 고아들을 친자녀처럼 함께 기를 수 있는 가정이 될 때, 가정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에서 노동하는 어머니들의 가난하고 버려진 어린이들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탁아소나 유아원을 세워 그들을 돌보아 주는 어린이 돌보기 운동도 어머니들, 특히 종교를 믿는 여성들이 앞장서서 전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여성들이 민족공동체의 어머니로서 사랑을 나누는 일이며, 다함께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주인 노릇을 하는 일이 될 것이다.